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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Oct 15. 2022

6살.[실미도 사건] 나는 지옥을 보았다

영화 7월 4일생의 헬기 소리

-영화 7월 4일생 메인 테마


  영화 7월 4일생이 시작되고, 메인 주제 음악이 깔린다. 신음하는 듯 트럼펫 소리가 처량하다.


  미군 병사인 톰 크루즈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총을 들고 들판에 들어선다. 들판엔 무릎까지 오는 누런 풀이 흔들리고 있다. 이국땅 바람이 스친다.


  트럼펫 고음현악기 저음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 듯하다. 내게는 이렇게  들린다.

  1.

  "살려주세요"

  "안~돼~"

  죽음에 쫓긴 트럼펫 하나가 살려달라고 길게 높은  소리로 운다. 기다리던 첼로 더블베이스 무리가 꾸아~  무겁고 거칠게 거절한다.

  2.

  "살려주세요"

  "~~"  

  다시 한번 애걸하고, 같은 말로 거절한다.

  3.

  "살려주셔요. 제발요. 살아야 해요"

  "안~~"

  트렘펫은 꼭 살게 해달라고  몇 마디 덧붙여 호소해 본다. 죽음의 사자는 똑같이 꾸아엉~고개를 흔든다.

  4.

  "살려주세요".

  "안 된다니까. 너는 곧 죽을 거야''

 살려달라고 또 해보지만, 팀파니는 드르~ 드르둥~ 천둥같이 으르렁대며, 죽음이 눈썹  앞에 와 있다고 위협한다.



아래 동영상 처음 1분 동안 & 5분 20초에 트럼펫이 등장한다.


< 영화 7월 4일생 주제곡 >

https://youtu.be/y4fy_kMY3fE

FSO - Born of the Fourth of July - "Theme" (John Williams)

-죽음을 향해 걷는다


  죽음을 예고하는 음악. 군인들은 소총을 들고 기우뚱기우뚱 걷는다.


  죽음을 믿지 않는 몇몇 군인들은 대화를 한다. 서로 고함치듯 큰 소리로 한다. 두려움을 떨치려 발악을 한다. 관객도 그들과 함께 누런 들판을 긴장하며 걷는다. 보이지  않게 떨면서 걷는다.  

 

  풀을 꺾어 밟는 검은 군홧발 소리, 소총과 중화기에서는 달그락 소리가  난다. 금속 부착물들이 부딪혀 소리를 만들고 있다. 


  소리는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다. 죽음의 제단에 심장을 제물로 바칠 순간이 째깍째깍 오고 있다. 뒤쪽 멀리서 UH-1 수송 헬기가 작게 떠오른다. 공중에서 엄호하고 구원병을 실어내는 다목적 헬기다.



-죽음을 예고하는 헬기 소리


  그런데, 헬기는 한 대 뿐이다. 트트드득~ 트트드득~ 헬기 소리는 점점 선명해진다. 트럼펫 소리처럼, 헬기도 음울하게 투덕대는 소리를 먼저 보내온다.


  각종 나무와 로 꾸며진 구조물들. 평화로운 마을처럼 보인다. 병사들은 여전히 터덜 터덜 걷고 있고, 대열 뒤에 있던 헬기 한 대가 드디어 제 모습을 크게 드러낸다.


  트트드득~ 트트드득~


  온몸을 울리는 굉음. 엔진 뒤 뜨거운 아지랑이.  헬기는 저공비행으로 화면 앞 관객을 향해 돌진하다 위로 상승해 사라진다. 헬기는 떠났고, 아무 일이 없다. 불안하다. 


  죽음이 등장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화면은 사람 사는 마을을 보여주며 관객을 안심시키지만 관객들은 의심한다.


  언제 총질이 시작될지 애를 태운다. 긴장을 견딜 수가 없다.


  마침내 한 발의 총성. 미군 병사는 머리에 한 발을 맞고 쓰러지고, 전투는 시작된다. 표정을 숨겼던 두려움과 공포는 사나운 죽음의 발톱으로 생명을 찍어 할퀴고 살점을 뜯어내기 시작한다.  



< 7월 4일생 - 앞부분에 위에서 그린 장면이 나온다 >

https://youtu.be/zsk1tq6niWw

Born on the 4th of July (1989) Firefight HD


-헬기 소리공포의 스위치다


  미국 독립기념일을 제목을 만든 베트남 전쟁 영화 '7월 4일생'.


  이 영화엔 영화 시작 첫 3분 안에 관객을 사로잡아야 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특징이 그대로 담겼다.  


  1990년 극장에서 이 영화를 함께 여자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내에게 7월 4일생을 본 적이 있느냐, 누구랑 봤냐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다행히 아내다. 휴우~


  영화관을 

  뒤 흔들었던 헬기 소리. 

  내 머릿속 공포 스위치가 켜졌고,

  아들을 잃고 미쳐 날뛰는

  하늘이 무너져 땅을 뒹구는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1971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한강철교 바로 옆 서부이촌동 시민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나는 6살이었다. 8월  23일 그날 온 나라가 공포로 떨었다. 


  사람들은 무장공비가 대방동 유한양행까지 침입해 왔다고 수군거렸다. 한강 다리만 넘으면, 서부이촌동 우리가 사는 곳인데, 나도 걱정이 되었다.


  3년 넘게 북파공작원 훈련을 받던 특수부대원들이,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진입한 '실미도 사건'이 터졌다.


-울음바다 생지옥


  얼마 후 외할머니 엄마와 함께 넓은 군부대 연병장 같은 곳으로 갔다. 하얀 천이 덮인 관들이 줄지어 있었다.


  사람들은 울고불고 소리를 질러댔다. 땅바닥을 손바닥으로 치고, 하얀 천을 들어보고는 소리치며 뒹굴었다. 아들 이름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철퍼덕 앉아 마구 발을 땅에 비비고 긁힌 피부에서 나온 피가 땅에 묻었다. 몸을 좌우로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하늘을 쳐다봤다.


  생지옥이었다.


  잠시 후 낮게 착륙하는 헬기 소리가  몸을 진동시켰다.


  트드트드 드득~ 트드트드 드득~


  헬기 소리는 미쳐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헬기 소리는 죽음, 통곡, 공포였고, 지옥에 끌려온 자들의 고통과 신음이었다.


  실미도 사건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둘째 외삼촌이 기간병으로 돌아가셨다.


  공군이었던 외삼촌은 휴가 때 잘 다려진 멋진 공군 제복 반팔을 입고 있었다. 아이스크림도 사주었다. 깨끗하고 잘생긴 외삼촌이 멋진 공군이란 사실이, 내겐 큰 자랑이었다.


-영화 실미도 박 병장


  외삼촌은 제대를 몇 달 앞두고  있었다. 외삼촌은 우리 아버지에게 실미도로 배치를 받았다면서, 부대 복귀가 무섭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차라리 탈영병이 되었다면 살았을 텐데, 끝내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고야 말았다.


  실미도 사건이 영화로 나왔을 때, 외가댁 가족들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알리지 않았다.


 외삼촌은 영화 <실미도>에서 박 병장으로 나왔다.


  실미도 시나리오를 구해서 대사를 따라가 보았다.



-훈련병3 : (인찬을 잡고) "나 바꿔줘유 난...통신 막사는 못 해유. 우리 박병장 일주일 있다가 제대 휴가 간다구 엄청 좋아했는디"


-훈련병4 : (벌컥 화내며) "너만 싹통 있는 것처럼 굴지 말어! 여기서 자기 담당 모가지 딸 수 있는 놈이 몇이나 되겄냐! "


-훈련병3 : "너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새끼니까 정두 없을 거 아냐!"




-헬기 소리는 트라우마


  동작동 국립묘지에  나도 따라갔다. 총을 들고 소리 지르는 군인 동상이 보였다. 녹색 잔디는 낮게 깎여 있었다. 제복을 입은 의장대는 하늘을 향해 공포탄을 몇 차례 쏘았다. 흰색 보자기에 싸인 작은 상자를 묻었다.


  외삼촌은 2계급 특진했는지, 참배하러 갈 때 보았던 비석에 박OO중사로 돼 있었다.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그런 상황이 이해가 안되는 것처럼 보였다.


  " 왜 예수  믿는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가 안된다"


  특히 예수 잘 믿는 장로 가정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니,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것이라는 2차 고통이 따라왔다.


  예수 믿으면, 영혼과 육체가 잘되고 범사에 잘된다며 전도했을 시절이었기에 더욱 이해가 안되었던 것 같다. 나는 6살이었지만, 외가댁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고, 그들의 언어 속 고통을 기억했다.


  어른들은 살아난 군인 얘기도 했다.

  "화장실 똥 투간 아래에 숨었던 사람은 살았다더라"  

  나는 군인 가서 위험에 처하면 화장실 밑으로 숨어야지. 근데 얼굴을 분뇨에 파묻고 숨을 참는 모습은 끔찍해~


  당시 실미도 화장실 바닥은 무릎까지만 분뇨가 차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돌아가신 외삼촌은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가장 커다란 효도를 했다. 나라에서 꼬박꼬박 유족연금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외할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요양병원에 계실 수 있었으니, 외삼촌은 최고의 효자였다.


  전쟁 영화 헬기 소리는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 참고자료 >

[1] 실미도 사건 - 나무위키

[2] 실미도(영화) - 나무위키:대문

[3] 영화와 다른 실미도 반란의 진실 - 생존자들의 증언 實錄 , 월간조선, 2004.2

[4] 실미도 생존자가 밝힌 ‘실미도의 진실’ , 동아일보, 2009-10-05

[5] '그때그사건' 1971년 실미도, 생존자가 말하는 그날의 진실, 일요서울, 2015.01.19

[6] 49년 전 대방동에서 벌어진 총격전, 진실 밝혀질까, 오마이뉴스,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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