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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Oct 24. 2022

중1, 중2, 말죽거리 잔혹사

때렸다

-격변의 한 복판 79년


  1979년 3월, 중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는 없고, 중학교만 달랑있는 학교였다.


  79년은 한국 역사에서 최고 격변의 시기였다. 10월엔 김형욱(전 중앙정보부장)의 파리 실종, 부마항쟁,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등으로 나라가 흔들거렸다. 뒤이어 12월엔 퉁퉁부은 얼굴의 최규하 대통령 취임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땐, 때리고 맞기 위해 학교라는 곳에 갔다. 첫날부터, 빼빼 마르고 이마에 점이 있지만 아담한 3학년 선도부 형이 우리 반 전체를 매질했다.


  아침자습시간. 한 명씩 칠판에 손을 대고 허리를 숙였다. 선도부 형은 각목으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하나"

  "둘"

  "셋"

  "넷"

  "다서~~~ 엇"


  맞을 때마다 숫자를 셌다. 나도 앞에 나가 칠판에 손을 댔다. 팔이 부르르 떨리고, 무서웠다.


  각목이 엉덩이를 충돌하는 순간의 퍽~ 소리. 피부가 납작 퍼지며 엉덩이 핏줄이 터지는 영상. 미리 준비된 공포 영상은 실충격보다 수백 밀리 초 앞서 뇌 속에서 상영되었다. 엉덩이가 찢어지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들오들 떨었다.


  엉덩이에 각목이 실제 부딪히면, 진앙지에서 온 몸으로 통증이 퍼졌다. 통증을 실은 전기신호는 심장을 관통했다. 뇌는 미리 예측한 고통과 실제 전달된 통각을 비교하며 데이터를 수정했다. 이러는 사이 심장은 쫄깃쫄깃했다.



-선도부가 때렸다

 

  선도부 3학년 선배는 온갖 이유를 붙여 때렸다.


  목 칼라에 호크를 채우지 않았다고 때렸다. 모자가 삐딱하다고 때렸다. 쳐다본다고 때렸다. 고개 숙이고 있다고 때렸다. 대답을 크게 하지 않는다고 때렸다. 가만히 있는다고 때렸다.


  그냥~ 때렸다.


  갓 입학한 3월이었지만, 둘째 날부터는 아랫도리에 두툼한 겨울 내복을 입고 갔다. 내 소중한 엉덩이를 보호해야 했다.


  이 번에도 맞으며 숫자를 셌다. 내복을 입었기 때문에 전날보다 덜 아팠다. 그리고 한 가지 팁~ 큰 소리를 지를수록 덜 아프다. 통증 전기신호를 소리로 방전시켰기 때문이었다.  


  매일 맞으니 고통의 강도가 줄었고 그냥 으레 지나가는 일상이 되었다. 무서움도 줄어들고 평화가 조금씩 찾아왔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좌절감은 꼬리를 물고 온 몸을 헤집고 다녔다.



-선생님이 때렸다


  선생님도 때렸다.


  융단폭격의 1차 목표 엉덩이를 때렸다.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신체 닿는 곳은 어디든 때렸다. 대갈통도 때렸다. 남자 선생님들은 질문하고 대답 못하면 때렸다. 숙제를 안 해 오면 때렸다. 준비물을 빠뜨려도 때렸다.


  과학 선생님은, 과학실에서 주먹보다 큰 U자형 말굽자석으로 때렸다. 나도 한 번 머리를 맞았다.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한 번에 혹이 두 개나 생겼다. 나는 앙심을 품었다.


  여자 선생님도 때렸다. 여자 음악 선생님은 자기 반 애들을 때렸다. 선생님 치마에 거울을 들이댔다고 때렸다. 화장실 대걸레 자루가 몇 개 부러질 때까지 때렸다.


  게 중 순하고 재미있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대부분 때렸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주는 선생님은 별로 없었다. 선생님 앞에선 공부든 행동이든 말이든 잘해야 했다. 맞기 싫으면.


  선생님들은 가끔 귀와 옆머리를 위로 잡아당기는 고문도 했다. 아~악~ 소리가 극에 달할 때까지. 학생들끼리 서로 뺨을 때리게도 시켰다. 맞고 고문당한 아이들은 수치심과 반항심을 극대화하고 가슴속 칼을 갈았다.



-반장은 어떻게 하는 거야?


  폭력에 황폐해진 애들은, 교실에서 말싸움하고 멱살을 잡다가 서로 아구창을 날렸다. 반 아이들끼리 서열을 정하기 위해 주먹질을 했다.


  짐승 같았다.


  싸우면 책걸상은 기본으로 휙휙 날아다녔다. 걸상이 부러지거나 비틀어지면 애들이 고쳤다.


  걸상이 부서지면, 수리할 곳에 못을 대고 망치로 못대가리를 때렸다. 나무 걸상에 삐죽이 나온 못에 교복 바지가 가끔씩 찢어졌다. 찢어지면 마음은 어휴~ 더욱 사나워졌다.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박질. 유리창 깨지는 쨍그랑~ 소리는 매일 났다. 매주 폭력 학생들 유기정학, 무기정학 징계처분 소식이 게시판에 실렸다.


  2학년이 되면서, 나는 반장이 됐다. 1학년 때 반장 했던 김호경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냐고 물었다. 


  때리라고 했다.


  나는 몽둥이를 만들어 우리 반 녀석들을 때렸다. 공포정치로 학습 분위기를 꽈~악 잡았다. 공부 잘하는 반을 만들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먹혔다. 우리 반은 언제나 학급성적 전교 1등이었고, 담임 여선생님은 내게 뭐라 하지 않았다.



-때리고 또 때려라 1등을 만들자


  가끔 전체 기합도 주었다.


  1번부터 끝번까지 68명을 2-3대씩 엉덩이를 때렸다. 수업 중 분위기를 해치지 못하게 눈에 불을 켰다. 수업이 끝나면 걸린 녀석들을 때렸다. 그런 후에 화장실을 가게 했다.


  수업시간 5분 전에는 모두 착석하도록 했다. 대표로 한 녀석이 교과서를 읽는데, 그만~ 하고 다음 녀석을 시키는데 못 읽으면, 여지없이 때렸다.


  학과 선생님이 나타나면, 교탁에 몽둥이를 넣고 내 자리로 돌아가 '차렷~경례~' 구호를 외쳤다. 차렷이 제대로 안되면, 둘러보며 인상을 썼다. 눈에 힘을 주면서 '열중쉬어~'를 외쳤다. 내 심기가 불편해졌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학급성적은 최우수로 만들었지만,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소리가 곧 나빠졌다. 학습 분위기 조성이 내 책임인 줄 알고,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애들에게도 미안하다.


  추파 던지는

  분식집 아줌마 얘기를 더하면,

  이 자체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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