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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Dec 07. 2022

간증 좀 듣고 깨달아라, 개새들아

나는 살고 싶어요

※ 오소 시리즈

( 오소의 뜻 :  '오~ 소귀에 경을 읽지') 

1. 간증 좀 듣고 깨달아라, 개새들아

2. [코타키나발루] 오소는 말했다. 여기가 천국이야.



1.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니


  내가 좋아하는 신학자 '바트 어만'의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을 마저 읽으려고 책상에 앉았다.

  아침 6시 39분이었다.


  근본주의 기독교 신앙에 뜨거운 고교 동창 오소에게서 단체톡이 왔다. ( 오소의 뜻 :  '오~ 소귀에 경을 읽지') 오소는 탤런트 최강희 씨의 간증 유튜브 동영상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왔다.


  "좀 듣고 깨달아라 개새들아"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간증을 듣고 사람 좀 되라는 의미이겠다.  누가 동영상을 보내면, 나는 시간을 내서 듬성듬성이라도 한 번 들어는 본다. 보낸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오소는 젊어서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두 번 들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자신을 사랑하다는 신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고 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자신의 경험이니.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확인은 해 봐야지.


  "그 목소리 남자 목소리였어? 여자 목소리였어?"


  당연히 남자 목소리라고 할 것이다. 왜냐? 구약성서는 가부장적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남자로 나타나니까.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이니까. 뭐 그리 배웠을 터이니 당연히 하나님 어머니는 없을 테니까.

  

  "남자 목소리"


  오소가 이 부분을 말할 때는 약간 뜸을 들였다. 나처럼 묻는 사람이 지금까지 한 도 없었겠지. 그 목소리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내가 물어보니 생각하는 것 같았다.



2. 나는 질문한다



  "그 목소리 저음이었어? 고음이었어?"
  "음.~~~~ 저음"

  "그 목소리. 귀로 들었어? 마음속에 들려왔어?"
  "~~~~~귀로 들었지. ~~~ 마음으로 가슴으로 울려왔어. 화악~"

  드디어 오소의 버릇이 나왔다. 앞에서 한 말을 뒤에서 뒤집는 그 버릇. 앞에서 한 말이 너무 강하면, 그것을 무마시키는 반대말로 중화시키는 바로 그것. 귀로 들었다는 거야 마음에 울렸다는 거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더 묻지는 않았다.


  오소는 항상 생각을 했다. 내가 질문할 때면.


  가끔 오소는 자신의 번뜩이는 사업 구상을 내게 1시간 넘게 말했다.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흥분의 도가니였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을 발견한 기쁨에 말에 힘이 들어있었다.


  "야. 김밥 만들었다. 먹어 보니, 죽여준다. 참 쉽다"
  "그래?"
  "응. 말레이시아에서 김밥 사업할 거야. 한류 열풍이거든."
  "그래? 레시피는 갖춰진 거야?"
  "야. 그딴 게 뭐가 필요해. 메뉴는 무궁무진해 참치. 치킨. 김치."
  "그래? 단무지, 김치 등 재료는 어떻게 할 거야?"
  "뭐?..."
  "김은 어떻게 할 건데"

  "응,  그. 그 건... 한국에서 수입해야지. 잘 될 거야"

  "그래 그러길 바라지만, 나부터 설득시켜 봐"

  "김밥 프랜차이즈 할 거야. 전 세계를 상대로"

  

  나는 숨을 깊이 쉬었다.


  "근데, 너랑 통화하면 사업구상이 구체적이 돼. 나랑 사업 같이 하자"

  "아휴~~"



3. 종교체험을 하나님 체험으로 해석한 오소


  그의 최초 종교체험은 신의 목소리보다 더 이전이었다.


  신촌 근처를 지날 때, 눈에 보이는 듯한 수증기가 가슴속으로 훅~ 들어왔다고 했다.  그날 이후 15일간 세상이 한없이 아름다워 보이는 황홀경에 빠져있었다고 했다.


  오소는 신비한 체험을 종교적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 증거라고 했다. 성경은 무조건 글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했다.


  "오소야, 네가 만약 인도 힌두교에 다니다 그런 체험을 했다면, 어떤 신을 만났다고 했을까?"

  "그거야 뭐~~~"

  "시바신? 인드라 신? 크리슈나 신? 뭐였을까?"

  "야~ 그딴 소리하지 마. 넌 그게 문제야"


  오소와 같은 열성 믿음을 보이지 않으니, 그는 언제나 십자가의 도를 나에게 전한다. 하도 내게 전도를 하니, 나도 성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오소의 전도와 나의 질문은 수없이 오갔다. 이렇게 해서 최근 2년 동안 성서와 기독교에 대한 내 생각이 정립되었다. 구약성경 속의 이해할 수 없는 좌충우돌 하나님의 모습을 마주했다. 왜 그랬을까 이해해 보려고 했다.  


  구약에 등장하는 하느님은 감정 변화를 겪는다. 특이한 식성도 보여준다. 자기 백성을 구할 임무수행을 하루 앞둔 모세를 죽이려 한다.


"모세가 길을 떠나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밤을 묵는데 야훼께서 찾아오시어 그를 죽이려고 하셨다." < 공동번역 성경 출애굽기 4:24 >


 하느님이 변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인권의식, 윤리의식이 변한 것이란 결론을 냈다. 성서 속의 하느님은 인간이 그린 하나의 그림이구나. 이에 대해서 말할 기회가 오겠지.



4. 간증 요약


  성서로 도전한 오소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성서를 떠나 살려고 한 나에게 자극제가 되어 주었으니~


  오소가 최강희 간증을 보낸 것은 기도하고 하나님에 의해 변화를 좀 받으라는 것이겠지. 일단 간증을 모두 들어보고 요약을 한다. 그리고 내 생각을 적는다.


--간증 요약--


  여신 최강희.

  1. 연기 배운 적 없어 실력이 없고, 자존감 낮아 우울증.

  2. 선행(善行)하는 자신의 겉모습과 우울증 앓는 자신의 정체성 불일치로 정신분열 같은 생활을 함.

  3. 새벽기도회에서 '살려달라'고 말한 파장에 신이 응답한 듯함을 느낌.

  4. 지금은 안정을 찾음.


* 37분 20초 부근 나오는 대화

-사회자 목사 :  "어떻게 보면 자동차의 중립기어처럼. 딱 갖다 놓으면, 운전하시는 하나님이 후진 기어를 넣으실지, 전진 기어를 넣으실지. 강희 씨는 그렇게 가면 돼요."

-여자 사회자 :  "아, 표현이 너무 좋으세요"

  



< 오소가 보내온 배우 최강희의 간증 대담 >

배우 최강희 간증 "나는 크리스천 하나님의 배우입니다"|새롭게하소서 CBS



5. 나는 살고 싶다


  겉과 속이 불일치해도 내면에 아무런 파동이 없으면 우울증이 없을 수 있다. 동물의 세계는 별로 우울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니까.


  어떤 사람은 자신에 대해 깊이 인식한다. 나 자신 스스로의 평가에 민감하기도 하다. 그 민감도가 강할수록 우울감이 좀 더 심할 수도 있다. 예민할수록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이 탐구할 수도 있으니, 뭐가 좋다 말할 수는 없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 절대자를 생각해내기도 한다. 절대자를 향해 살려달라고 부르짖기도 한다. 살려달라는 진심 어린 목소리는 자기도 듣고, 결국 자기 내면까지 도달한다.  


  최강희는 지금까지 별로 기쁘지 않아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줄 알았다. 너무 힘든 정신분열 속에서 새벽기도회에서 '살고 싶다'는 진심을 발견하고 말로 표현한다.


  '살고 싶다'는 내면의 진심을 진정한 소리로 전달한다. 자기 입을 통해 들려오는 그 살고 싶다는 소리. 소리의 파장을 느낀다. 잘 나가는 여배우가 아닌, 도움 없이는 숨쉬기도 힘든 나약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속이 후련함을 느낀다.


  최강희 자신은 짐승이 아니고, 내면에 자의식을 가진 상처받기 쉬운 인간 여인임을 고백한다.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 이미지를 벗어던진다. 나는 이래야 한다는 당위성의 가면 'should 이미지'를 벗는다. 이 것이 그녀를 억압해 왔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름 신을 만난 경험을 한다. 신을 만났다고 해석한 것이겠다. 그 신은 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의 내면일 수도 있다. 최강희는 하나님이라 말하고, 나는 내면이라 듣는다.


  사회자는 목사라서 하나님이 인생을 쥐락펴락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한다. 그의 말처럼 신이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전진기어 후진기어를 마음대로 넣는다면 인간은 꼭두각시인가?



6. 나를 본다


  '인간은 중립기어에 놓아라. 하나님이 전진기어 후진기어를 넣는다?'


  모든 것을 신이 했다고, 신이 한다고 믿는 것은 정신적 일치를 가져올까? 아니면 또 다른 정신분열을 가져올까?


  인생의 주인은 신일까? 나 자신일까? 신은 인간을 세상에 던져 놓고 꼭두각시로 살도록 안 보이는 철사로 조종하고 있을까? 우주에서 자신을 확장하며,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을 보고 싶어 할까?


  항상 신의 감찰, 감시를 인식하며 눈치 보며 사는 것을 원할까?


  인간은 자신의 인생관에 따라, 자신이 구현한 세계관을 가지고 그 속에서 산다.


  정답은 없다. 어떠한 대답도 가능하다. 모든 걸 인정하며 살뿐이다.


  인간은 불쌍하다.

  스스로 불쌍하다는 연민을 느끼고

  재차 고통을 받는다.

 

  불안한 자신을 보면서 불안에 떤다.

  불안정해서 불안한 존재인 나.


  그런 나를 지켜본다.

  그러다 가끔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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