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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Oct 02. 2022

중3,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올림픽 때 만날까?

어메이징 그레이스

-문학의 밤, 관객은 졸고.

  81년 10월. 양문교회 중등부 3학년 문학의 밤. 중등부 연극의 제목은 <어메이징 그레이스>였다.


  연극은 노예 무역상이었던 성공회 신부 존 뉴턴 이야기였다. 뉴턴이 죽을 뻔한 풍랑을 겪은 후, 과거를 참회하는 부분이 이 연극의 절정이었다.


  여름수련회로 내 존재가 알려져, 나도 이 연극에 출연 제의를 받았다. 잡아온 노예를 파는 역이었다.


  "튼튼한 노예 사시오. 30만 원이면 거저요"

  이런 대사를 읊어야 했다. 영혼없는 대사였다.


  문학의 밤 우리 앞쪽 순서에는 피아노 독주가 있었다. 피아니스트만 홀로 아는 곡이 연주되자 관객들은 하품을 했다. 생소한 신곡이 연주되면, 관객은 바로 적응하기 어렵다.


  음악회 최고의 곡은 자신이 잘 아는 것이고, 최악은 연주자만 아는 곡이다. 그러니,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곡을 연주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 경험 때문에, 나는 피아노 독주회는 불면증 치료 목적이 아니면, 피해야 한다는 편견을 오랫동안 갖고 살았다.  


  우리 연극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시작됐다. 따분해하는 관객을 어떻게 흔들어 깨우지? 무대에 오른 나는 관객을 좌우로 주욱 살폈다.


-경매를 한다

  흐리멍덩한 관객의 눈.

  나는 결심을 했다.


  "오늘 오신 분들, 이 노예 강철 같은 이빨 보이시죠? 자, 30만 원부터 경매 들어갑니다. 35만 원 있으면 손드세요." 500명쯤 되는 관객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홀 2층까지 쩌렁쩌렁했다. 연극무대는 곧 경매장으로 변했다.


  "35만 원이요."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 40만 원 없어요?"

  "50만 원이요." 앞 좌석 관객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소리를 질렀다.

  "좋아요. 또요!"

  "70만 원이요" 교회 2층에서는 더 큰 소리가 울렸다. 관객들은 점점 신이 나서 앉았다 일어섰다 했다. 내 심장이 쿵쾅쿵쾅. 몸짓엔 자신감이 솟구쳤다. 나는 없고, 전문 노예 경매사만 있었다.


  "140만 원이요"

  "네~ 140만 원 낙찰되었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끊었다. 공기가 바뀌었다. 눈들이 똘망똘망해졌다.


-이지연 동생 형우

  뉴턴이 눈물로 참회하는 절정 부분은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연극은 성공적이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에서 1학년 이형우는 노예 역할을 했다. 형우는 부회장 이지연 동생이다. 연극 연습을 1달간 하는 동안, 나는 형우를 특별히 아껴주었다. 어깨도 두드려 주고 자주 말을 걸었다.


  누나가 보통 시에 귀가하고, 오면 무엇을 주로 하는지, 형우를 통해 정보를 입수했다. 이런저런 걸 묻다가, 지연네가 12월경 미국 LA로 이민 간다는 걸 들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심장5층 높이에서 쿵 떨어졌다. 마음은 척추가 부러진 듯 기우뚱 했고, 땅바닥을 기었다. 


  촉박했다. 지연이를 빨리 만나야 한다.


  형우를 만난 답시고 일요일 오후 지연네 집으로 향했다.


  그녀 집은 교회 옆 작은 아파트 2층에 있었다. 그 집 현관을 들어서니, 거실이 답답하게 좁았다. 검은 소파와 낮은 테이블이 마루를 다 차지해, 한 사람이 다닐 통로만 나있었다.


  지연이는 안 보이고, 형우 밖에 없었다.


-삭막한 겨울

  하염없이 기다리다, 지연네서 나왔다. 좀 전까지 있던 설렘은 사라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터덕터덕 맥없이 걸었다. 인천행 전철 안, 투덕투덕~ 투덕투덕~ 바퀴 진동이 나를 흔들었다.


  그 후 교회서도 지연이를 볼 수 없었다.


  '84년 LA올림픽이 있다니, 그때 가서 만나봐야지.' 나를 다독였다. 그런데 어떻게 연락하나.


  중학교 3학년 2학기 9월. 우리 집은 인천 연안부두 라이프 아파트로 이사 갔다. 문학의 밤 한 달 전이었다.


  나는 서울행 전철과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학교와 교회를 다녔다.


  서울 신림동 단독주택 시절은 지났다. 인천 연안부두 어시장 앞, 아는 이 없는 외로운 아파트. 12월 겨울이 되니, 비릿한 바다 냄새는 매서운 칼바람이 되었다.


  지연이가 없는 서울 양문교회까지 고생스럽게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방에서 나올 이유도 없었다. 회색 아파트 위로 차갑고 얼룩덜룩한 달만 환했다.


  사랑은 떠나갔고, 마음속 태양은 곤두박질했다. 주위에 속마음을 털어버릴 친구도 없었다.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쓸쓸한 냉기휘휘 불어대는 황량한 인천 부둣가에 유배 온 듯했다. 몸을 어떻게 가눠야 할지. 방 안에서  노래만 들었다.


  빨간 녹음 버튼이 달린 라디오 녹음기로 남궁옥분 노래만 반복해 들었다.


  그해 81년은 KBS, MBC에서 최고 인기가수상을  남궁옥분이 휩쓸던 해였다. 여름부터 남궁옥분의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가 유행했고, 지연의 이민 소식 이후부터는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를 입에 달고 다녔다. 


  노래는 나를 찢었다.


  특이한 얇은 콧소리를 살지게 하면, 영락없이 양희은이 될 것도 같은 남궁옥분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랫말은 간단했다.


  때로는 당신 생각에 / 잠 못 이룬 적도 있었지

  기울어가는 둥근달을 보며 / 타는 가슴 남몰래 달랬지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 향기로운 꽃보다 진하다고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세월이 흘러 먼 훗날 /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도

  오늘 밤 또다시 당신 생각에 / 타는 가슴 남몰래 달래네


-타 버린 가슴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는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작사한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대중가요는 나를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은 자주 음악에 실려 있었다.


  그댈 생각한다. 잠 못 잔다. 달을 본다. 가슴 탄다. 누가 사랑하라고 했느냐고. 바보 같이.

 

  생각하다 잠 못 자고

  달을 보다 한숨 쉰다.

  바보라고 자책하니

  햇빛보기 거부한다.


  돌아누워 우는 모습

  무슨 병을 앓고 있나

  입꼬리는 내렸구나

  검은 가슴 재가 되고.


  노래에 실려 지나간다. 나의 행복, 슬픈 사랑이.




< 남궁옥분 -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


  https://youtu.be/_VQ7fg2OuW0

남궁옥분 -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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