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으로 달린다. 신발바닥에선 운동장 굵은 모래가 스륵스륵 밀린다. 상체는 꼿꼿하고, 두 다리와 양팔은 교차한다. 발이 닿는 쿵쿵 충격이 온몸에 확확 퍼진다. 충격음 따라 얼굴근육이 출렁출렁한다. 바람은 얼굴을 때리며 돌진해 오고 눈물이 새어 나온다. 기역자로 접힌 팔을 좀 더 뒤로 확확 밀어 올린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 1등 해야 한다.
400미터 달리기 예선. 휘휘 갈기를 휘날리며 앞서 달려 나간다. 1등으로.
100미터를 전력질주하는 중. 이 속도로 300미터만 더 가면 된다. 그럼 최후 승자다.
갑자기 가슴이 조여 온다. 숨쉬기가 힘드네. 이제 앞선 애들이 4명이다. 맨 끝이라니. 꼴등은 해 본 적이 없는데. 다리를 사슴처럼 통통 튀어 달리는 1등이 저 멀리다.
2. 환청이 들린다
숨이 안 들어온다. 가슴을 부풀려야 하는데, 머리가 조여 온다.
150미터를 남겨 둔 것 같은데, 달리는 건지 빨리 걷는 건지. 다리가 질질 끌린다. 사물이 환상처럼 보인다. 스탠드에선 애들이 손을 들고 소리치지만, 슬로우 모션이다.
아직도 다리가 달리고 있다니. 내 다리 맞나. 귀에선 모든 소리가 웅웅 거린다. 소리가 뭉개졌다.
와-우 와아아아... 아아아...아---아
달리면서 생각하는 나를 본다. 나 지금 달리고 있는 거야? 이렇게 달리다 죽는 거야? 그만 달리고 싶어. 주저앉고 싶어. 자고 싶어. 여기서 멈추면 무슨 창피야. 반 대표로 괜히 자원해 가지고. 눈에 들어오는 색깔도 이상 야릇해지네.
속이 메스꺼워진다. 눈도 크게 뜰 수가 없다.
3. 죽어간다
결승선 20미터를 남기고, 앞선 녀석이 갑자기 고꾸라진다.
엎어지면서 배와 팔이 운동장 바닥을 긁는 소리를 낸다. 먼지가 훅 피어나고,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쭈욱 미끄러진다. 무슨 상황이야. 놀랄 새도 없다. 몸을 질질 끌면서 결승선으로 들어가니 4등.
기적이다. 꼴등이 아니라니. 이럴 수도 있어? 오래 살고 볼 일. 끝에서 두 번째. 예선 탈락이다.
우리 반 애들이 내게로 달려왔고, 나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하늘이 정말 누런 색으로 변했다. 하늘이 노랗다는 얘기는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그랬다. 아무 말 못하고 잔디밭에 그대로 쓰려졌다. 애들이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는데, 너무 귀찮다. 얼굴에 뭔가 닿는 느낌을 감지하는 게 힘들었다. 손사래를 쳤다.
누워있으면 아픈 폐와 메스꺼운 속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냥 똑같다. 불안하다. 왜 몸이 빨리 회복되지 않는 거야. 이러다 죽는 건가. 앰뷸런스를 불러달라고 해야 하나.
1시간 30분을 누워있었다. 점심도 거른 채.
4. 할 수 있다
"400미터 반 대표로 나갈 사람"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이 두 번을 물었지만 진공상태였다.
나는 국민학교 6학년 때 100미터를 14.6초로 뛰었지. 초시계와 기록지를 든 선생님. 이때 처음으로 긴장했다. 달리기에 자신 있었던 나는 조마조마함이란 없었는데. 그때는 달랐다. 이 것도 1등을 해야 하는데.
100미터 출발선에 섰다. 6학년 어린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흔들었다. 쿵쾅쿵쾅. 손에선 땀이 물처럼 흘렀다. 진동하는 심장에 온몸이 흔들렸다. 땅~ 화약 터지는 소리. 그냥 달려 나갔다. 잘 달렸지.
"400미터 제가 나갈게요"
내 손이 그냥 올라갔다. 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 달려 보는 거야. 까짓 거.
그래 대가리에 불 싸지르면 뭐든 할 수 있어. 아자. 긍정적으로 생각해. 인생은 긍정이야. 할 수 있다. 야~ 임마.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 했는데.
죽다 살았다.
그래도
달려라.
바람처럼.
ps 이런 증상은 뇌혈류 감소에 의한 운동성 실신의 전조증상이다.
※ 자표심이 부릅니다
< 달려라 하니 >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좋아 하늘땅만큼
엄마가 보고싶음 달릴꺼야
두 손 꼭쥐고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세상 끝까지달려라 하니
난 있잖아 슬픈 모습 보이는게
정말싫어 약해지니까
외로와 눈물나면 달릴꺼야
바람처럼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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