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unt?
※ 오소 시리즈
2. [코타키나발루] 오소는 말했다. 여기가 천국이야.
"코타키나발루 올 때, 옥도정끼 빨간 약 좀 가져와라"
"뭐에 쓸려고?"
"엉덩이에 뭐가 났어. 잘 안 나아"
"알았어"
2016년 10월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오소와 카톡 통화를 종료하고, 다음날 우리 동네 약국에서 과산화수소수와 포비돈을 샀다.
며칠 후. 오소는 코타키나발루 공항에서 은회색 승용 렌터카를 가지고 기다렸다. 1달간 직접 차를 끌고 다녀보니, 신세계가 열렸다고 했다.
공항은 남쪽에 있었고 원 보르네오(1 Borneo) 타워는 시내 중심부를 지나, 북쪽 말레이시아 사바 대학 (University Malaysia Sabah) 근처에 있었다. 공항에서 원 보르네오까지는 18km로 37분 거리였다.
다음날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차는 한국과 달리 좌측통행이었고, 운전석은 오른쪽에 있었다. 좌측 차선을 따라 직진하다가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했다. 한국처럼 스티어링 휠을 조금만 돌려, 넓게 돌아 좌측 중앙선과 우측 보도 사이로 차가 돌진했다.
"야~야, 뭐 해?" 오소가 비명을 질렀다. 아차. 정면 충돌할 뻔했다. 깜짝 놀라 운전대를 왼쪽으로 확~ 틀었다. 차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며, 다시 좌측 차선 안으로 들어갔다. 휴.
심장은 벌컥벌컥, 얼굴은 화끈화끈, 등에선 기름땀이 삐질삐질, 손바닥은 질척 질척했다.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주도로, 보르네오 최대 도시이다. 필리핀 태풍궤도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바람 아래의 땅’이라 불리며, 자연재해가 거의 없다. [1]
코타(Kota)는 '도시' '요새'를 의미하고 키나발루(Kinabalu)는 말레이시아 최고봉 키나발루 산을 의미한다. 한라산은 1,947m 백두산은 2,744m 키나발루산은 4,095m에 이른다. [2]
키나발루란 이름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첫째, 바위가 된 보르네오 공주 이야기에 얽힌 키나( Cina : 차이나 중국 ) + 발루( balu : 원주민어로 미망인)라는 설명. 12세기 보르네오섬에 좌초되었다가 구조된 중국왕자와 결혼한 보르네오 공주. 중국에 돌아간 남편을 기다리던 공주가 병들어 죽자, 산신령이 홍콩 쪽 중국을 바라보도록 그녀의 모습을 바위에 새겼다니.
그러면, 900년이 넘도록 오지 않는 남편을 영원히 기다기기만 하라고?
둘째, 말레이시아 소수민족 두순족의 말, 아키(Aki : 조상) + 나발루(Nabalu : 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3] 조상들의 산으로 '죽은 자들을 위한 곳', 혹은 '영혼의 안식처'를 뜻한다고 이해한다.
오소는 One Borneo Tower에 넓은 거실과 방 4개, 화장실 2개가 딸린 집을 월세로 얻어 놓았다. Mall에 붙어 있었다.
오소는 나 때문에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삶은 계란과 홍옥처럼 번질거리는 껍질의 붉은 사과를 먹었다. 사과는 어린애 주먹만 하고 약간 길죽했다. 점심엔 나가서 버거를 사 먹었다. 쇼핑몰 퓨전음식점 Upperstar에서 피시 버거, 치킨 버거 등을 주문했다. 하나에 11링깃 약 3,200원 정도 했다.
Upperstar 맞은편 작은 편의점 Pasar Mini Convenience Store 에는 오소를 기다리는 여자 알바가 있었다. 그녀는 오소가 나타나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오소의 표정연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선 팻트병 생수를 샀다.
"Terima kasih (뜨리마까시)"
"Sama sama (사마사마)"
내가 '뜨리마까시' (감사합니다) 하고 편의점 점원에게 말하면, 그녀는 항상 '사마사마' (천만에요)라고 했다.
생수를 몇 개만 샀던 날. 거실 천장 선풍기를 돌리고 소파에 앉았다. 베란다 쪽으론 키나발루 산이 보였다. 산자락까지는 50km 정도였고 공기는 쾌적했다.
"야~ 여기가 천국이야" 오소가 말했다.
"뭔 소리?"
"난 혼자 사는 데, 이게 50평이 넘어. 서울에서 이런 집에 살기 쉽냐?"
"삭막해"
오소는 포비돈을 엉덩이에 발랐지만, 낫질 않았다.
병원을 찾아야 했다. 10월의 마지막날 오소가 드럼을 배우는 킹피셔 플라자로 향했다. 편도 2차선에 좌우로는 흙바닥과 풀들, 정리 안된 나무들, 듬성듬성 있는 낮은 건물들. 볼거리 없는 풍경 때문에 마음이 밝지 않았다.
Polyclinic Kingfisher (진료소) 간판이 있는 곳 1층에 들어갔다.
오소는 젊은 여의사 '레이철 마주봐' ( Dr. Rachel Majuvah )에게 엉덩이를 보여주었다. 마주봐는 현지어로 뭐라 말하다가, 자기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폰에는 '종기'라고 쓰여 있었다.
진한 분홍색 히잡으로 머리와 가슴을 가린 간호사가, Pharmacy라 쓰인 공간에서 약을 꺼내 조합해 주었다. 투약 설명도 해 주었다. 아침 오후 저녁 밤 4회 먹는 약, 5일 분에 대한 설명이었다.
"4 times after food. For mornig, for afternoon. For evening, for night. You have to finish it just 5 days."
카운터에는 간호사 하나가 더 있었다. 히잡을 쓴 간호사 둘은 키가 작았다. 모두 국민학교 4학년 키 같았다.
"How much?" 오소가 말했다.
"180 Ringgit."
180링깃이면 52,000원 정도 된다. 5만 원이 넘는다고? 오소가 갑자기 놀랍다는 표정을 했다. 어깨를 위로 불쑥 올리고, 두 손을 어깨 높이까지 끌어올렸다. 입은 크게 벌리고, 눈은 할 수 있는 한 동그랗게 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억양으로 말했다.
"What? It's amazing!!!"
오소의 과장된 제스처에, 간호사들은 삐질삐질하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오소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윗눈썹을 순식간에 위로 까딱하고, 다시 경쾌하게 애교를 섞어 말했다.
"Discount?"
Pu ha ha ha ha
깎아 줄 수 있냐고. 병원 진료비를 깎아달라고? 간호사들은 폭발하듯 웃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입을 가리기도 했지만, 결국 잇몸이 다 보이게 웃었다. 어이가 없다며 웃었다.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이런 사람은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다. 어쩔 줄 몰라하며 웃었다.
현금을 주자, 진분홍 히잡의 간호사는 비로소 웃음을 멈췄다.
여행은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아무리 멋진 풍경을 보았어도, 재미가 없으면 뭔가 빠진 거지. 시골길에 지루했어도, 오소와 다니니 재미가 있었다.
다음날은 키울루강 래프팅.
유속이 느려지자, 다른 고무보트 팀들과 패들(노)로 서로에게 물을 튀기며 물싸움을 했다. 현지인 여자 직장인들이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From Korea" 오소가 대답했다.
그녀들은 갑자기 원더걸스의 Nobody 노래를 했다.
"I want nobody nobody but you ♬"
나도 노래를 함께 불렀다. 어깨를 들썩이며.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쳐다보며.
"아이원, 노가~리 노가~리 벗츄
아이원, 노가~리 노가~리 벗츄
노가리 노가래~
노가리 노가래~~"
그녀들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오소가 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야~ 여기 천국이지 않냐?"
"뭐가?"
"한국에서 와이프. 이렇게 웃는 거 봤써어?"
"아니"
"여긴. 다 이래"
오소는 웃긴다.
사람들을 웃긴다.
말의 억양과 표정, 제스처로 웃긴다.
와이프는 못 웃긴다.
<참고자료>
[1] 자연의 신비 가득한 바람 아래의 땅 '코타 키나발루', Tour Korea, 2012.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