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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Jul 18. 2020

20 최악의 임신성 두통, 임신부는 의료계의 고아

나는 그날 응급실에서 몇 번이고 버려졌다

열흘 동안 여러 병원과 응급실에 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의료진이나 119 대원의 얼굴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두통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처음 느껴보는 증상이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고 어지럽기도 하면서 심장박동처럼 욱신욱신거렸다. 임신 출산 카페에 ‘두통’을 검색해서 관련된 글을 찾아 읽다가 얼마 후엔 그마저도 못하게 되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빛을 보면 두통이 더욱 심해져 온 집안을 어둡게 만들었다. 임신성 두통이 많다는데 휴대폰 불빛을 볼 수 없어 정보를 많이 찾아볼 수도 없었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움직이면, 그래서 뇌가 흔들리면 그것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내 음성이 뇌를 울려 깨질듯 아팠다. 나는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숨죽인 채 모든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저 버티고 있었다. 단 한순간도 괜찮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단 1초도 두통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임신부에게 허용되는 유일한 진통제라는 타이레놀은 이미 먹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타이레놀은 가장 낮은 단계의 진통제이다. 이런 두통에 아무 소용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통증 때문에 가지고 있는 울트라셋*이라는 진통제가 있어 남편에게 산부인과에 전화로 물어봐달라고 했다. 산부인과에서는 그 약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큰 병원 응급실에 가라고 했다. 가까운 A대학병원 (1화에 등장했던 그 병원 맞다) 응급실에 가기로 했다.

*울트라셋, 트라마돌 : 중등도의 급만성통증에 사용하는 진통제 (타이레놀 다음 단계의 진통제)     


화장실에도 겨우 걸어갔고, 남편과는 쪽지로 대화하거나 아주 작은 소리로 소곤댔다. 남편은 전날부터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어차피 임신부라 타이레놀 따위만 받을 것 같았고, 병원까지 가는 여정을 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 밖을 나가 차도 타고 걷기도 해야 한다니. 어차피 타이레놀만 처방해주는 것이 아니냐며 산부인과에도 물었더니 검사를 해보면 다른 처방이 나올 수도 있다기에 뭔가 다른 가능성을 바라고 갔다. 타이레놀을 받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다.     


응급실에 도착해 몇 가지 검사를 했다. 피검사, 소변검사 같은 기본적인 것들. 그런 것들에선 정상 소견이 나왔고 응급실에선 타이레놀 수액만 주었다. 트리마돌을 맞을 수 없냐고 하니 안 된다고 했다. 당연히 타이레놀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틀 후 밤엔 다니던 산부인과에 갔다. 눈도 뜨지 못하고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선 나를 본 그날 당직 의사는 많이 놀랐다. 임신성 두통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대학병원 신경과에 가보라고 했다. 임신부라 어차피 타이레놀만 주는 것 아니냐 재차 물으니 대학병원은 약을 좀 더 다양하게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병원에 오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신경과 외래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곧장 A대학병원 신경과로 갔다. 당일 접수가 되어 삼십 분쯤 기다려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교수 태도가 가관이었다.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모니터를 응시하며 무심하게 마우스 스크롤만 내렸다. 임신 때 이런 경우가 많은지, 약을 먹을 수 있는 게 없는지에 대해 물었지만 ‘MRI를 찍어보시죠.’라는 말 말고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찍으면 알 수 있냐 물어보니 또 별 대답을 하지 않았다. MRI를 찍으려면 일단 입원을 해야 한다는데 얼마나 입원을 해야 하는지 물으니 그것도 모르겠단다. 제대로 된 문진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환자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충분한 대답도 해주지 않은 채 엉덩이를 쭉 빼고 의자에 등을 구부정하게 기대앉아 제일 꼴 보기 싫은 타성에 젖은 대학교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무성의한 진료를 받기 위해 나는 온갖 고통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나. 억울함과 짜증이 치밀었다.      


그 후 A 대학병원 신경과의 일 처리 때문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입원을 하라더니 밖에 있는 간호사는 자리가 없는데 무슨 입원이냐며 우리를 한동안 서 있게 했고(당연히 나는 서 있는 것도 매우 힘든 상태였다), 베드가 없으니 일단 응급실에 가 있으라 했다. 응급실에 가 있으니 두 시간이 넘도록 응급실에선 내가 왜 그곳에 있는지를 몰랐다. 몇 번이고 신경과에서 입원 병동에 자리가 없어 일단 이곳에 와있으라 했다고 설명했지만 응급실에선 그런 전달을 받은 적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병실에 올라간 건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였다. 병실은 너무 밝았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둡고 조용한 곳에 있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밝고 시끄러운 곳에선 몇 배로 아팠다. 간호사가 꽂아주는 수액 몇 가지를 맞으며 몇 시간을 누워있으니 앳되어 보이는 전공의가 왔다. 힘들게 입을 열어 약을 좀 달라고 했다. 타이레놀이 아닌 더 센 진통제를 제발 좀 달라고.     


"태아에게 무리가 가서 안 됩니다."

"... 그럼 저한테 무리가 가는 건요?"    


서러웠다. 눈도 못 뜬 채 몇 시간 째 고통을 호소하는 나는, 눈앞에 실재하는 나라는 사람의 안위는, 건강은, 전혀 고려요소가 아니었던 걸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있다 다시 와서는 MRI 기계가 고장이 나 언제 검사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진통제 하나 받지 못하는데 빛과 소음이 가득한 불편한 다인실에 굳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퇴원을 하겠다고 했다. 병원엔 이젠 더 기대할 게 없으니 차라리 어둡고 조용한 집에서 편히 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또 응급실에 왔다. 병원 따위 다시 오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결국 또 오고야 말았다. 두통은 점점 심해졌고 도저히 그대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검색해보니 편두통 약은 임산부 금기 2등급이었고, ‘명확한 임상적 근거 또는 사유가 있는 경우 부득이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아직 MRI를 찍지 못한 상태이므로 그런 부득이한 상황에 해당되어 약을 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차로 병원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괴로웠다. 갑자기 쏟아지는 빛과 소음, 차의 덜컹거림이 전해져 내내 심한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뇌를 가득 채우는 욱신거림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여보, 난 대체 어디까지 아파?’


말을 하면 아프니 마음속으로만 그 문장을 되뇌었다. 대체 이 고통의 끝은 어딜까. 어디까지 아플 수 있는 걸까.     


또다시 밝고 시끄러운 응급실 한가운데 누웠다. 빛과 온갖 소리의 공격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얼마간 기다리다 드디어 뇌 MRI를 찍으러 갔다. 눈을 뜨지 못하니 그 역동성이 온몸으로 더 강하게 전해졌다. 덜컹덜컹 휠체어가 요동치던 소리, 그와 동시에 흔들리던 뇌, 깨어질 것 같던 통증, 그 상태로 머리에 장치까지 두르니 고통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것만 같았던 MRI 기계 속 30분. 무슨 정신으로 검사를 마쳤는지 모르겠다. 제발 이상이 있길 바라는 마음, 그 결과로 이 고통을 해결해 줄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일말의 기대로 버텼다.      


그리고 한 시간 후 결과가 나왔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전형적인 편두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타이레놀을 주겠단다. 허. 지금 타이레놀이라고요. 두통과 편두통이 다르다는 것, 작용하는 치료제의 기전이 아예 다르다는 것은 웬만한 두통환자들도 다 안다. 근데 뭐, 타이레놀을 주겠다고? 어이가 없었다.     

 

"선생님", 개미 같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타이레놀은 편두통에 소용없는 거 아시잖아요."      


"임산부에게 드릴 수 있는 약이 타이레놀밖에 없어서요."     


그가 떠났다. 그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였을까 신경과 전문의였을까. 모르겠다. 눈을 뜨고 있었다면 이름까지 기억했을 나지만 눈을 뜰 수 없었으니 누구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남편에게 말해 의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편두통 약을 달라고 했다. 못준다고 했다. 계속 못준다고만 했다. 난 내가 얼마나 아파야 약을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난 정말 매 순간 매초 아팠다. 언제까지 이 지옥에 살아야 하는지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2등급 약이잖아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힘겹게 입을 열어 꼭 필요한 한 마디를 했다. 그러니 약을 달라고. 이것은 부득이한 상황이라고, 나는 약이 필요하다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건 불법이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불법이라고? 언제부터 내 몸이 불법의 영역이 되었나. 눈도 못 뜨고 말도 못 하고 뇌가 터질 것 같이 아파도 편두통 약 하나 먹지 못하는 것이 내가 이 나라에서 가진 내 몸에 대한 권리인가? 이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을 하나 먹는 것이 불법이 되는 논리라니. 국가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되어 소름이 끼쳤다. 9개월 후에 사람이 될 가능체도 분명 소중한 존재이지만, 그렇다면 그 가능체를 품고 있는 눈앞에 실재한 인간은 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임신부는 통증이 없나? 임신부는 아무 병에 걸리지 않고 10개월을 건강히 살 수 있나? 왜 세상에 임신부가 먹을 수 있는 진통제는 타이레놀 따위뿐인 건지, 왜 개발하지 않는 건지, 왜 모든 의료계가 그 10개월 동안 손을 다 떼고 나 몰라라 하는 건지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모두 다 응급해서 이 응급실에 와 있는데, 나만 치료를 못 받고 있었다. 나만, 나만.  

    

씨발 존나 아프다고!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 상스럽고 거지 같은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리치며 집기를 집어던지고 난동을 피우고 싶을 정도의 통증이었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게다가 응급실은 불이 몇 천 개쯤 켜져 있어 온통 하얗게 빛났고, 다른 환자들의 대화 소리, 비명 소리가 내 뇌를 공격했다. 나는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그렇게까지 극심한 통증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난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두통을 계속 겪고 있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나는 몇 번 거절당한 후에도 계속 의사를 불러 편두통약을 달라고 말했다.    

  

"태아의 기형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위험도 감수하시겠다는 겁니까?"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편두통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왔고, 실랑이 끝에 겨우 받아낸 편두통 약을 먹었다. 두통이 가라앉길 기다리며 이제야 조금 마음을 놓으려던 참이었다. 10분쯤 지났는데 뭔가 이상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안면에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되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여보, 이상해, 나 이런 적은 없었는데."     

처음으로 119를 불렀다.     


   


아주 짧게나마 희망을 가졌다. 아, 이젠 이렇게 죽을 것 같으니 합법적으로 임신 중단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난 이 모든 고통에서 이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눈을 감고 누운 채로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겨지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난생처음 구급차를 탔는데 내부를 전혀 보지 못했다. 나는 구급차에 실려 한 시간 전의 응급실로 다시 돌아왔다. 약에 대한 부작용 반응인 것 같다고 했지만 임신부였기에 역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효과가 없으니 진통제(타이레놀) 수액도 맞지 않겠다고 했고, 그저 누워서 증상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했다. 평생에 이런 두통은 없었고, 임신성 두통에 대한 글을 몇몇 읽었으니 그것이 임신, 정확히는 임신 시 분비되는 호르몬 때문일 거란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산부인과에서도 분명 임신 중에 심한 두통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문장이 나에게 이런 끔찍함으로 현실화된 것이면 나는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그만하자고. 우리는 내가 살길 간절히 바랐다. 나를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불러 상황을 말하고 임신 중단에 대해 물으니 불법이라고 했다.   

  

불법.

대체 산모가 얼마나 아파야 합법적인 임신 중단이 가능할까. 죽기 전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생명의 가능성만큼이나 그 가능성을 품은 모체의 생명은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것 같은데 세상은 전혀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임신부는 의료계의 고아.

그날 나는 응급실에서 몇 번이고 버려졌다.


10일간 병원에서의 사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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