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내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링스 Aug 21. 2019

책 좀 읽어라.

책이 영화보다 논리에 도움되는 이유에 대해

세상엔 너무 많은 컨텐츠가 있어 소비해내기조차 힘들다. 꼭 봐야 할 만한 영화도 다 못 보는데 새로운 영화가 나오고 있어 조급증을 자극하고, 유튜브에는 날마다 재밌는 계정들이 시간을 뺏어간다. 최소한의 기사도 읽어야 하고, 한 번 나무위키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도 힘들다. 커뮤니티에 쌓이는 사람들 이야기와 웃긴 사진들도 하루를 빼곡히 채운다. 그럼 책은 언제 읽나? 그래서 나는 최근 책은 거의 끊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를 안 보는 것, 기사를 안 읽는 것에 비해 책을 안 읽는 것에는 묘한 죄책감이 따라온다. 불현듯 누가 너 책은 얼마나 읽어라고 묻는다면 괜히 한 두권 정도는 읽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으로 말이다. 나만 그런 것 같진 않다. 독서가 취미에 없는 건, 무언가 건강하지 않은 정신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여기서 불만이 나온다. 나는 세상의 정보를 유튜브, 영화, 기사, 나무위키, 대화로도 충분히 습득하고 있는데? 나 책 안 읽어도 되는데? 그래서 이제 죄책감은 훌훌 털고 자랑스레 사람들에게 '난 이제 책 안 읽어. 유튜브에 괜찮은 거 많아'하고 넘긴다. 그래, 나는 독서의 압박에서 그렇게 벗어났다. 그런데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넘친다. 그렇게 인기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나 "학생들"에게 독서는 여전히 필수 과제다.


그래서 이런저런 웹서핑과 커뮤니티에서의 의견교환을 통해 책의 효과에 대해 찾아보고 고민에 빠졌다. 책은 다른 컨텐츠 소비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을 만한가? 책 읽는 거, 진짜 중요한가?


주관적인 결론은 책의 우월성은 논리력 및 이해력 향상에 있다는 것이다.


먼저 각 취미 생활을 임하기 직전의 생각을 떠올려보자. 바쁜 현대인들은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지금 뭐 볼까 하며 컨텐츠 고를 때 중요하게 체크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시간"이다. 30분짜리, 2시간짜리 등 컨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을 체크하고 지금 보면 다 볼 수 있을지를 가늠한다. 아니면 쪼개서 4일 동안 나눠보면 되겠다는 생각도 한다. 반면 책은 어떤가? 정해진 시간이 없다.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화나 영상은 시간을 컨텐츠가 지배해 통제한다. 간혹 가다 뒤로 가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큰 변동 없이 영화나 영상이 설정한 시간에 따라 소비한다. 그러나 책은 사람마다 소모되는 시간이 천차만별이다. 같은 분량의 페이지라도 글의 완성도나 난이도, 독자의 경험 정도에 따라 같은 사람도 소모 시간이 달라진다.


결국 이 시간에 대한 통제력으로 인해 우리는 실제 소비를 하는 순간에 큰 차이를 보인다. 컨텐츠의 기본은 이해다. 시각, 청각, 공감각 뭘 이용하든 외부 자극을 머릿속에 내러티브 구조로 받아들이는 게 컨텐츠 소비다. 근데 영상과 영화는 정해진 시간 속에서 해내야 하기 때문에 이해도와 상관없이 소비는 특정 시간 안에 끝난다. 반면 책은 읽는 중간중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 다음 단계로 잘 진입하지 못한다. 한 문장 안에서도 이해가 안 되면 문장을 여러 번 읽기도 하고, '조금 전에 뭐랬지?'라며 앞 장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즉, 책은 내가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이해를 하고 넘어가기 위해 사람마다 자체적으로 시간을 탄력적으로 소모한다. 그리고 그 탄력적 소모의 핵심은 논리적 사고다. '앞에서 이렇게 말했으니까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건가?'라고 되물으며, '아 이게 이 소린가?' 라며 재조직하고, '아... 이거 왜 아깐 몰랐지.'라며 논리를 완성한다. 모두가 그러는 것은 아니고,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책의 속성은 이런 논리적 사고 단계가 발생할 가능성을 늘 내포한다. 물론 책을 쓰는 작가들이 다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논리적 사고 단계는 증폭된다.


영화나 영상은 시각과 청각으로 친절하게 실제 자극(평소에 일상으로 보던 장면, 평소에 듣던 소리)을 활용하기에 숨겨진 내러티브나 맥락을 이해 못하더라도 넘어가는 데 크게 문제가 없다. 각자의 이해도가 달라지더라도 같은 시간이 흐르면 컨텐츠는 끝난다. 그래서 그런지 책보다는 영화가 리뷰 시장이 크고 컨텐츠가 많은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시각이 동반되기에 시각적 분석 등이 있기도 하지만, 줄거리 요약이나 내러티브 분석 같은 기초 리뷰도 많은 걸 보면 이런 통제된 시간의 속성에 그 이유가 있어 보인다.


결국 다시 말하면, 책은 독자가 스스로의 이해력과 이해 의지에 따라 논리적 사고를 좀 더 자유롭게 발동할 수 있다(논리 뿐만이 아니라 감각적 상상력도 당연히 같은 논리로 풍부해질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말해 컨텐츠를 주도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도성으로 인해 결국 논리적 사고의 빈도가 높아지고 이해력과 논리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의 통제를 받지 않는 만화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생각이 드는데, 만화는 그림이라는 시각적 연속성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음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또한 텍스트를 읽지 않고 그림만 보고 넘어가도 가능한 구조여서 "이해 의지"가 많이 무뎌진다. 그럼에도 영화보다는 더 관여도는 높겠지만.

이상이 책이 우리에게 묘한 죄책감을 줄만큼 우월적 취미로 등극해 있는 이유에 대한 고찰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 성격 그거 안바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