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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Oct 18. 2022

기도문, 말에도 위아래가 있다

상위 개념어와 하위 구체어

-기도문 쓰기.


  "기도문을 좀 써 주지?"

  "네? 주일 대표 기도문이요?"


  6년 전쯤, 장인어른의 부탁을 받고, 출석하시는 교회 최근 주보를 집어 들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검토하고, 교회 행사 안내 광고를 살폈다. 현안을 알아야 기도가 헛스윙(swing and miss)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도문엔 몇 마디 후 자주 쉼표를 찍었다. 실제 숨을 쉬어가며, 멈춰가며 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예배시간 내내 찬송을 제외하고, 회중들은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회중들의 마음에 답답한 응어리가 앉지 않도록, 2분 이내로 분량을 맞췄다.


  대표기도가  끝나고 나면, 회중들은 또 잠자코 설교를 들을 것이다.



-대표기도가 짧아야 하는 이유


  교훈을 강제로 주입하려는 설교. 회중을 어린아이처럼 마음대로 다루려는 설교. 생각의 끝까지 가보지 않고 세 가지 목차만 소개하는 깊이 없는 설교. 회중들이 이런 설교들을 만나면 얼마나 힘들까.


  나는 설교 전 대표기도 시간엔 답답해 가슴을 치곤 했다. 오히려 신과 소통할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생각에 (恨) 품은 적도 많았다.


  교회 예배라는 것이 그냥 눈으로 구경하고, 남의 소리만 듣다가, 매달린 응어리를 고스란히 싸들고 돌아오게 해서야. 예배에 참석해서 '예배 보고 온' 영혼이 오히려 파리해 갈 수도 있다.


  그러니 회중의 기도시간을 빼앗는 대표기도는 짧을수록 좋지 않을까. 내가 쓴 기도문을 천천히 숨을 쉬며 읽으면서  타이머를 쟀다. 1분 40초쯤 걸렸다.


-깊은 말 


  그다음 주, 장인 장모님은 대표기도를 잘하셨다고 고맙다고 했다. '기도가 깊다'는 말을 들었다고 좋아하셨다.


  왜, 기도가 깊다는 얘기를 들은 것일지. 교회의 구체적인 행사와 교회의 현실적인 튼튼한 재정 등에 신의 관심을 보여달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이 것 때문은 아니었다.


  뭔가 잘 모르지만 깊이 있게 느껴지는 것은, 기도문 여기저기에서 추상적인 개념어를 사용했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쓴 기도문 속엔 모호한 추상적 개념어들이 포함돼 있었다. 예수님이 피 흘려 죽었다는 십자가 사건 등 누구나 말하는 신앙고백 같은 것들은 없었다. 대신 하나님의 '영원성' 인간의 '유한성' '나약한 존재인 인간' 등 추상적인 단어들이 이곳저곳에 박혀 있었다.


  '거룩하시고,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같은 상투적인 언어 나열은 피했다. 신을 찬양 칭찬하는 말들을 쏟아낸다고 신이 거들떠나 볼까? 이런 건 어려서부터 듣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살핀 후 그것을 상위 개념어를 사용해 기도문을 작성했다. 


-종교 언어 vs. 실생활 언어


  안개에 싸여있고, 베일에 가려져 있고, 숨겨 있으면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것들은 신비함과 묘한 깊이를 느끼게 한다.


  알려진 실체인 나, 알 수 없는 존재인 신은 서로 대비된다. 인간은 알 수 없는 다른 차원을 상상하고 신비함을 느낀다.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어 한다.


  알 수 없어서 가까이하려 한다. 가려있고 알 수 없어서 신이다.


  그런데 신을 다 알고 있는 듯, 신을 정복한 듯 말한다. 그럼 신비한 신은 그 언어의 자리 어디에 있을 수 있나?


  신(神)이 중심인 종교행위에서는 상위 개념어를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잘 모르는 세계를 내용에 담는 종교일수록 그럴 수밖에 없다.


  반면, 실생활에선 상위 개념어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상위 개념어로 올라갈수록, 구체성이 떨어지고 희미해진다. 점차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진다.


-질서 있게?


  “지금 마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질서 있게 승차해 주십시오.”


  전철을 이용할 때면, '질서 있게'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편하게 들으면, 차례차례 잘 타라는 말이니 그냥 흘릴 수 있다. 그런데 '질서 있게'란  문구는 무엇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말일까?


  '질서 있게'라는 말은 '차례로' '순서대로'와 유사한 말이다. '차례로'가 '질서 있게'보다는 좀 더 눈에 보이고, '순서대로'가 '차례로'보다는 더 구체적이다.


 '순서대로'라는 말에 '줄'이라는 눈에 보이는 형상을 첨가하면 어떻게 될까? '줄을 서, 순서대로'가 된다. 좀 더 그림으로 그려진다.


-그림을 그려 줄려면 구체어로


  '승객 여러분께서는 줄을 서, 순서대로 승차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질서 있게 승차하기'가 머릿속에 구체화된다.


  '질서(秩序)'는 '줄 서기'보다 상위 개념어이다. 상위 개념은 주로 뜻글자인 한자어에 많다. 많은 뜻을 함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뜻을 압축하여 꾸러미를 만들면, 일반화할 수 있어 상위 개념으로 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상위로 올라갈수록 구체성이 떨어진다. 쉽게 그림이 안 나온다. 특히 철학 분야가 그렇다.


  절대적인 상위 개념어, 하위 개념어를 찾기는 어렵고, 말들끼리 키를 재어 비교해 봐야 상대적 상하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비함을 노래하려면 상위 개념어로 하늘을 봐야 하지만, 보이는 형형색색 그림을 그려 줄려면 하위 구체어로 땅을 살피며 말하는 것이 좋다.


  내가 쓴 기도문에는 상위 개념과 구체어들이 어떤 비율로 섞여 있었던 것 같다.


<  Helene Fischer with Andrea Bocelli -The Prayer >

https://youtu.be/mI0x97D8N8g

 Helene Fischer with Andrea Bocelli -The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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