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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Sep 25. 2019

윤리가 망친 분노의 가능성

분노의 윤리학|2012|박명랑

영화를 보고 나면 여러 가지 단점과 장점들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느껴진다. 먼저 장점. 개성과 역할이 분명한 여러 캐릭터들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개연성들을 잘 짜 맞춘 구성이다. 우리나라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스토리 중심이지 치밀한 플롯팅을 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장면과 장면의 비하인드 이야기들을 계속 붙이면서 인물의 속사정들을 교차시킨다. 가이 리치 감독이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즈나 스내치에서 보여주는 듯한 매력적인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하고 보는 맛이 있다.


문제는 그런 각본과 연결의 연출 방향은 좋았으나 실제 영화를 구현하는 연출은 매우 아쉽다. 먼저 전체적인 분위기가 악당들이 여럿 등장하며 서로 물고 물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빠르고 경쾌한 편집과 연출, 그에 맞는 음악들이 필요하다. 초반엔 속도감이 있었으나 점점 각 인물의 행동에 과도한 의도를 부여하고 갑자기 윤리학 강의를 하듯 선과 악을 넣으려고 하는 느낌이 든다. 어차피 영화는 영화이기에 더 경쾌하게 치고 달렸으면 했는데, 점점 루즈해지더니 결말 씬에서는 충격적인 지루함과 투머치 대사, 황당한 전개 등이 겹쳐 영화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갑자기 총이 나온다거나, 총을 맞은 인간들이 수십 분째 계속 살려달라거나 자기변명을 한다거나. 그냥 탕탕탕하고 죽을 놈 죽이고 살릴 놈 살리고 했었어야 했다.

보기와 다른 그 지루한 장면..

또 다른 문제는 2012년에 만들어졌으리라 상상도 못 할 만큼 아쉬운 미술과 의상이다. 촌스럽다. 그래서 각각 매력적인 악당을 맡아야 할 캐릭터들이 다 그냥 좀 구리다. 조진웅과 곽도원, 이제훈 등 캐릭터들이 말투와 대사, 성격까지 개성이 잘 살려져 있는데, 시각적으로는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후줄근함이 느껴져서 아쉬웠다. 또한 장면 전환에 쓰인 그래픽도 어색했고 전반적으로 세련됨이 부족했다. 각 인물을 등장시킬 때 잠시 정지시키고 이름과 역할, 직업, 별명 등을 소개해주거나 각자에 맞는 테마 색이나 배경 음악 등이 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너무 각본에 집중한 게 아닌가 싶다. 소위 말해 스타일리시함이 없고. 때깔이 안 좋다.


그럼에도 영화의 이야기는 잘 만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주목을 받을 만도 하다고 봤는데, 흥행과 평가 모두 처참하다. 그래서 봤더니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마케팅에 있었다. 일단 이 영화는 주인공인 이제훈이 어떻게 될까? 혹은 누가 이길까? 이런 형태의 이야기 중심의 오락 영화다. 그런데 누가 가장 악한가? 누가 윤리적으로 문제인가? 이런 이슈를 던져버렸다. 사실 영화는 누가 가장 악한지는 너무 쉽다. 살인자가 가장 나쁜 놈이다. 그런데 이걸 누가 악한지 따지는 철학적이거나 메시지를 담는 영화처럼 해버렸으니 문제다.


아무튼 분노의 윤리학이라기보단, 분노 대 분노 대 분노 같은 컨셉이었으면, 우당탕탕 결말까지 메시지 빼고 신나게 달렸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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