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바뀔 수 있는 표현 방식에 대해
사람은 변하지 않지만, 사람이 표현하는 강도와 빈도 그리고 유무는 바뀔 수 있다. 사회화라고 해야할까, 생존 본능이라고 해야할까, 현명해진다고 해야할까. 뭐라 부르든 분명 우린 성격은 바뀌지지만 표현은 바뀌고, 그럼 남들은 내가 성격이 바뀐다고 느끼게 된다.
내가 생각해 본 '성격'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나의 '평가'이다. 어떤 것이 옳그 그른지, 어떤 것이 좋고 싫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가진 하나의 평가 시스템을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표현'은 성격에 따른 '반응'이다. 강하게 그르다고 평가하면 강하게 표현할 것이고, 조금 좋다고 판단하면 작게 표현할 것이다. 물론 평가와 표현 둘 다를 포함해 성격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만, 좁은 의미의 성격은 평가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이 성격(=평가)은 가치관이자 삶의 태도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 부동적인 것이다.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들도 보통 이 평가 시스템이 여전할 때 말하게 된다. 대신 표현은 말 그대로 표현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내 기분에 따라, 심지어 신체 컨디션에 따라도 달라지는 유동적인 것이다.
결국 "표현"은 유동적인 것이기에 조절이 가능하다. 즉, 우리가 습관처럼 해왔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해서 그렇지,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것에 대한 평가는 바꾸는 건 절대 불가능할 지라도, 그 평가에 따른 표현은 자제하거나 절제할 수 있고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물론 표현도 오랜 기간 누적된 하나의 행동양식이기에 습관으로 자리잡아 고친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리고 그 표현에 대한 태도가 완강한 사람은 역시 바꾸지 않을 거고.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말수가 줄어들기도 하고, 말수가 늘어나기도 하는 건 바로 표현은 유동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 대화를 해보면 이 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는 별로 바뀌지 않은 걸 알 수가 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학술적이거나 실험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기에 맞다 틀리다 자체를 논할 수 없는 하나의 상념이지만, 나 스스로가 사람들이 많이 변했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나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했을 땐 여전히 유효한 설명으로 보인다. 나는 그저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좀 더 하지 않으려 하고, 해야할말은 좀 더 하도록 변해왔을 뿐이다.
우리도 나는 안변한다는 완고한 입장 속에 살아가기 보단, 내 생각머리는 바뀌지 않을지언정 말을 조심하거나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건 어떨까. 그 변화만으로도 너무나 큰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그런 변화들을 통한 긍정적인 외부 피드백이 결국 깊은 곳의 성격까지도 바꿀 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