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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Nov 02. 2021

기록은 잘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기록하는 마음

불렛 저널을 쓰다 보니 인스타 팔로워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작년에 시작해서 천 명이 되는 데 일 년 반이 걸렸는데 지난 한 달간 사천명이 더 늘었다. 명이라고 쓸 것을 멍이라고 잠시 잘못 썼는데 그건 사천이라는 숫자가 멍해지는 숫자이기도 해서인 것 같다.


늘어나니 자꾸 쳐다보게 된다. 자꾸 확인하고 들여다본다. 숫자에 집착하면 사람이 불행해진다. 그래서 집착하지 않고 허황된 꿈을 꾸기로 했다. 팔로워가 1만 명을 넘어 소위 인플루언서 같은 것이 되어 보는 꿈이다. 1만 명이 내 계정을 보고 있으면 난 어떨까… 그건 일단 모르겠고 인플루언서가 되면 나는 임플루언서다. 내 성을 따서 만들었다. 그런데 임플루언서가 되면 뭘 하지. 나를 홍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낸다면) 문구점을 홍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문구점을 연다면)


아무것도 당장 계획된 일이 없다. 난 그저 이 상황을 즐기기만 한다. 이걸로 뭘 하겠다는 마음도 체력도 없고 달라진 것도 없다. 아, 불렛 저널 사진을 조금 더 잘 찍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보다 더 먼저는 저널을 잘 채우고 싶고, 그걸 잘 채워내는 내 일상을 제대로 살고 싶다. 불렛저널은 그래서 적는 거다. 하루하루를 잘 살고 싶어서.


하루하루를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싶어 늘어나는 팔로워 수에 매일 놀란다. 그런데 그건 묻지 않아도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우린 모두 잘 살고 싶고,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으면 그 기록이 또다시 잘 사는 동력이 된다. 그러니 사람들이 불렛 저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잘 살고 싶다는 말이다.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이 나의 계정을 찾아왔을 것이다.


잘 살아내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여기 있다. 나는 날마다 나에 대한 면밀한 리포트를 작성한다. 누구도 하지 않을 일을 나이기 때문에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누구도 하지 않을 일을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한다. 매일 다이어리를 펼쳐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록한다.


남들 다 하는 걸 따라 하는 것 같아도 결국 모두의 노트엔 다른 내용이 남는다. 모두는 각자의 인생에 유일한 서기관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기록이 한없이 소중해진다. 어디에도 없을 보물 같다.


작년에 호기롭게 시작했던 문구 브랜드의 슬로건은 ‘every record is part of your history’였다. 모든 기록은 당신 역사의 일부입니다. 작은 메모, 일기, 저널 모든 조각들이 나의 역사라는 큰 이야기의 일부인 것을 믿는다. 그렇게 내가 내 역사를 기록하는 유일한 기록자라는 것을.


날마다 불렛 저널을 펼친다. 못 쓰는 날도 있지만 거의 매일 적는다. 내가 나를 충실히 돌보고 있다는 증거 같은 것이다. 어떤 날은 뭔갈 많이 쓰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간단한 메모만 한다. 양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삶의 흐름을 놓지 않았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흐르고 있으면 언제든 돌아올  있다. 다이어리를 적는 마음은  삶이 계속 흐르도록, 원만하게 흘러가도록 매일 물길을 돌봐주는 마음이다.


잘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 참 다행이다. 사는 건 주로 힘들거나 버겁거나 어려워지는 일일 텐데 그럼에도 일상을 붙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 마음이 소중하다.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지금의 내가 불렛 저널 하나는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꽤나 열심히 한다. 나는 꽤나 열심히 잘 살아보고 싶어 하는 중이다. 이 마음이 당신에게도 전해지면 좋겠다. 우리 모두 잘 살아보면 좋겠다.




http://www.instagram.com/pisces_recor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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