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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적아빠 Apr 13. 2022

당신이 회사에서 '부속품'일 수밖에 없는 이유.현타주의

어느 날, 부인이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해왔다.

난 뜬금없이 뭔 소린가 했다.


부인이 말하기를,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경우에도 그렇고, 

집에서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남편'뿐인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놀러 가자고 해도 '힘들고, 피곤하다'며 놀러 가지 않는 남편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이다.


그건 뭐,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 아직까지도 '아빠'라는 사람들은,

'돈 벌어와야 하는 기계',
'야근을 해야만 하는 기계',
'술을 먹어야 하는 기계'들이니까.

그럼, '술을 피하면 되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직장에 '옛 꼰대'들이 계속 자리를 잡고 있는 한, 

술자리도, '근무의 연장선'일뿐이다.


이 문화가 사라지려면

아마도 지금 부모가 된,
'그나마 가장 가정적인 부모세대'가 '제일 연장자'가 되어야만,
 그나마 '사라질까, 말까' 할 것이다.


그마저 사라진다고 왜 '장담'을 하지 못하냐면, 

이 '꼰대 문화'를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대로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다음 세대'들이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배울걸 배워야지... 

그놈의 '욕심들'이 뭔지. 

참, '한 곳만을 바라보는 아무런 생각'들이 없는 친구들이다.

(안 그러냐? 형, 친구, 동생들아?)


'옛 꼰대 세대'들이 일이 끝난 후 곧장 집에 들어가지 않고서,

술자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롭'기도 하고, 일 끝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옛 꼰대 세대'들은 우리들의 '부모 세대'와 그 아래 세대들이다.

우리 부모세대의 '아빠'들은 잘 살고 싶어서 일만 해왔던 세대였기에, 그리 '가정적인 세대'들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지금 부모가 된 세대가 '가정적'이기 위해서 그렇게들 '노력'들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빠가 가정적이지 않았던, 그런 가정의 모습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그로 인해 '추억'이 없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를 테니까.
아빠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이미 겪었던 자신들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요즘 아빠들은 기회만 된다면, '가정적'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봐도 '지금 세대 아빠'들은 꽤나 가정적으로 변했다. 우리 다음 세대 아빠들은 우리보다 더 그렇고.♡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걸 이해하지 못하는 '일밖에 모르던' 우리의 부모 세대인 '아빠'들과 그 아래 세대들이,


아직까지도, 각 조직에서 '높은 자리'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 지금도 가정보다는 '일'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조직'들에 남아있다.

그렇다고, 일에 충성하는 '옛 꼰대 세대'들만을 탓할 수만도 없다.


< 그런 '꼰대 세대들'이 아직까지도 기세 등등한 이유들이 다 있으니까. >



그런, '대우'들을 받더라도 아직까지도 기를 쓰고,

'아등바등' 서로 경쟁들을 해가면서, 들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다음 세대들이 '바글바글' 하기 때문이다.


들어올 사람이 넘쳐나는데, 뭐하러 지금 '이 사람'들을 대우해줘 가면서,
나까지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힘들게 일을 해야만 할까? 그냥 족치면 그만인데 말이다.
이게 바로, '썩은 고인 물'들의 생각이다. 별거 없다.
겁나, 단. 순. 하. 다.
삶은, 단순하다.


들어올 사람들이 계속해서 줄을 서가면서, 경쟁하고 있는 한,

나중에 세월이 흘러 당신이 똑같은 '고인 물'이 된다 하더라도, 아마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기존의 고인물들에게 배운, 그 '생각이나 의식'들이 당신에게 스며들었을 테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원래 가지고 있던 '초심'들을 잃고서 기존의 '고인 물'들과 똑같아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빌런'들 또한 시대를 막론하고 이렇게 또 탄생하는 법이다.


이제는 내가 그 자리에 있는데, 
나도 '조~온~나' 힘겹게 희생하면서 까지 이 자리에 왔는데, 내가 왜 나약한 니들 사정까지 다 봐줘야 해?
일하러 왔지, 놀러 왔어? 니들 아니더라도 들어오려고 발버둥 치는 애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어차피 니들도 수틀리면 나갈 거잖아? 괜찮아, 대체할 다른 애들이 저렇게 끝없이 줄 서 있으니까. 
나가고 싶으면 나가. 아니면 나처럼 가정까지 버리고 끝까지 버텨서 이 자리까지 오던가. ㅋㅋ
그때까지는 등골까지 빼먹어야지. 어차피 난 이제 너의 상관이잖아. 이곳에선 내가 법이야. 푸하하~


'두둥~! 시대가 변하더라도 또 다른 '빌런'의 등장이오~'

당신이라고 이런 '빌런'이 되지 않을 것 같은가?


장담하건대, 

정말로 싫은데도 불구하고, 끝내 오래 버텨서 한 자리를 기어코 차지했다면, 

당신은 99% 확률로 '빌런'이 된다.

당신도 윗사람(경영자)에게 잘 보여야 하니까.
어차피 당신도 '고인 물 부속품'이니까.


'저녁이 있는 삶', '가정을 돌볼 수 있는 시간'들이 있는 나라들은,
 그렇게 바뀔 수 있었던 '공통점'들이 다 있었다.


'시민들의 의식'이 그렇게 바뀌어갔기 때문이고,
들어주지 않는다면 본인들이 직접, '거부'를 했었기 때문이다.

일할 사람들이 거부를 한다면, '조직문화'나 '의식'들이 바뀔 수밖에 없다. 

제일 큰 피해를 보는 건 그들이니까.


하지만, 다음 세대들은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들은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계속 '부속품'으로 일하려고 오늘도 줄들을 서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처절하게. 그게 마치 능력인 듯. 실력인 듯.

그렇게 해서 경쟁에서 이겨 '부속품'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오늘도 SNS에 자랑들을 해가면서 주위에 으스대며 자기만족들을 하고 있다.

마치 자신이 여러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선택이 된 것 마냥, 마치 인재인 것 마냥, 인생에서 이제는 성공한 것 마냥, 무척 행복한 것 마냥, 온갖 축복을 받은 것 마냥.


그런데, 그거 아나?


조직에서는 그저 단지, 

말을 곧 잘 들을 것 같고, 오래 다닐만한, 남들보다는 그래도 충성심 있어 보이는 사람을 뽑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일터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너무 우습게 보지 마라. 

그들은 자신들과 닮은, 자신들이 어떻게든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뽑을 뿐이다.

 

실력? 지금 대한민국에는 인재들이 넘쳐난다. 실력은 다들 비슷하다. 

그럼, 당신이라면 누구를 뽑을 것인가?

요즘 공무원들도, 은행원들도, 기타 공기업들도 오래 다닐만한 사람을 뽑는다고 한다.

잘 모르겠다면 내가 가르쳐 주겠다.

오래 다닐만한 사람 = 교체할 필요 없는 부속품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여라. 

다들 알면서 모른 척하지 말고.

각자 경쟁을 해서 입사하고 나면, 

아니나 다를까, 다 '부속품 같은 현타'가 오면서 말이다.


당신은 그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들어온 '부속품'일 뿐임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내가 나가면 어차피 다른 부속품이 그 자리를 채울 뿐이다.


지금 퇴사자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깨어있다. 그런데 꼭 들어가고 나서야 깨어난다. 그러지 말아라.

들어가기 전에 좀 먼저 알아보고, '시간과 돈과 세월'을 낭비하지 말아라.



그리고,

'사회'를 탓하지 말고, '다른 세대'들을 탓하지 마라.

말과는 다르게,
'그렇게 스스로 '부속품'이 되기 위해서 줄들을 서고 있으면서' 말이다.

내가 쫓아가지만 않는다면, '탓할 사람'도 없다.

인간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사회의 분위기'는 '다음 세대'들이 계속해서 바꿔가는 것이다.
그렇게, 질질 끌려 다니는 게 아니라.

'부속품'처럼 지냈던, 전 세대들을 따라가지 말라는 얘기다.

욕심만 버린다면, 그렇게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
 
그 욕심만 버린다면, 기계 같은 '부속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 '욕심'들을 여러분들은 과연, 버릴 수 있을까?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

내가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 

늘, '안전 운전'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게 해 줄 수가 있다.


내 행복을 멀리 '뜬구름'처럼 찾지 말라는 얘기다.


부인이 전에 그랬었다.

'남편이 운전을 잘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고 '행복'의 일부분이었다고.'


아내가 이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사촌동생은 면허가 있는데 남편이 면허가 없어서, 지금 제주도를 너무 가고 싶어도 못 가고 있는 상태란다.

'처제가 운전하면 되잖아?'라고 했더니,

처제의 차가 연식이 좀 돼서 비슷한 차를 렌트할 수가 없어서 겁이 나서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차가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택시를 대절하는 것은 신경이 쓰여서 싫었고. 누가 봐도 좀 스트레스받는 상황이었다.


또 한 번은,

친구 남편이 하도 험하게 운전을 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차를 탈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항상 서울 시내만 다녀 버릇해서, 고속도로 장거리 운행이 겁이 나서 차마 여행을 못 가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한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사고가 한 번 크게 난 적이 있어서 트라우마로 운전을 못하겠다는 지인도 있었고.


때로는,

차는 샀지만, 운전하기 귀찮고 피곤해서 함께 나가주지 않는 남편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운전'이라는 단 하나의 상황만으로도 각자의 생활들에서 이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 법이다.


'행복'이란 것을, 

여러분들이 뭔가를 해야만 이룰 수 있는, 

그 무언가 대단한 것들로만 '착각'을 하고 있다면,


장담하건대,

여러분들은 '진정한 행복을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남들이 행복이라고 부러워하고 있는,
'대단한 부속품'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젊은 세대들은 들어라.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사회적으로 더 성공한 후에 
멋진 여성을 운명처럼 만나 결혼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말을 걸어서,
같이 음료수라도 한잔하면서, 공원을 함께 거닐며 서로를 알아보고 맞춰가며,
스스로 이 만남을 운명처럼 만드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녀석이다.

혹시, 이 말에 코웃음 치는 사람이 있는가?


당신이 그런 코웃음 치는 사이에, 

지금도 이런 식의 적극적인 사람들이 '멋진 여성/남성'들을 이미 다 낚아채가고 있다. 


당신이 줄을 서가며 '허상'같은, 그런 '뜬 구름'들을 잡고 있는 사이에 말이다.


'행복'은 결코, '돈'과 직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들 보다도 더 못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지구 인구의 약 60~70% 사람'들이 모두 다 행복하지 않고 '불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각종 인터넷 정보들과 영상들만을 살펴보아도 그분들의 '얼굴 표정'들은 우리들 보다도 더 '행복'해 보인다. 

거짓말 같으면 좀 찾아봐라. 행복은 찾는 자에게만 오는 법이다.


그들보다 삶의 여건들이나, 환경들은 우리가 훨씬 더 좋은데도 불구하고,

'자살률'이나 '정신질환', '스트레스' 지수 등은 우리보다도 낮고, 

'행복지수', '행복감, 만족도' 등은 오히려 우리보다도 더 높다.


여러분들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옛말에도, '행복'은 '행복'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본 사람에게나 찾아온다고 했다.


여러분들이 고민해 보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옛 꼰대들에게 계속 끌려다니면서,
 
그들을 닮은, '허상'만을 쫓아 계속해서 줄을 서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 허상 : 헛된 생각 ]

혹시, 아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사회적으로 더 성공한 후에 
멋진 여성을 운명처럼 만나 결혼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말을 걸어서,
같이 음료수라도 한잔하면서, 공원을 함께 거닐며 서로를 알아보고 맞춰가며,
스스로 이 만남을 운명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녀석이다.
난, 당연히 '후자'였고.
그렇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v


난 오늘도 컴퓨터를 더 두들겨서 돈을 더 바짝 벌기보다는,
곧 퇴근할 아내를 아이들과 함께 마중 나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과 과자, 아내가 좋아하는 과일과 커피를 산 후,
함께 집에 돌아와 여러 대화들을 나누면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설거지, 집안일, 뒷정리 등을 아내와 함께 한 뒤에,
아내는 막내랑 같이 태블릿 PC로 영화를 보고,
나는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면서, 
첫째, 둘째, 셋째와 함께 로블록스 게임을 즐겁게 할 생각이다.


그게 바로,
아빠가 된 나의 '행복'이니까 말이다.

[ 당신이, '찾고자 하는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무엇을 많이 가져야만 인간이 '행복'하다면,

부자들은 이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의 최고점'에 도달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부자들을,
'당신은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오히려,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했었던 사람들에게서,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최고로 행복한 모습들'을 본 후에,
아주 큰 충격에 빠졌었다.

'당신은 인간의 행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그 행복'을 누릴 수가 있음을, 

나는 나보다 가난했던 그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알 수가 있게 되었다.

당신이 찾는 행복은,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
당신은, '어떤 생각'들과 '행동'들을 하고 있는가?

- 어느 작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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