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표심 Nov 01. 2022

고1, [밴드부 회식] 우신고교 명가수

밴드부 회식

-밴드부 회식


  "우~신고교 명~가수,

   우종오를 소개합니다.

   노오래는 못하지만, 애교로 봐~ 주세요 ♪"


   "안 나오면, 쳐, 들어간다. 쿵짜작 쿵작♫"

  

  고3 악장 형을 무대로 불렀다. 다들 손뼉 치며 노래했다. 노래는 쉬워 쉽게 따라 불렀다.


  "야~ 이거 왜 이래?" 악장 형은 뒤로 뺐다.


  "안 나오면, 쳐, 들어간다. 쿵짜작 쿵작♫" 노래는 계속 반복됐다.


  우신고 밴드부는 오류동(梧柳洞) 짜장면집에서 한 학기에  한두 번씩 돈을 모아 회식을 했다. 짜장면은 흰색 점박이 찍힌 초록 기운의 옥색 멜라민 그룻에 담겨 나왔다. 캐러멜 색소(Caramel color)를 넣은 짜장면 소스는 끈적끈적 윤이 났다. 초록색 완두콩이 박힌 짜장면 소스에선 달콤 고소한 고유의 짜장면 냄새가 났다. [1]


  나는 노란 단무지에는 손을 안 댔다. 빙초산 같은 식초를 부은 하얀 양파를, 검고 짠 춘장에 찍어 두어 접시 먹었다. 휘발성 양파 기체가 코를 뚫고 뇌로 직진했다.



-명가수는 노래했다


  짜장면을 먹고 난 후, 2부 여흥 시간이 시작됐다.


  2학년 형은 선창 하며, 3학년 악장 종오 형을 불러 세웠다. 검은색 교복. 목 호크와 두 번째 단추까지 푼 악장 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엔 붉은기가 돌았고, 왼 손엔 스테인리스 숟가락이 꽂힌 진로 소주병을 들었다.  


  "영~자야, 내 동생~아,

  몸, 성히, 성히, 성히, 잘 있느냐.

  여기에 있~는 이 오빠~하 아하~는♫,

  나사 깎는, 공돌이란다♪"


  우리는 쇠젓가락, 쇠숟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쿵짜작 쿵작~ 뽕짝 박자를 맞추었다. [2] 방 두 개를 튼 공간에 긴 밥상이 몇 개 붙어 있었고, 흰색 전지로 덮힌 상위엔 비닐이 맨 위에 깔려있었다.


  술은 진로소주를 사용했다. 우리 학교는 진로그룹 창업주가 설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는 이 오빠는

   사장이, 아니 아니야~

   영-등포하~고도 문래동~에~서.

   나사 깎는, 공돌이란다♪"


  이런 저질 노래를 부르다니.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거야? 방바닥에 앉아 있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낯설었다. 음식점 주인은 몇 번씩 왔다 갔다 했다.



-원샷


  선배가 진로소주를 내 작은 소주잔에 따라주면, 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작업을 했다.


  선배들이 노는데 정신이 팔린 사이에 순간을 노렸다. 소주잔의 술을 숨겨 놓은 사이다 글라스에 부었다. 빈 소주잔에는 다른 글라스 맹물을 채워 상 위에 올려놓았다.

  

  "원샷~" 한 명씩 돌아가며 입 속에 털어 넣었다.

  "캬악~~" 나는 새우눈에 끓는 소리를 냈다. 잔을 비운 후 머리 꼭대기에서 툭툭 흔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나는 특활 일본어반을 지원했다가 가위바위보에서 떨어졌다. 하는 수없이 합창반에 들어갔고, 여기서 이용진 음악 선생님의 밴드부 소개를 들은 게 화근이었다.


  나와 유건호는 장학금도 받을 수 있고, 악기도 할 수 있으니 밴드부에 들기로 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줄 알고 있었는데, 육성회비 6천 원 면제가 전부였다. 사기였다.


  첫날 과학관 4층 딴따라 밴드부실을 찾았다. 밴드부실 앞에는 칠쟁이라 불리던 미술부가 있었다. 미술부 학생들은 문을 열어 놓고 그림을 그렸고, 거기선 진득진득한 물감 냄새 가 났다.



-인생을 얼떨결에


  밴드부에서는 각종 악기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었고, 그 문을 떨리는 손으로 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잘 못된 선택임을 알았다. 담배냄새가 훅~. 선배들의 옷차림이 달랐다.


  단추 2-3개를 풀어헤치고, 한쪽 다리는 의자에 올려놓고 쳐다보는 눈매가 보였다. 생김새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유건호와 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발은 그 자리에 있었다. 사자 앞에 얼어버린 토끼 같았다.


  "야~ 어딜. 여기서 나가려면 100대 맞고 나가" 사자는 가볍게 말했지만, 듣는 토끼에겐 죽음의 소리였다. 땅에 딱 달라붙은 그 발 때문에 비극은 시작됐다. 이 시간 이후 괴한이 몽둥이를 들고 따라오는 꿈이 나를 괴롭혔다.


  유건호와 나는 인천 연안부두 라이프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고, 유건호는 클라리넷, 나는 테너 색소폰(saxophone)이 주 종목이었다.


  가끔 1학년 다른 녀석이 말했다.

  "야, 니 악기, 쌕쓰폰 말이야"

  "뭐? 쎽쓰폰 아니거든, 색소폰~ 해봐 색소폰!" 나는 발음을 멋있게 잘하라고 했다.


  얼떨결에 시작된 밴드부 생활.

  이 때부터 대학교와 학과 결정 등 중요한 결정은 얼떨결에 하게 된 것 같다. 버릇인가? 얼떨결.


  과연 나는 버텨낼 수 있을까.



< 참고 자료 >

1. [앞만 보고 먹지 마세요] 맛있는 짜장면 색의 비밀 ‘캐러멜색소’ 먹어도 될까?, 컨슈머치, 2018.07.02

2. [시론] 트로트는 전통가요인가?, 열린순창, 2019.03.27


3. 색소폰 , 나무위키, 2022-10-30

매거진의 이전글 하나님, 최고의 스승을 보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