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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Oct 25. 2022

4학년, 진공관 전축

턴테이블이니까 돌았다

-턴테이블 속도는 2가지였다


  "내가 놀던 정든 시골길 ♪

   소달구지 덜컹대던 길

   시냇물이 흘러내리던

   시골길은 마음의 고향 ♬"


  국민학교 4학년까지 서부이촌동 시영아파트 안방에는 진공관식 전축이 있었다.


  레코드판에 들어 있던 74년작 '시골길'. 엄마가 돌아가신 76년에 임성훈은 이 노래로 TBC가요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나는 학교 가기 전 아침마다 전축을 켰다. 양 손바닥 사이에 검은색 레코드판을 수평으로 낀 후 검은색 플래터(platter) 원반 위에 가운데 구멍을 맞춰 올려놓았다. 스펀지로 레코드판을 한 번 닦았다. 톤암(tone aram)을 들면 레코드 판이 회전했고, 내려놓으면 천천히 멈췄다.


  톤암 뒤엔 무게추가 달렸고, 앞쪽엔 검은 카트리지 헤드 밑에 바늘이 나와 있었다. 손가락 걸이에 검지 손가락 손날을 걸어 헤드를 들었다. 레코드 판이 회전하면 듣고 싶은 음악 위치에 바늘을 올려놓았다.


  회전하는 레코드판은 오르락내리락하며 돌았다.


  지름이 30cm인 12인치 LP 레코드판은 분당 회전수 33 1/3 RPM으로 돌리지만, 작은 20cm짜리 7인치 레코드판은 더 빠른 45 RPM으로 돌렸다. 보통 크기 12인치 판을 45 RPM으로 빨리 돌리면, 지저귀는 듯한 말소리와 날아가는 음악소리로 변했다. ( LP = long playing , SP = short playing , 참고자료 [1] )



-레코드판에 있는 것들


  아침에 '시골길'을 듣고 학교를 가면, 하루 종일 노랫소리가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내가 놀던 정든 우리 집 ♪

   음악소리 울려 퍼지던

   우리 집은 마음의 고향 ♬"


  '시골길'을 '우리 집'으로 바꿔서 흥얼거렸다. 우리 집은 엄마가 항상 아픈 상태였기에 저기압이었다. 형광등이 켜 있어도 어두웠다. 묵직한 가슴을 달고 살았지만, 전축에서 나오는 음악은 먹구름을 잠시 몰아갔다. 신기한 도구였다.


  영화음악 레코드판도 자주 돌렸다. 씩씩한 노래 'The battle  of  Jericho' 합창을 듣기 위함이었다. 이 노래는 가슴과 어깨들 들썩이며 들었다. 올리비아 핫세 주연 로미오와 줄리엣의 'What is a youth'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신비의 세계로 데려갔다.


  레코드판에 인쇄된 겨울 옷과 러시아 모자를 보면서, 닥터지바고 '라라의 테마'를 들었다.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들이 다 같이 현을 미끄러뜨렸지만, 선율은 흘렀지만, 밝지는 않았다.


  석양의 무법자 차례가 되면,  "호이호이오~ 와와와♪~, 호이호이오 와와와 ♬"  휘파람 소리.



-바늘에서 소리가 나온다


  강변성결교회 이중태 목사님 성가집 레코드판은 7인치로 작았다. 독창은 그리 재미없었다.


  조용기 목사 설교 레코드에선 총알 같은 말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저는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그래함이 되는 꿈을 꾸었던 것임 뉘~"


  그의 설교는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변사가 말하는 것 같았다. 빌리그레함처럼 세계적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 그를 흉내 내었다는 그의 태도는 항상 의심스러웠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유명해지기 위해 설교를 연습한 조용기. 수많은 무리 앞에서 설교하고 연설하는 자기 실현을 목표로 한 조용기 목사.


  레코드판에 어떻게 소리가 숨어들었는지 궁금했다. 전축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 레코드판을 올리고 턴테이블을 손으로 돌려 봤다. 바늘에서 진동하는 찌직찌직 말소리 음악소리가 세미했다.


  레코드판에 소리가 어떻게 새겨져 있는지 공중에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이렇게 신기한 전축을 만지면, 우울한 생각은 잠시 달아났다. 바늘로부터 소리가 나오는 과정이 신기했다. 아버지는 1달에 한두 번 레코드를 돌렸고, 엄마는 거의 전축을 만지지 않았다.



-레코드판에 있는 것들


  전축은 내가 제일 많이 켰다 껐다했다. 전축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면, 사이클 바늘이 좌우로 움직였다. 전원을 넣으면, 직사각형 라디오 사이클 바 아래에서 노란 불빛이 은은히 올라왔다. 앉은키만 한 스피커 울림통은 반짝이는 천 소재로 막혀있었다. 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서 철사로 찔러보았다.


  큰 이모 댁 자동 턴테이블을 보고 난 후 우리 수동 턴테이블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헤드를 손으로 직접 집어서 레코드판을 잘 보고 살짝 올려놓는 수고를 매번 하는 것. 귀찮다. 사람 불러야 한다.


  집에 전축이 없었다면, 음악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냥 밖에서 땅따먹기, 망까기, 구슬치기, 다방구, 치기장난 등만 했을 텐데...


  맨날 동생과의 싸움박질.

  아픈 엄마를 더욱 고통 속으로

  몰고 있다는 죄책감.


  마음을 어루만져 준

  전축 속 음악.


  전축은 음악과 소리의 신기한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음악은 과거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지팡이이다.



< 참고자료 >

1. [취향의 물건] 오래된 음악 'LP판', 조선일보, 2017.03.29


"1948년 6월 어느 날 아메리칸 컬럼비아사는 1분간 78번 회전하는 종래의 SP(short playing) 레코드와는 다른 33⅓회전 LP(long playing) 레코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 아래 4곡은 여유가 있으신 분만 하나씩 들어봅니다.

음악을 너무 많이 달아 놨다고 짜증 내지 않기입니다.


1.

<THE BATTLE OF JERICHO, Moses Hogan - PORTLAND STATE UNIVERSITY CHAMBER CHOIR >



2.

< What Is A Youth - Romeo and Juliet 1968 >



3.

<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라라의 테마(Lara's Theme) >



4.

<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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