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인이 되고 나서 깨달은 사랑의 의미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소위 '덕후'들이 꼭 하나씩은 있었다. 아이돌이든, 영화든, 야구든, 게임이든 뭔가 미쳐서 하는 애들이었다. 친구 한 명은 직장인인데 퇴근하면 매일매일 한화 이글스 야구를 본다. 예외는 없다. 어쩌다 평일 저녁에 만나서 놀면 실시간으로 점수를 확인하고 집 가서는 하이라이트를 본다. 물론 직관도 자주 간다. 혼자서도 간다. '지겹지도 않나? 어떻게 저걸 매일매일 보지?' 싶어 신기했다.
다른 한 명은 여자아이돌을 좋아했는데 팬사인회 간다고 CD를 몇십 장씩 사지를 않나, 지방에 있는 행사까지 다녀오고, 해외 공연도 보러 가고 그랬다. 덕분에 걔가 좋아하는 아이돌 CD는 꼭 한두 장씩 받고는 했었는데 내심 충격이었다. '부자라서 가능한 건가?'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부자였어도 저렇게 못 했을 것 같아 신기했다.
이런 친구들을 보면 매번 놀라웠다. '어떻게 이걸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지? 나는 못 할 것 같은데.' 신기한 마음도 컸지만 돌이켜보면 마음속 깊이 그 애들이 부러웠다.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탐조를 시작하고 나서도 내 마음보다 더 큰 애정으로 새를 찾아다니는 분들을 만나면 그때의 그 감정이 올라온다. 귀한 새를 찾아 전국팔도를 돌아다니는 분들, 올해 300종을 보는 것이 목표라는 학생, 오전 내내 같이 탐조하고도 지칠 줄 모르고 밥 먹고 다시 새를 보러 가는 사람들, 봤던 새가 또 나타나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신이 나서 계속계속 바라보는 분들.. '어떻게 저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좋아하고 싶다는 마음과, '나는 저렇게까지 못 할 것 같은데'하는 불안함이 같이 올라왔다. 이 불안함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이건 조급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이 보였던 열정과 패기가 아니라 결과물들, 종추 기록들, 새에 대한 지식들.. 그 모든 것을 나도 빨리 따라잡아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 때문에 남과 비교하면서 과정을 즐기지 못했던 것이었다. 또다시 반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탐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깎아내리는 일.
그 조급함을 내려놓으면 나도 다시 '저렇게까지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새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새를 향한 순수한 애정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은 봄가을마다 서해안의 섬을 찾아가는 탐조인의 열정, 매일 야구팀을 응원하는 친구의 헌신, 수십 장의 CD를 구매하고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는 팬의 마음처럼, 내가 보아왔던 '덕후'들의 마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에너지였다. 그리고 문득, 이들이 무언가를 이토록 깊이 사랑하는 마음은 결국 그들 자신과 그들의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만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이나 무언가를 사랑할 수 없다. 반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낌없이 사랑을 나눌 수 있다. 내가 부러워했던 덕후들의 행복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힘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를 좋아하는 일이다. 덕후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 세계를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열정을 쏟는다.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행복은 또다시 자신의 세계를 충만하게 채우게 된다.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되면서 새를 좋아하게 된 나는 그제야 덕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 실수로 브런치북에 발행하지 않고 그냥 발행하기를 눌러 다시 업로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