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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Mar 02. 2023

고2 [밴드부] 수자폰, 베이스 찾아 삼만리

mbc 권투중계 행진곡

1. 수자폰은 달팽이

 

  수자폰(sousaphone)은 행진곡의 제왕  존 필립 수자(J.P.Sousa)가 개발한 튜바계열 금관악기다.


  커다란 집을 짊어진 달팽이를 연상케 하고, 행진 시 편리하게 왼쪽 어깨에 걸칠 수 있다. 황금빛 금속관은 연주자 몸을 뱀처럼 둘둘 감고 머리 위로 올라가 나팔꽃처럼 피어 있다.  


  우신고등학교 밴드부 수자폰은 밴드부 악기 선반에 누워있었다.


  수자폰은 저음을 붕붕 뿜어내릴 준비를 마쳤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커다란 마우스 피스엔 누구도 입 맞추지 않았다. 망치로 사용한 자국만 움푹 움푹했다.


  "이 건 누가 불어요?" 궁금한 나는 3학년 그 녀석 옆에 있는 2학년 선배에게 물었다.

  "수자폰이야. 한 번씩 붐붐하는 거였어"  

  "이 커다란 마우스피스로 뭐하는지 알아? 자위행위야" 

  3학년 이 저질. 미친놈. 이 차디차고 딱딱한 금속에 자위행위를 한다고? 에라 이 썩을 놈아.




2. 또 하나의 경례곡이 있다니  


  나도 수자폰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충격받은 그날까지는.


  초등학교 중학교 3 총사 철우는 성보고등학교 관악부였다. 나도 성보고등학교 1회 졸업생이 될 뻔했다. 철우집까지는 걸어서 1분도 안 됐으니까. 인천으로 이사만 가지 않았어도.


  철우는 음대에 입학키 위해 트럼펫 레슨을 받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트럼펫 바하는 200만 원이었다. 내가 불었던 트럼펫은 15만 원도 안되고, 오래돼 소리도 잘 나지 않는 고물이었다.


  1학년 겨울방학. 성보고등학교 관악반 연습을 보러 갔다. 상관에 대한 경례곡이 달랐다.


  우리는 장군급에 대한 경례였지만, 성보고등학교는 무궁화 영관급에 대한 경례곡이었다. 빠라바라밤~빠라바라밤~ 두 번 연속 하늘 날아오르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와~ 입을 벌리고 있었다.


< 영관급에 대한 경례>  연주시간 : 17초


  그 학교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성보고등학교 관악부는 음악선생님이 직접 지휘를 했다. 반면, 우신고등학교는 우리끼리 연습하고, 우리끼리 두들겨 맞고 안티푸라민 바르고, 우리끼리 진로소주에 짜장면을 먹었다. 우리끼리 젓가락 장단에 회식하고, 영자야 내 동생아~ 나사깍는 공돌이란다 노래하고, 우리끼리 막걸리 사 오고, 뭐든 우리끼리. 끼리끼리.

  


3. mbc 권투 음악이 나오다니  


  행진곡 연습이 시작됐다. 무슨 곡이 연주될까.


  밤~빠라 밤빠라 밤빠라

  밤빠라 밤빰 빰~ 빰~


  뭐야 이건. mbc 권투잖아. tv에서나 듣던 음악이 여기서 자행되다니.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던 mbc 홍수환 권투가 머릿속에서 돌아갔다.


  따라라~ 붐 붐 붐 붐


  배와 가슴이 쿵쿵 쿵쿵 울렸다. 바리톤뿐만 아니라 수자폰 2대가 베이스를 계속 찍어댄다. '붐-붐-붐-붐' 저음을 받친다. 트럼펫이 치고 나가고. 그 위에 클라리넷 플릇 등은 새처럼 지저귄다. 멜로디 날개를 펼친다. 트럼펫은 행진곡 풍 스타카토 텅잉으로 딱딱 끊어내고.


  그에 비해 우리 밴드부는 멜로디언 합주단 같았다. 한쪽에 찌그러져 눈치만 보고 있던 나. 눈물이 나왔다. 온 공간에 가득 찬 음악 같은 음악. 그 속에 내가 들어있다니. 이런 환상이 우주 속에 있다니. 웅장한 저음이 배합된 음악이 중력을 뚫고 날아다니다니.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그 시그널 음악이 상브르와 뫼즈 연대 행진곡(Le Regiment De Sambre Et Meuse)이었다는 사실은 40여 년이 흐른 뒤에나 알게 되었다.




< 상브르와 뫼즈 연대 행진곡(Le Regiment De Sambre Et Meuse) >


Le regiment de Sambre-et-Meuse · Royal Swedish Airforce Band


4. 그대를 기다린다 베이스여  


  그때 확실히 보았다. 우리 밴드부는 헐벗었다는 것을. 바지를 입지 않았다는 것을. 저음부가 실종됐다는 사실을. 발만 동동 구를 뿐.


  위아래 갖춰진 음악을 찾았지만, 내 귀에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병실에 누워있는 수자폰. 작은 바리톤 하나만이 저음을 낑낑 밀어 올리고 있는 처지. 그때부터 나는 병에 걸렸다. 저음 결핍병에 시달렸다. 태어나 한 번도 젖을 빨지 못한 아이처럼. 엄마 유방에 한 번도 얼굴을 파묻어 보지 못한 아이처럼.


  나는 지금도 베이스를 찾아 헤맨다.

  평생 엄마 젖가슴을 그리워하듯이.



ps 1. 철우는 경희음대에 합격해 음악의 길을 가고 있다

     2. 아래는 행진곡 가사. 그리고

         위엄 웅장함을 느낄 수 있게 천천히 연주하는 멕시코 군악대 버전.


< 상브르와 뫼즈 연대 행진곡 >

Le Regiment De Sambre Et Meuse


이 모든 골의 아이들

휴전도 휴식도 없이 전진한다

소총을 어깨에 메고

용기를 가슴과 배낭에 품고

영광이 그들의 식량이었다

그들은 빵이 없고 신발이 없었다

밤이면 그들은 한뎃잠을 잤다

가방을 베개로 삼아서


후렴:

상브르-뫼즈 연대 ( Le régiment de Sambre et Meuse)

자유의 외침을 따라서 간다

그들을 불멸로 인도할

영광의 길을 찾아서


< 멕시코 군악대 연주 버전 >


Sambre et Meuse - Musique des Forces armées du Mexique

< 참고자료 >

존 수자 - 나무위키

행진곡 - 나무위키

상브르와 뫼즈 연대가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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