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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Feb 19. 2023

[하나님] 이런 여자를 보내 주세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았다

"당신이 나를 가스라이팅했어요"

"내가 뭐, 피해 준 거 있어? 뭐가 가스라이팅인데."


  아내는 한 달에 몇 번씩 억울해한다. 내가 자신의 심리를 조작해 놓았다고.


  나는 잘 못한 게 없다. 하느님께 기도한 것 밖에는.



1. 이런 여자를 만들어 주세요


  대학 3학년. 성경 잠언을 펼쳐 여자가 언급된 부분을 찾았다. 그 걸 노트에 적었다. 만나야 할 여인과 피해야 할 여자 두 가지.


①. 만나야 할 여자 :  어진 '현숙()'이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 잠언 31:10 )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 잠언 31: 26 )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 잠언 31: 3 )


여~ 현숙이를 주시옵소서.

지혜롭고 친절하게 말하며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를 주시옵소서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지만. 헛된 인생에는 헛된 아름다움이 제격 아니옵니까. 통촉하야 주시옵소서. 주여~~.


  앗차라차. 구하지 못한 게 있었다. '귀여운 여인~' 이 걸 빼먹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②. 피해야 할 여자 : 성내는 '미숙(熟)'이 <--'美淑'이 아님.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 잠언 21:19 )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 잠언 25:24 )


  미숙(熟)이를 피하게 해 달라고는 따로 기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경에 없는 내 이상형을 더 적었다.

  

③. 내 이상형 : 예술적인, 참으로 예술적인 '예진'(藝)이


주여~ 예술적인 여자를 주시옵소서.

제 인생은 지루해 숨 막히옵니다.

죽을 때까지 보고 또 봐도 새로운 여자를 주시옵소서,

피아노 치는 여자를 마련해 주시옵소서.

아니면, 그녀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 주시옵소서.

그녀가 딴 맘먹지 않게, 저를 멋진 넘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2. 자표심에서 배운 여자


  그러다 그녀가 턱, 내 그물에 걸렸다. 현숙(淑)이와 예진(藝)이가 통섭(通涉)된 예현(賢)이 같았다. 100 프로 기도 응답이었다. 미대 서양화 전공에 피아노 체르니 30번까지 했다니까. 도망가기 전에 응답 감사의 기도를 드려 침을 발라 놨다.


  교회 예배가 끝나면 버스로 그녀 집까지 같이 갔다. 버스가 흔들리던 날. 넘어질까 봐 그녀의 윗 팔을 잡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 팔을 확 뺐다. 그녀의 팔은 내게 잡혔던 과거를 간직했으니, 나를 선택할 수밖에.


  내 이상형은 '여자'였다. 진짜 여자.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여자. 볼과 입술화장, 헤어스타일, 말과 옷.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자인 여자를 원했다. 학부 4학년 때, '자표심'(자기표현의 심리적 기초) 강의 시간에서도 여자 얘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했다. 수업시간 중 김인자 교수(2023년 현재 92세)'나-전달법( I-message )' '부모 역할훈련' '반영적 경청' 등을 강조했다. 교수님은 아내인 여자에 대해서도 말했다.


  "남자를 지배하려는 여자가 있어요. 남자를 휘어잡았다 쳐요. 그 여자는 행복할까요?"

  "자기 남편을 존경하는 여자와 무시하는 여자가 있어요. 누가 더 좋아 보여요?"


  자기를 낮추고, 남자를 잘 세워주는 여자. 여성성을 간직한 여자를 만나야겠구나. 남편을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여자가 행복하겠지. 아내가 행복하려면, 남편을 존경해야 하겠구나. 존칭과 존댓말을 쓰는 게 좋겠네.



3. 그녀의 청량함


  나는 3살 어린 그녀에게 주문했다. 내게 존댓말을 하라고. 그녀의 행복을 위해 말했다. 말 하나에서도 존경심이 나올 수 있으니까. 성내고 달려들면 안 되니까. 그녀는 내가 말하는 건 거의 수용했다.


  대학 4학년 연애초기. 우리는 기독교계열 이성교제 교재를 선택했다. 커피숍에서 『연인들을 위하여』( 생명의 말씀사. 로버트&앨리스 프라일링 공저 / 양은순 역 )를 가지고 얘기했다. 기분과 감정 / 약혼 기간 중의 육체적 관계 / 과거에 대한 후회 / 부부 생활 / 결혼 생활에서 용서 구하기 등이 주 내용이었다.


  빨리 그녀를 알아버리면 쉽게 식상해 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슬로우 슬로우. 워~워~. 본격적으로 그녀와 만난 이후 1년이 지났고 겨울이 왔다. 입에서 김이 나오던 그날, 그녀와 학교 서클룸에 마주 앉았다. 형광등은 미세하게 찌르르르 소리를 냈다. 전기난로는 귤보다 진한 색으로 내 다리를 따뜻하게 밀었다. 그녀는 검은 롱코트에 긴 머리를 하고, 조용히 나를 봤다. 쌀쌀한 밖에서 실내로 들어온 내 얼굴은 발그레했다.


  그녀의 어깨에 순간 손을 올렸다. 그녀의 입술은 차가웠다. 내 입술은 뜨거웠고. 그때의 그 온도. 아직도 그 청량함을 다시 찾지 못했다.


  그날 이후 확실히 이 여자를 내 여신으로 정했다. 바로 결혼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군대였다. 연애기간 1년도 안되는 데, 졸업하고 바로 군대 갈 수는 없었다. 군입대를 연기해야 했다. 남북통일만 바랄 수는 없었다.


  국제경영학을 공부한다는 핑계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1년 동안 그녀와 나는 오누이처럼 얼굴이 닮아갔다.


  나는 '의지적 사랑론' ( '젊은 오빠, 사랑에 대해 말했다' 참조)등의 개념을 만들어, 그녀와 열심히 나누었다. 흔들리지 않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돈과 정신을 쏟았다.



4. 작전명 '밝히리'


  군입대 연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대학원 1년을 더 남겨 두었지만, 그냥 군입대를 결정했다.


  어떻게 고무신을 꺽지 못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사랑의 변질을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녀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줄 수 있나.

 

  '작전명 밝히리'를 고심 끝에 만들었다. 두 가지로 계획했다.


첫째 : 다른 남자 접근금지  


  일 단계를 실행하며 나는 말했다.


  "남자와 단둘이 저녁식사는 하지 말아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커피숖 어스름한 조명. 분위기에 마음이 오락가락. 그럼 힘들 거예요."

  "알았어요."


둘째 : 마음 닻 고정하기

  

  Out of sight, out of mind. 안 보면 멀어진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철원 백골부대에서 나는 1주에 2통씩 편지를 썼고, 그녀도 그렇게 했다. 나는 때마다 물품을 보내달라고 편지했다. 그녀는 니베아 로션, 아트릭스 핸드크림, 초콜릿, 가죽장갑 등을 보내왔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 마 6:21 공동번역 )


  성경말씀을 기억했다. 재물(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편지지와 볼펜으로 닻을 만들게 했다. 그 닻을 내 마음에 꽂게 했다. 화장품과 간식거리를 사러,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했다. 포장하고 발송하러 걷는 자신의 걸음 속에서 사랑을 눈으로 확인토록 했다. 그 발자취에서 나를 보도록 했다. 그녀는 나를 숨 쉬고, 나를 바라보게 되리라.  


  '작전명 밝히리'는 성공했다.



Left : Image by Udo from Pixabay / Right :  Image by marian anbu juwan from Pixabay


5. 가스라이팅을 해 가지고


  그러나.


  오늘도 아내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Float like a butterfly, and sting like a bee.


  "다른 남자하고 저녁 먹지 말라고 해서, 기회를 잃었어요"

  "그래서 안전하게 나와 결혼했잖아"

  "철없이 뭣도 모르고, 가스라이팅에 당했어"

  "내가 뭐 피해 준 거 없잖아"


  이거 왜 이럴까. 내가 뭘 또. 어쨌다고. 소릴 확 질러 버려? 아내는 자기 말을 계속했다.


  "그 사람. 전시회 한다고 내 그림도 빌려갔었어"

  "응. 그 얘기 예전에 한 번 했잖아."

  "고맙다고, 저녁 같이 먹자는 거. 거절했어"

  "당연하지. 왜 단둘이 저녁을 먹어~"


  단둘이 저녁식사 말라고 한 것 잘한 일이네. 내가 보호해 준거 아니야?  


  "딴 남자와 저녁 먹지 말라고, 왜 그래가지고."

  "아니, 뭐가 잘 못된 거야? 그래서 나랑 살잖아."


  아니, 아내가 뭘 먹었길래. 거침없이 이어가네. 재작년까지는 이런 얘기 안 하다가. tv에서 누가 '가스라이팅' 얘기를 한 거야? 나만 가스불 지른 놈이 됐네. 여자는 계속 말했다.


  "선택의 자유를 다 박탈해 버리고. 가스라이팅을 해 가지고~"


  나. 또. 뭐. 잘 못.


※ 표지 사진 : 브런치 '은섬' 작가님의 선물- 잉게 작가 친필 서명 엽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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