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냥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표심 Mar 05. 2023

흙 마당을 밟아 본다

모래가 도르르 굴러가는 곳

  내 속에는 마당이 있다.

  세 가지 마당.


  비 오는 날 들꽃뫼 '고모댁의 흙마당'이다.


  국민학교 방학. 둘째 고모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비가 온다. 마당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있다. 비가 그치길 기다려 할머니댁으로 돌아가려 옷을 입는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려는데 말소리가 들린다.


  "마당 가로 돌아가거라. 마당이 파이니까"

  "네~ 돌아 갈게요."


비 올 때 마당은

아껴야 하는 애인이다.

행여 다칠까 조심하게 된다.




  '이등병의 아침 마당'은 낯설음이다.


  자고 일어나 펼쳐진 허황된 공간을 믿을 수가 없다. 숨 막히는 곳. 온갖 초록색으로 버무린 곳. 웃는 립스틱 색깔이 없는 곳. 여기가 어딘가.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 내가 여기에 왜.


  싸리비로 마당을 쓴다. 입에선 김이 나온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병장이 다가와 노래를 하란다. 멈칫하는 내게 그냥 하란다. 여기서 노래를 부르면, 다른 선임병들에게 찍힐 수도 있는데. 동요밖에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하란다.


  보니엠의 'Rivers of Babylon'에서도 강제로 노래를 부르라 시켰지. 그래서 그들은 한탄했어.


Now how shall we sing  

the lord's song

in a strange land


  지금 어떻게 우리가 노래를 부를 수가 있지? 주님의 노래를. 이렇게 낯선 땅에서.


  그래 부르고 싶은 나만의 노래를 찾아보자. 못 이기는 척 노래를 불렀다.


가지에 내리는 가는 빗소리

가만히 기울이고 들어보세요.

너희들도 이 처럼 맘이 고와라.

너희들도 이 처럼 맘이 고와라.

  



  이제 밝은 날엔 '절 마당'을 밟고 싶다.


  해 뜰 무렵 절 마당은 무념무상 비질하는 동자승의 놀이터다. 땅을 밟으면 굵은 모래가 신발아래서 미끄러지고 꺼끌 거리며 제각각 구르겠지. 걸으면 고요함과 아무 일 없음이 따라올 거야.


  울퉁불퉁 화강석 계단에 올라 하늘을 보고 내려올래.


  모래 사이사이 작은 공간을 느껴보고 싶다. 숨 쉬는 흙 마당을 밟아보고 싶다. 천국 딱딱한 황금길이 아닌 숨통이 트이는 길을.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세상과 멀어질 것이니.


마당은 내 발이 반기는 길이요

나를 받아주는 진리

마음 홀로 거니는 생명이다.



< 꽃가지에 내리는 비 >


꽃가지에 내리는 / 노래 : 조은지 반주 : 조은희

< 꽃가지에 내리는 비 >

꽃가지에 내리는 가는 빗소리

가만히 기울이고 들어보세요.

너희들도 이 꽃처럼 맘이 고와라.

너희들도 이 꽃처럼 맘이 고와라.


냇가에서 종종종 우는 새소리

가만히 기울이고 들어보세요.

너희들도 이 물처럼 맘이 맑아라.

너희들도 이 물처럼 맘이 맑아라.

매거진의 이전글 [하나님] 이런 여자를 보내 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