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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May 07. 2020

08 결혼을 했다 : 당신과 함께 할 10억 광년

푸근하고 맘씨 좋은 내 사람과 따뜻한 밥을 먹는 것

여름이 끝나갈 무렵 연애 비슷한 것을 시작했다. 몸 컨디션이 어떻게 될지 몰라 다른 사람과 약속 같은 것을 잡은 지 오래되었는데 그는 약속 없이도, 혹은 즉흥적인 약속으로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모두 내가 연락을 하면 언제든 OK 하기 위해 5분 대기조처럼 주변을 서성이던 남편의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는 악기점 사장님 소개로 처음 만났다. 2017년 여름 홍수 피해로 문을 닫았지만, 2015년과 2016년에 내가 노래를 하러 가던 클럽의 사장님이셨고, 매달 공연 후 뒤풀이를 함께 하며 친해졌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큰 악기점도 운영하고 계셨기에 사랑방처럼 가끔 들러 기타를 수리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구경하기도, 학교 밴드부 물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남편은 그 클럽의 단골이었다.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노래하는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과 사장님은 일주일에 두어 번은 꼭 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사장님은 우리 둘을 각각 잘 아는 중간 지점이었고, 2018년 3월 나는 밴드부의 악기를 고치기 위해 오랜만에 사장님의 악기점에 들렀다. ‘요새 만나는 사람 없어?’라고 물으시기에 없다고 하니 사람을 소개해주시겠단다.      


그러다 다시 연락을 받은 것은 몇 주 후 피부과 진료대기실에서였다. 좋은 사람이 한 명 있다며 소개를 해준다고 하셨다. 그 후 사장님과 H언니(사장님은 사장님이라고 부르지만, 사장님의 와이프는 언니라고 부른다)가 얼굴이나 한번 보자며 어물쩍 불러낸 자리에 남편이 합류했고 그가 사장님이 소개해주려던 사람이라는 것은 까맣게 모른 채 그냥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이때 남편은 내가 그 소개팅의 대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장님에게 내 이름을 들었을 때, 내가 클럽에서 노래하던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그냥 가끔 만났다. 그러다가 친해지게 된 것은 시간이 더 흐른 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길목쯤이었다. 내가 연락을 할 때 그는 거의 대부분, 아니 항상 시간이 되었고 그래서 만나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내 체력이 여의치 않기에 주로 그가 내가 사는 곳으로 왔고, 아파트에서 그네를 타기도 하고 같이 축구를 보기도 했다. 처음 만나게 된 명분은 소개팅이었지만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의 베스트 프렌드를 알게 된 것이라, 거리를 두지 않고 그저 친구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를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편한 친구로 생각한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우리는 최애 가수(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같았다. 둘 다 딱 두 명 - 대중에 많이 알려진 가수 1명, 인디 가수 1명 - 만 덕질* 중이었는데 이 두 명이 정확히 일치했다. 그것 때문에라도 우리는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9월 초입에는 그가 우리의 최애 인디 가수의 지방 공연(우리가 사는 곳)을 추진했다. 둘 다 워낙 오랜 팬이고, 공연에서 안면을 튼 적이 여러 번이라 가수와도 이미 아는 사이였다. 공연을 추진해볼까? 라더니 가수님에게 연락을 했고, 공연을 하기로 했으며, 장소도 마련했다고 했다. 장소는 그의 동생이 운영하는 카페였다. 그것을 준비할 요량으로 또 나를 만나러 왔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을 도와 달라길래, ‘아니 이런 것도 혼자 못하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나도 지도를 올리는 데 고전을 면치 못해서 달리 타박하진 않았다. (물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나와 만나기 위해 굳이 같이 하자고 한 것이었다.)     


덕질 :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이르는 말. (출처:네이버 오픈사전)  

    

그렇게 매일 보다가 그냥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 사귀는 사이가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식 날짜가 잡혀 있었다.          




사귀기 시작한 지 4일 만에 상견례 날짜를 잡았고, 바로 다음날 시아버지가 예식장을 알아보러 시내를 다 돌아보시곤 날짜를 몇 개 받아오셨다. 그다음 날에는 예식장을 최종 예약했다. 그리고 이틀 후가 상견례였다. 사귀고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결혼식 날짜를 잡고, 상견례를 하기도 전에 결혼식 예약이 끝나버렸다. 나의 급한 성격과 시아버지의 추진력이 만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당시 가족도, 친척도, 친구들도 모두 놀랐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놀랐다.     


나는 무엇인가를 마음속에 굳이 오래 담아두고 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해야 할 것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하는 편이 낫다. 기다리거나 오랜 기간 고민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크기에 결정을 빨리 하는 쪽을 택한다.     


그즈음 학교에서 부서 식사자리가 있어 나의 결혼 소식을 처음으로 알렸는데 파격적인 전개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를 몇 년 간 봐왔던 한 선생님은 ‘쌤답다’라며 웃으셨다. 참 나다운 행동이었다고, 지금의 나도 생각한다.     


쇠뿔을 단김에 백번도 더 뽑을 사람이다 나는.  


주어진 시간이 짧아 모든 것을 빠르게 결정해야 했는데, 고민할 시간이 줄어들어 그 편이 오히려 나에겐 나았다.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고민과 번뇌의 시간만 길어지기 때문이다. 촉박한 결혼 일정은 그저 나의 급한 성격과 아버님의 추진력에 기인한 것이긴 했지만, 내가 정신적/신체적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받으며 결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 유일했던 것 같다. 그 모든 의사결정 과정을 6개월, 1년 동안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면 결혼도 하기 전에 내 머리가 터져버리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결혼은, 빨리 해버리길 잘한 것 같다.   

   

당시의 촉박함을 보여주는 스케쥴표 / 청첩장


결혼 소식을 알리고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당연히도 ‘설마...?’였다. 하지만 그런 불가피한 이유가 아니면 준비기간을 더 길게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결혼을 뒤로 미룰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다. 이 사람과는 평생 살아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주례는 내가 이전 학교에서 근무했을 시절, 나를 본인의 제자처럼 아껴주신 당시 교감선생님께 부탁드렸다. 교감선생님과 저녁식사를 할 때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임쌤, 언제 왜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이 사람이면 평생을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그럼 됐어요.’     


누군가와 평생을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은 남편이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원하고, 애정 할 순 있지만 그 감정과 ‘평생을 함께 살아도 괜찮다’는 느낌이 같이 오는 것은 얼마나 드문 일일까.    

  

드문 일이었기에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은 남편과 결혼한 일이라 생각하고, 같이 살수록 앞으로도 쭉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나의 느낌은 틀림없는 것이었나 보다.          




우리는 매일 만났다. 함께 있을 땐 항상 즐거웠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남겨질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몰려와 자주 울었다. 낮에 느낀 행복과 따뜻함은 곁에 없지만, 밤이 되어도 내가 그 모든 통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행복을 느끼는 나와 통증을 느끼는 나와의 간극이 슬펐고, 그렇게나 차이가 큰데도 둘은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또 서글퍼서 그냥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내 삶에 누구를 받아들인다 해도 결국 통증은, 이 통증만은 나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그와 헤어지고 돌아온 커다란 집에서 덩그러니 나는 참 외로웠다.          



하지만 그와 같이 살게 된 이후부턴 그런 간극 때문에 혼자 우울해하는 일은 사라졌다. 내가 아픈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사람이 남편이다.    

  

그와의 결혼은 정말로, 수영보다도 훨씬 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                    



   

2018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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