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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의 역량

by 피라

억압, 구속, 차별 이런 것은 못견디는 천성을 타고나서 고등학교때 가장 사랑했던 단어는 자유였다. 2024년에 계엄령을 때린 어떤 지도자도 자유를 그렇게 좋아했다 들었다. 나의 자유와 그의 자유를 떠올리면 같은 말이라도 물과 불처럼 큰 차이를 느낀다. 이 사회 갈등의 8할은 같은 단어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달라서 일어나는 일 같다. 서로 생각이 달라서 격론했는데, 알고보니 같은 생각이라는 걸 종종 발견한다. 국어 교육은 풍성한 단어로 현란한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기원과 뜻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맥락에 따라 그 뜻이 어떻게 변하는지 가르쳐주는 것이 되면 좋겠다. 학생이나 취준생(전직자 포함)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그가 단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단어에 끌려간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뜻을 제대로 모르고 단어를 쓴다는 말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대표적인 단어들은 역량, 경험, 지식, 기술, 능력, 자질, 재능 등이다. 그 중에 가장 심한 것은 경험 또는 지식을 역량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자격증이 있으니 역량이 있고, 경험이 있으니 역량이 있고, 지식을 갖추었으니 역량이 있다고 쉽게 말한다. 이는 역량의 뜻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 혹은 아는대로 편의상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탓이다. 역량을 설명하는 여러 설명 버전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역량은 미군 공군 장교 교육을 할 때 어떤 장교들이 탁월한 성과를 내는지 추적 조사한 것이 역량 개념의 시초가 되었다는 말을 신뢰한다. 단순히 지식, 기술, 경험을 갖춘 상태가 아니라 그것들이 다양한 문제 해결 상황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어 나타나는지를 결정짓는 태도, 성향, 윤리, 가치관 등의 정신적 특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나의 방식대로 설명하면, 경험에 기반한 지식과 기술이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의 세 영역과 복합적으로 버무려진 비빔밥 같은 것이 역량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가 함께 비벼진 비빔밥에는 물리적 섞임과 화학적 섞임 둘 다 포함된다. 물리적 섞임은 섞이기 전의 특질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고, 화학적 특질은 섞이고 나면 섞이기 전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다.


역량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역량은 내 속에 역량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다 때가 되면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역량은 빽빽한 도서관의 책처럼 꽂혀 있다가 필요하면 스윽 뽑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역량은 무언가와 만나 섞여서 발현되는 것이다. 역량은 내 안의 무엇과 내 바깥의 무엇이 서로 만나 뒤섞여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량은 계획된 상호작용이 아니라 우연의 상호작용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취준생들의 언어는 독립적이다. 내가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고, 상대평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승전능력이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는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소개를 해야 하니 자기중심적 표현을 해야 한다 생각한다. 틈만 나면 전국 곳곳을 도배하는 정치인이나 선출직 직업을 가지려는 자의 현수막에 적힌 문구같다. 예산이 편성되고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면 모두 자기가 한 일인양 홍보한다. “부산시 예산 200억 증액, 홍길동” 이런 식이다. 홍길동이 예산을 증액했는지, 예산 증액했다는 사실을 홍길동이 말하고 있다는 것인지 헷갈리게 해서 마치 자신이 큰 역할을 했다는 걸 은근슬쩍 말하는 방식이다. 취준생들의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프로젝트 경험을 했고, 그래서 어떤 직무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비약, 지나친 연결, 자기중심적 생각이 넘쳐난다. 모두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취준생들은 거짓말하는 법을 돈주고 배운다. 표준화된 그럴듯함이 판을 친다. 정치인들의 현수막의 문구가 우리 마음에 닿아오지 않는 것처럼 취준생들의 말도 닿기 전에 흩어진다.


모두가 모두를 따라하면 세상은 붕괴한다 했다. AI 이야기다. 빛의 속도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진실의 특성을 버무려낸 거짓말과 왜곡이 평균의 반복으로 만들어낸 결과물들. 그 결과물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인공지능은 다시 자신이 만들어낸 그 결과물을 학습하고 다시 자신이 만들어낸 그 결과물들을 빛의 속도로 학습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를 반복하다보면 특이점이 온다는 이론이다. 왜곡된 결과물의 반복 순환학습으로 AI 모델이 스스로 붕괴한다는 주장이다. 거짓말만 일삼는 인간의 비극적 말로처럼, 반복된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병처럼, 자신의 말을 하지 않고 의미 없는 그럴듯한 말만 오고가는 시간낭비 회의처럼, 평생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인간이 말년에 느끼는 허무함처럼.


AI가 의미 있는 정보와 상호작용(알고리즘이 원천 정보와 만나 학습이라는 상호작용을 하는)을 해서 결과물을 내어놓듯, 인간의 역량도 내안의 무언가가(그 무언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네트워크의 상호작용 결과) 바깥의 무언가와 만나(상황 혹은 문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역량의 재료들과 역량의 결과는 서로 다르다. 그래서 역량 발휘를 위한 ‘섞임‘의 상호작용은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화학적 변화에 가깝다. 그리고 어떤 역량도 재현가능하지 않다. 상황이라는 조건이 바뀌기 때문이다. 과학실험처럼 동일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조건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삶이 펼쳐지는 세상이라는 조건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일도 어렵고 삶도 어렵다. 이 어려운 일을 자격증 하나 갖추었다고 역량이 있다. 학점이 높다고 역량이 있다. 공모전 경험 하나 해보았다고 역량이 있다. 서울대를 나왔다고 역량이 있다. 20년 전에 시험 한 번 잘 쳤다고 역량이 있다. 특정 직급에 올랐다고 역량이 있다. 과거에 프로젝트 몇 개 잘했다고 역량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인의 현수막 문구처럼 초라하고 부끄러운 주장이다.


표현은 정직해야 한다. “…경험을 했습니다. …. 을 배웠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된다면 … 하게 해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 이기 때문입니다. … 하면 … 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도면 충분하다. 역량, 능력, 자질, 등을 단어를 남발해서 비약적 자기증명을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 지식, 가치를 담은 말은 철저히 진실에 기반해야 한다. 진실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진실도 많다. 진실이라 생각했는데 진실이 아닌 것도 많다. 진실은 팩트와 다르다. 진실은 의도, 동기, 목적에 가깝다. 진실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진실은 충동적 감정이 아니다. 고도로 계산된 생각도 아니다. 진실은 나와 세상을 연결시킨 기나긴 과정, 삶이라 부르는 그 과정을 통해서 제련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짧게 단면적으로 해보는 것이 자기소개다.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 오늘 아침에도 여기저기서 보게 될 정치인들의 현수막 문구처럼 특정 목적을 위해 관심받을 말을 여기저기 갖다붙이는 과정이 아니다. 취업 준비를 그렇게 하면 붕괴될 것이다. 내 삶을 떠받치는 기초에 시한폭탄을 심는 것과 같다. 취업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진실은 특정 상황에서의 정지되고 고정된 무엇이 아니다. 출렁이는 파도처럼 바람과 물결의 상호작용 같은 것이다. 진실은 끝없이 변하는 삶을 살아가는 의지같은 것이다. 일어설 수 없는 자가 기어코 여기서 저기로 가고자하는 의지. 그런 굴복하지 않는 고유한 의지가 진실을 밝힌다. 그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자기소개의 핵심이다. 스펙은 고유한 의지를 실현하게 도와주는 작은 도구일뿐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의지와 진실이 담기지 않은 지원자는 불확실하다. 리스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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