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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Jan 26. 2022

스물일곱, 음악을 시작했다

십 년 전

책을 읽다 문득 생각하니 내가 음악을 시작했던 것이 십 년 전이었다. 책 속의 주인공이 자신의 나이를 헤아리길래 나도 내 나이를 소리 내어 말해보았는데 서른일곱, 하니 스물일곱이 생각났다. 그게 벌써 십 년이나 된 일인가?


스물일곱의 겨울은 내일로 여행으로 유난스럽게 시작했다. 라섹수술을 받은 지 이제 막 한 달쯤 되었고, 다가오는 시내버스의 번호가 흐릿할 때였다. 그때 내가 무슨 용기로 내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때 난 이미 마음을 결정한 상태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사람이 되기로. 라섹수술을 하고 앞을 거의 보지 못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그런 결심을 했고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즈음 미리 예약해 둔 내일로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수, 부산, 안동, 경주, 영주에 갔다. 가보지 않은 곳에 가보고 싶었다.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것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과 같아 보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2월 개학을 맞아 나는 고향에서 천안으로 올라왔고, 집으로 14장이나 되는 편지를 부쳤다. 교장실에는 사직서를 들고 갔다.


임쌤, 이게 무슨 일이에요.

부모님은 아세요?


아마 오늘 알게 되실 것 같아요.


천안에 올라오고 난 후 편지를 보낸 이유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싫었고 이젠 아무 대책도 없는 음악을 하려고 해.’라고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집안이 뒤집어질 것이 뻔해서 나의 안전을 위해 비대면 방식을 택했다.


나는 미련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나의 인생에 걱정과 미련이 있는 어른들이 많았다. 내가 학생일 때도 부모님 두 분이 학교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는데, 편지가 도착한 다음날 바로 학교로 찾아오셨다. 사직서는 없던 일이 되고 나는 휴직을 하기로 했다.


일 년을 받았다.

홍대 앞에 가 집을 구하고 날마다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었다. 사람들 앞에서 처음 노래를 부른 건 그해 여름이었다. 첫 오픈 마이크에서 모든 관중이 알아챌 만큼 떨었다. 여름을 지나며 남들에게 불러줄 만한 노래도 조금씩 쌓여갔다.


클럽 빵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한 건 9월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신청을 하는 방식이 아닌 섭외를 받아서 하는 공연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매 달 사장님의 문자를 기다렸고 한 달에 한 번 빵에 가 노래하는 일이 가장 행복했다. 관객은 주로 적었지만 공연을 마치고 집에 걸어가는 길은 마음이 콩닥거렸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기타가 무거워 날아가지는 않았다.


1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뮤지션으로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는 것과 겨울이 지나면 복직을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항상 편치 않았다.


나의 스물일곱을 떠올리면 방에 앉아 노래를 쓰거나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 한 구석에 무거움이 있었지만, 그 생활은 내가 꿈꾸던 삶이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해낸 게 없었지만 그 과정에 있다는 것, 음악을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게 중요했다. 나는 그 과정에 있고 싶었다.


그때 했던 수많은 걱정들이 이젠 먼지처럼 느껴진다. 걱정은 사라지고 좋았던 순간만 남았다. 예를 들어, 씨클라우드에서 노래하고 합정과 홍대 앞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던 밤의 바람, 찰랑이던 치맛자락, 이런 모습은 아직도 스틸 사진처럼 또렷하게 남아 있다.


스물여덟이 되어 나의 홍대 생활은 끝이 났다. 천안에 내려와 집을 구했다. 나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주말 공연을 하러 빵에 갔고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좋은 취미가 있다고 말하는 동료(학교)에겐 ‘전 이거 취미 아니고 직업으로 할 건데요’라고 과한 단호함을 내비쳤다. 결국 음악이 직업이 되지 못한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땐 그만큼 진심이었다.


무언가에 꽤 오래 진심이었다. 진심을 담고 전달하는 일은 나의 영혼을 윤택하게 하는 일이었다. 나는 음악을 하는 내가 다른 직업을 해내야만 하는 나를 지탱하고 살렸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음원을 발표하지 못해 나의 노래는 나만 몰래 듣는다. 나만 아는 유튜브 재생목록이 있다. 내 노래를 들으면 영혼이 따스해지는 기분이다. 영혼을 잃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다. 노래와 기억이 남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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