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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Oct 26. 2022

중1,[자유를 원해?] 그럼 자동 녹음기를 만들어

나는 사고 부장

-설교대회가 열렸다


  중학교 1학년, 대림동 양문장로교회 설교대회에 참가했다.


  집에 있던 조용기 목사  5분 설교집 <오늘의 만나>  몇 편을 편집하면 원고는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감동적 설교는 아니지만 익숙한 내용이니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덤벼든 것이다.


  조 목사 설교야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성공하자는 것이니 내용도 건전하고 쉽잖아. 쉬워서 자신 있었다.


   책 여기저기를 뒤적였다. 하룻밤 머리를 쥐어뜯으면 위대한 창작물이 나올 것 같았다. 불가능했다. 머리가 이부 깍까 머리였기 때문이다.



-에이~세상이란


  그래도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인가 아버지인가 아니 할아버지쯤 되겠지.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며

   손에 잡히는 것 없고

   앞길은 칠흑같이 어두울지라도"


  조목사가 설교 때마다 사용하는 이런 상투적인 표현은 비껴갔다. 새로운 걸 찾아보려 공을 들였다. 쉽지 않았다.


  당시 조용기 목사의 설교 중 독특한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 성공을 으로 그려 심상화하고, 하나님에게 원하는 걸 정확히 말하라는 내용이었다. 오늘날의 시크릿 류였다. 어디를 봐도 비슷비슷 뻔한 설교였다.


  교회 담임 선생님에게 완성한 원고를  보여 주고 맹렬히 연습했다. 책상 앞에서  사람들 얼굴을 상상하며 반복 연습했다. 손을 위로 들었다가 내리치는 제스처도 넣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당연히 내가 1등이지. 설교대회 당일날 장의자에 앉은 나는 건방진 권투 선수처럼 기세 등등했다. 단 위에 선 나는 거침없었다. 원고는 왜 봐? 그냥 쏴 붙였다. 반쯤 승리를 예감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앉아있는 선생님들의 얼굴도 하나씩 보면서 여유가 있었다. 이제 시상식에서 1등 상장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리바리한 다른 애들 설교. 나는 웃음 지었다.


  점수를 발표하고 2등을 호명했다. 이  게 뭐? 내 이름이 불렸다. 이런 퉤퉤~


 안타깝게도 s장로님 아들이 1등, 나는 2등. 이런~ 더러운 세상. 이런 우라질. 아더메치유~



-사명을 완수해라


  조목사 설교가 익숙한 것은 아버지와 관련있었다.


  내가 6학년 때부터, 우리 아버지는 일요일마다 조용기 목사 라디오 설교를 녹음하라고 했다. 나는 일요일 저녁 7시부터 녹음기 앞에 붙어 있어야 했다. 주말 저녁 어디 가서 연애라도 해야 하는 .


  일요일 저녁 자유가 사라졌다.


  조 목사 설교가 시작되기 전 극동방송 다이얼을 맞춰놓고, 7시에 빨간색 녹음 단추와 재생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30분이 돼 테이프 A면이 끝나면 잽싸게 B면으로 돌려 녹음했다. 이렇게 하고 나야 내 시간이다.


  소중한 주말 저녁. 나를 옭아매는 올무를 어떻게 끊어야 하나? 시간 되면 자동 작동하는 녹음기는 왜 없는 거야! 아니 자명종과 녹음기가 합체하면 되는 거 아냐? 왜 이 걸 안 만들어서 나를 귀찮게 해? 엉?


  목마른 넘이 우물을 파야 한다고? 알았어. 탁상시계와 라디오 녹음기를 분해해 봐야지~



-분해해 보자


  국민학교 이전부터 내 별명이 하나 있었지. 그 건 '사고 부장'. 뭐든 분해했으니까. 뭐든 작살냈으니까. 재 조립은 되면 하고. 그래서 '사고 부장~'

  

  먼저 탁상 자명종 시계를 뜯었다. 이제 탁상시계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전의 시계로 돌아갈 수 없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리저리 만져가며 살펴보았다.


  시계 외부를 보았다.

  정한 시각이 되면, 알람용 태엽이 풀리면서 상부 누런 종 2개 사이에 있는 쇠망치가 좌우를 연속으로 때리면서 소리를 냈다.


  시계 속을 보았다.

  알람 시간이 된다. 종을 난타하는 작은 쇠망치를  막고 있던 쇠막대가 아래로 똑 떨어진다. 방해물이 사라지면, 양쪽 종 사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쇠망치가  이 때다~ 뺨따귀를 마구 쳐댄다. 따르르르릉~. 알람 태엽이 다 풀리면 멈춘다.


  알았어. 알람 시간이 되면 쇠막대가 하강한다.



-만들어 보긴 했는데


  이젠 녹음기 차례다.


  전기코드가 꽂혀 있지만, 전기 공급이 끊긴 녹음기를 만들어야 했다. 외부 고전압은 위험하니 저전압 단자를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끊었다 붙였다 했다. 


  마침내 찾아서 선을 펜치로 끊었다. 한 가닥이었던 선을 1번 선, 2번 선으로 분리했다. 1번 선, 2번 선 잘린 부분 피복을 좀 더 벗기고, 각각 긴 전선을 이어 붙여 밖으로 뺐다.


  시계 망치질 방해 쇠막대녹음기 1번 선을 연결했다. 2번선은 방해 쇠막대가 툭 떨어지면 닿도록 아래에 설치했다. 1번선 쇠막대가 떨어져 2번선에 닿으면 전기가 통할 것이다. 


  다 됐다


  테스트를 해야지. 먼저 라디오 스위치를 올리고, 녹음 버튼과 재생 버튼을 눌러 놓았다. 자명종 시계를 5분 뒤로 맞춰놓고 기다렸다.


  과연 동작할 것인가?



-바로 이 맛 아닙니꺼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감감무소식이다. 물 한 잔을 들이켜도 조용하다. 이제 남은 것은 뭐?


  그래 기도다.


  기도를 빼먹었다. 신의 소리를 녹음하는데 의식을 빼먹다니~


  툭~~


  방해 쇠막대가 곤두박질했다. 엉덩방아를 제대로 찍었는지, 라디오 소리가 나면서 녹음테이프가 삐걱삐걱 댔다.


   예스.


  한 번 떨어진 쇠막대는 주저앉아 2시간이 돼도 올라오질 않았다. 2시간 이상 전기가 통한다는 얘기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우헤헤헤~ 나이스 볼!!

  땡큐.  메르치 보꾸. 씨예 씨예.


  매주 일요일 저녁. 자명종 태엽을 잘 감고, 알람을 7시에 맞췄다. 테이프를 껴놓고 녹음 버튼과 재생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120분짜리 스매트 테이프를 넣었으니 돌려 끼우지도 않았다.


  이 시스템 때문에 녹음 노이로제에서 해방됐다. 발목 잡던 조용기 목사 설교는 멀리 사라져라. 뿅!!


  나는 일요일 저녁마다

  자전거 타러 나갔다.

  이리 편한 걸.


  난 자유를 원해~


<  팝페라 송은혜, 나는 나만의 것 >

...

하지만 이런 날 가둬두지마 

내 주인은 바로 나야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갈래 

난 나를 지켜나갈 거야 

난 자유를 원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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