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슬로운|2016|존 매든
긴장도가 뒤로 갈수록 높아지고, 인물에 대해 빠져든다. 호불호가 갈리는 성격이기에 누구는 점점 불편해지는 영화일 테고 누군가에겐 극적인 쾌감을 주는 영화일 것이다. 나는 후자.
누구보다 뛰어난 현실적 판단력과 실용적 추진력으로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실패가 없는 로비스트 슬로운. 영화는 당연하게 과정이냐 결과냐라는 원론적 고민을 던진다. 결과를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까? 슬로운에게 이용당한 한 팀원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선을 넘은 것이라 충고한다. 하지만 그 선 안에서 발버둥 치다 에너지만 소모하고 원했던 건 얻지 못하게 된다면, 그리고 계속 다음을 기약하기만 한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약자 혹은 소수를 위한 혁명적 변화에는 피해가 수반된다.
명분을 뒤에 세우고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질 각오로 이끄는 혁명은 필연적 피해자를 양산하지만, 대중이 지지하기도 한다(배트맨!!). 슬로운은 욕을 먹고 벌을 받겠지만 그 결과로 이루어내는 총기규제는 많은 소수의 꿈이었던 것이다. 가치판단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이런 다크히어로를 지지하고 존중하고 존경한다. 옳은 말을 하는 것은 쉽다. 옳은 세상을 만들기는 어렵다.
영화가 좋았던 것은 신념으로 가득 찬 인물이 점점 무너지는 형태로, 독기가 점점 빠지는 인물 드라마로 가는 것처럼 가다가 마지막에 너무 묵직한 한 방으로 극대화된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청문회에서 슬로언의 발언은 몇 번이고 돌려볼 만한 명장면이자 명대사이다. 자신을 낮추고 자아 비난하며 오히려 자기 집단의 지지를 끌어내며,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하지 않는 솔직한 모습으로 진정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연민과 지지를 일으키는 시점에 (불법으로 마련한) 핵 카운터 펀치를 던진다. 결국 그녀는 감옥을 가지만 그녀의 팀과 집단은 이겼다.
‘내가 세상을 배신할지언정 세상이 날 배신하게 할 순 없다’ 던 조조의 말이 떠올랐다. 슬로운은 욕해도 그녀가 바꾼 세상은 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