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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의 목적

by 피라

관심을 가져 달란다. 관심 경제는 시선 경제다. 시선이 멈추는 곳이 돈이 된다는 뜻이다. SNS 피드들이 아우성친다. 어떤 피드는 노골적으로 어떤 피드는 수줍게 말한다. 제발 자신을 좀 봐 달란다. 어떤 사람은 순수한 기록의 도구로만 SNS를 쓰기도 하지만 그 기록들의 목적도 누군가의 관심을 얻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


모두들 타인의 시선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타인의 관심이 내 존재를 증명한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면 존재도 흐려지는 것이다. 인간은 잊혀짐을 두려워 한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잊혀짐이 두렵다. 진정한 죽음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죽음이 두렵다. 무관심은 사회적 죽음이다. 노력했음에도 알려지지 않음에 슬퍼하고 분노한다. 널리 알려지면 기뻐한다. 유명해진다는 뜻이다. 알려진 사람은 잊혀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난 사람들의 관심 따위는 필요없다고 목소리를 높히는 사람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난 높은 점수는 필요 없어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일지 모른다. 비즈니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일로 시작해 관심을 지속하고 늘리는 일로 확장된다. 타인의 관심이 필요없다는 말은 돈이 필요없다는 말과 같다. 개인도 기업도 관심은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생명줄이다. 모두 나를 좀 봐 달라고 아우성친다. 삶은 나를 누군가에게 알리는 자기소개의 과정이다. 그 누군가에는 자신도 포함된다. 인간이 자신을 발견하는 좋은 방법은 자기소개다.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소개를 잘 할 수 없다.


취업을 하려면 관심을 얻어야 한다. 채용 프로세스는 뽑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질문의 과정이고, 뽑히는 사람 관점에서는 대답의 과정이다. 질문의 목적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음이고 대답의 목적은 어떤 사람인지 말함이다. 자기소개다. 자기소개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자기소개의 목적이란 나의 어떤 것을 말할지를 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자신 안에 수많은 ‘내‘가 들어 있다. 그 중에 어떤 나를 말할 것인지 마음의 결정을 해야 한다. 사귀고 싶은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보여주는 ‘나’와, 접촉사고를 일으킨 상대 운전자를 대하는 ‘나’와, 인센티브를 결정하는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 싸가지 없는 팀장을 대하는 ‘나‘는 다르다. 각각의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 가짐과 태도는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에 따라 옷을 선택하듯 어떤 나를 보여줄 것인지 선택한다. 오랫 동안 이런 방식으로 생각했다. 상대의 수많은 관심들과 나의 수많은 관심들 중에서 서로 통하고 연결되는 것을 찾아서 그런 위주로 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의 관심사를 통해 말하는 것.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다만 그 방법이 어려울뿐이다. 개별 지원자에 맞춰 그 구체적인 방법을 코칭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 생각했다.


생각이 바뀌고 있다. 전제에 관한 것이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대상과 목적에 따라 하나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자기소개의 본질이라는 생각 이전의 무언가다. 최선의 선택지, 혹은 답이라 부르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정해진 답이 있다는 뜻이다. 콕 찝어 구체적으로 정해진 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선택의 공통적 기준 같은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 선택기준을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가 없는 시대다. 개개인의 능력과 조건에 따른 표현의 차이가 점점 줄어든다. 자기소개는 이제 더 이상 선택에 대한 문제도 표현에 대한 문제도 아니다. 정답 혹은 정답 비슷한 것이 있다는 생각은 제대로 된 자기소개의 가장 큰 방해물이다. 나를 도와주는 멘토인줄 알았는데, 나를 망치는 사기꾼이었다. 영웅인줄 알았는데 빌런이다. 취업에 관한 정보와 노하우들 말이다. 나를 발견하고 표현해 나를 잘 드러나게 해주는 도우미들이 아니라, 나를 꽁꽁 싸매고 숨겨 생각을 못하게 막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내 삶을 망치는 방해꾼이다. 기존의 방식으로 자기소개를 하면 자기소개를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기껏해야 남들과 똑같은 말을 내뱉는 앵무새의 운명이다.


자기소개의 목적은 상대가 바라는 유용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설득하는 자기증명이 아니다. 자기소개의 목적은 자기소개의 과정을 통해서 소개 주체인 자신이 감동할 수 있는 삶의 목적과 이유를 찾는 것이다. 자기소개는 이성과 논리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자기소개는 정서와 감정에 관한 것이다. 감정이 춤추지 않는 삶은 죽은 삶이다. 감정은 생명의 불꽃이다. 일에 대한 생각도 180도 바뀌었다. 일은 이성적으로 차갑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은 감정적으로 뜨겁게 혹은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의 일은 온기가 있다. 죽은 자기소개와 살아 있는 자기소개의 차이다. 지원자의 온기가 느껴지는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 그래야 관심을 가진다. 몇 년 동안 보일러를 틀지 않은 한 겨울 냉방에 포근한 온기가 돌게 해야 한다. 그게 감정의 역할이다. 감정은 오래 동안 과소평가되어왔다. 지나친 분노, 지나친 기쁨, 지나친 설렘, 지나친 냉소 모두 삶의 온도조절 능력을 망가뜨린다. 감정은 집의 보일러와 같다. 삶의 일정함이란 동적이다. 변화에 의해 일정함을 유지한다. 온도조절기와 같다. 감정, 생각, 해석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소개서도 잘 쓰고, 면접도 잘 본다. 타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아는 법이다. 아니다. 잘 아는 것이 아니다. 관심 있는 사람이다. 관심의 시대에 정작 우리는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관심도, 타인에 대한 관심도 점점 매말라간다. 삶이 매마르고 세상이 팍팍해지는 이유다. 특정 집단, 특정 국가, 특정한 대상을 비난, 혐오, 공격하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 자기소개를 하기 어렵거든. 논리와 근거, 합리성으로 포장해 무언가를 부정적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힘들어도 깊이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내 삶에 도움되는 발견이 그 속에 있다. 자기소개란 그 발견과 해석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삶의 발견과 나만의 해석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자기소개라는 첫단추를 잘못 끼워진 취준생은 취업해서도 고생한다. “신입사원이지? 네 의견을 한 번 이야기해봐!”라는 물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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