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P] 프레젠테이션,
변화와 예술이 필요해 - 1

데몰리션 맨

by 자표심

-신입사원 교육.


"OHP 장표가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차피 제가 발표할 거니까요"


팀원들은 내가 작성 중인 OHP 필름이 너무 많다며 나를 걱정했다.


LG인화원 신입사원 교육 마지막 전날 팀별 발료 준비를 해야 했다. OHP 자료는 팀 모임을 하면서, 의견을 취합해 발표자인 내가 네임펜으로 작성했다. 네임펜은 검은색을 주로 썼지만, 강조할 부분에는 빨강 파랑을 썼고, 녹색 노랑 고동색 등으로 적당히 치장을 했다. 총 15장을 만들자 팀원들은 많은 분량에 놀라는 기색이었다.


인화원 붉은 벽돌 외관의 숙소에서 교육장으로 가다 보면, 커다란 통유리문이 나왔다. 유리 위쪽엔 새가 부딪히지 않게, 날개를 펼친 검은 새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타인이 두렵다


인화원 복도에는 옛 금성사와 락희(樂喜)화학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철제 날개로 훨씬 시원할 듯한 선풍기, 화장품 동동구리무, 럭키치약 등.


교육 프로그램 중 프레젠테이션 스킬업 과정은, PT 분야 최고봉 여자 과장이 진행했다. 이 과목은 발표 장면을 캠코더로 찍어, 자세와 말투 등을 교정하는 시간이 중심이었다. 강사는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절호의 기회라고 유혹했다. 나도 해볼까 손을 올렸다 내렸다 했지만, 손목은 테이블 아래에서만 까딱였다.


무대공포증은 포클레인 팔 끝 버킷으로 나를 내리눌렀다. 자리에서 일어서 보려는 나를 자꾸 앉혔다. 싸우는 사이, 시간은 지났고 다른 사람들이 나서는 바람에 기회는 사라졌다.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부들부들 떨리는 데, 내 얼굴과 제스처, 말투, 낯선 자신의 목소리 등이 비디오로 낱낱이 까발려 지기까지 하다니, 그 건 내복 차림으로 만인 앞에 서는 것 같았다. 마음은 원했지만, 몸은 두려움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데몰리션 맨


홀 강의는 실습과제가 절반이었다. 팀별 과제는 끔찍했다. 나를 포함해 아이디어가 쥐뿔도 없는 신입 팀원들끼리 멍한 머리를 맞대고, 얼굴 보며 한숨 쉬는 장면만 떠올랐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소서~


한 팀은 여섯일곱 명으로 구성됐고, 남녀가 섞여 있었다. 우리 팀 팀명은, 내 제안이 채택돼, 실베스터 스탤론이 출연한 액션 SF 영화인 데몰리션 맨(Demolition Man)으로 정해졌다. 내가 본 몇 개 비디오 중 당시 제일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내가 팀 이름을 지었다고, 다들 나를 팀장 자리 절벽으로 떠밀었다.


마지막 이틀간은 경영혁신을 주제로 한 팀별 최종 발표가 예정돼 있었다. 팀에 OHP 필름과 색깔 네임펜이 배포됐고, 저녁부터는 10분 발표가 시작됐다.

'나가리팀'부터 발표가 시작됐다.



-숨죽이면, 숨 막힌다


"아자. 아자. 나가리~"


각 팀은 팀 구호를 간단히 하고 발표를 차례대로 했다. 대부분, 도표와 작은 글씨로 채워진 OHP 필름 3~4장 정도를 차례로 올리면서 발표를 했고, 끝마치면 15분이 넘었다.


17팀이라 밤 10시까지 해도, 몇 팀이 더 남았다. 밤 9시가 넘어가자, 고개가 순간적으로 뒤로 앞으로 까딱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가 천장을 봤다가 좌우 45도로 힘주어 돌려 스트레칭을 했다. 두 팔 팔짱을 꼈다가, 왼다리 발목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렸다가 반대로 하기를 몇 번을 했다. 몸을 앞뒤로 좌우로 움직였다가, 눈도 끔뻑 껌뻑했다.


무심히 앉아 연속으로, 숨죽이고 남 얘기만 듣는 것은, 수건을 몇 번이고 접어서 입 코를 막고 숨 쉬는 것 비슷했다.



-걱정만 쌓여 가고


OHP 한 장 당 5분씩 설명을 듣고 있자니 가슴에서는 불덩이가 올라와 코로 쭉쭉 빠져나왔다. 다들 그랬으니, 모인 곳은 답답함과 원망, 한숨 등의 총합체가 되었다. 우리 팀 발표는 16번째라 다행히 다음날로 넘어갔다.


"OHP가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안 그래요?" 저렇게 3장만 가지고도 사람들이 지루해하는데 하며, 팀원들의 걱정은 깊어졌다.

"그래요? 시간 내에 잘 끝낼 거니까, 믿어보세요" 대답은 건성으로 짧게 했다.


다른 팀이 발표했던 OHP 장표들은, 예를 들어, 사람 모양의 도표를 넣는다면, 양팔 양다리 모두 벌린 인체 도표를 OHP 필름 한 장에 그려 넣는 식이었다. 반면, 나는 왼팔, 오른팔, 머리, 왼다리, 오른 다리 5장으로 나눠 그리고, 전체 그림을 마지막에 1장으로 간단히 요약하는 식으로 했으니, 내 분량은 6배로 늘어나게 된다.


이래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