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단다
3년 차였다. 스물다섯이 되었고, 나는 그제야 어딘가에 가서 직업이 교사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첫 학교에서의 3년은 대체로 힘들었지만 그중 마음을 잘 맞는 아이들을 만난 것이 2010년이었다. 나는 학급 네이버 카페를 만들어 아이들의 수학여행 사진을 올리고, 주말에 벌점을 없애는 명목으로(당시 그 학교에서는 교사와 등산을 하면 상점을 주어 벌점을 상쇄해주었다) 아이들과 일요일에 등산을 했다. 그냥 산에 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김밥을 싸들고 갔다. 나는 김밥을 잘 쌌고,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들을 그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때 한 아이가 그 김밥이 맛없다고 투덜대던 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못된 놈.
신규교사 연수 때 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종례 신문’을 매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날의 공지사항, 칭찬, 하고 싶은 이야기, 같이 읽으면 좋을 글귀나 노래 가사 같은 것들을 넣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열정이었다. 그 종례 신문이 바닥에 버려져 있으면 내 마음도 꾸깃해지는 듯했지만 몇몇 아이들은 파일철에 가지런히 보관까지 해서 나를 뿌듯하게 했다. 종례 신문을 잘 모은 아이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선물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난 주로 퍼주며 살았다. 종례 신문도 그냥 내가 시작한 것임에도 그걸 잘 모았다고 선물을 주었다. 1학기 반장 부반장 임기가 끝나자 수고했다고 같이 고기를 먹으러 갔고 오랫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던 아이를 찾아 돈가스를 먹였다. 왠지 그런 마음이 들던 아이들이었다.
그해 여름엔 2학기의 영어수업 자료를 한꺼번에 만들어 책 한 권으로 제본했다. 마치 나의 첫 책인 것처럼 만들었고 내 소개에는 ‘꿈을 꾸고 싶고, 꿈을 꾸고,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내가 교사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꼈음에도 그 아이들과 그렇게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같이 꿈을 꾸는 길목에 서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학교라는 곳은 유일하게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직장이었다.
나는 나의 꿈이 종결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꿈을 꾸고 있었고, 끊임없이 내 길을 찾고 있었다. 글을 쓰고 반 아이와 노트를 바꿔 읽고 코멘트를 달아주기도 했다. 내가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나의 모습이 나의 종착지가 아니라는 것만은 명확하게 알 수 있던 순간들이었다.
그 아이들과 예정보다 한 달 일찍 헤어지게 됐다. 내가 2011년 1월 중순부터 미국으로 장기연수를 받으러 가게 된 것이다. 급하게 짐을 싸면서도 나는 반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반 전체에게, 그리고 각자에게 모두.
그 10년 전 편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편지의 가장 아쉬운 점은, 보내는 순간 나는 다시 읽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확히 10년이 지난 2020년 5월 스승의 날, 그때의 한 아이가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2010년도 **중학교 2학년 2반 30번 이**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너무 늦게 연락을 드린 거 같네요.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오래 흘러 벌써 10년이 지나 2020년이에요. 그렇지만 아직도 함께했던 추억들 많이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는 오늘날처럼 스마트폰이 없어서 네이버에 반 카페를 만들어 밤에 선생님과 애들이랑 채팅도 했었는데 기억하시나요, 캡틴? 그리고 봄인가? **산 등반도 했었고, 가을에는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었지요.
선생님의 근황이 궁금하네요. 선생님이 가신 후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음악 하신다고 들은 거 같은데. 여하튼, 최근 방을 정리하다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다시 읽어봤어요. 편지를 읽으면서 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제 슬슬 머리가 커져서 그런가,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네요. 선생님이 저희를 가르치셨을 때 지금 저랑 비슷한 나이셨을 텐데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을 거 같아요. 그때는 왜 그랬을까, 후회돼요. 그리고 응원해 주신 거 감사해요.
사실 좀 더 잘된 뒤에 연락드리고 싶었는데, 10년이라는 기념적인 숫자와 스승의 날에 연락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이렇게 짧게나마 재주 없는 솜씨로 편지를 쓰게 됐어요.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마냥 즐거운 시간만 있지는 않았지만, 혼난 것도 저에게는 지금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순간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선생님 어디 계시든 항상 건강하시고,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5월 15일
이** 올림
스물다섯의 내가 열다섯 아이들에게 썼던 편지를, 이제 스물다섯이 된 아이에게 다시 받았다. 이제 정말 그때의 내 나이가 되었다면서 연락한 그 아이의 메시지를 보며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고마워. 날 기억해줘서 고마워. 나와 함께한 시간들을 기억해줘서 정말 고마워.
열다섯.
스물다섯.
서른다섯.
그리고 다시 읽게 된 십 년 전 내가 그 아이들에게 쓴 마지막 편지.
나는 마지막까지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해서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 말은,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 아이들의 나이로 돌아간다면 그 무엇보다도 우선순위에 놓을 말이었다. 내가 편지에 적은 나쁜 예시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휩쓸려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은 바로 나였다. 그 아이들만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랐다. 나처럼 살지 않길 바랐다.
2반 아이들에게 – 마지막 편지
많은 바람이 있질 않았다.
선생님은 그저, 2학년 2반이었다는 사실만으로
나중에 시간이 흘러 너희가 선생님 나이쯤 되어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았을 때
2반이어서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면
그걸로 된다고 생각했다.
(중략)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라. 앞으로 진로를 결정할 갈림길이 많이 있을 거다.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그 이후까지. 너희 모두가 미래에 ‘무언가’가 되겠지.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너희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_하는 것이다. 휩쓸리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 마치 너희의 의견인 것처럼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지도 말고, 남들이 한다고 그저 따라 하는 꿈을 버린 모습을 보이지도 말고.
대신,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우선 너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는 거다. 그걸 벌써 찾은 친구도 있을 테고. 하지만 대개는 오래 걸린다. 그러니까 조바심 내지 말고, 하지만 그렇다고 느긋하게 기다리지도 말고 이것저것 열심히 하면서 너희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꼭 찾도록 해라. 선생님도 그것이 오래 걸렸기에, 그리고 후회도 많이 해봤기에 너희는 안 그랬으면 하는 바람에 하는 말이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선생님은 더 바랄 게 없겠다.
2010. 12.27 담임쌤
혹 내가 교사를 그만두게 된대도, 너희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너희들을 대했던 나의 마음이 모두 진심이었다는 걸 믿어준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겠다.
2020. 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