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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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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표심
Oct 01. 2022
중3, 쏟아지는 별빛. 누가 꿀떡을 먹었니 항아리에서
어깨에 수건을 덮어 주었다
-누가 꿀떡을 먹었니.
“누가 꿀떡 먹었니, 항아리에서~”
“이지연이 먹었지, 항아리에서”
“난 아냐”
“그럼 누구?”
중3 양문교회 여름 수양회 버스에 타고 있었다. 가기 싫었지만, 꼭 가야 한다고 하는 통에 억지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교회생활은 무료했고, 중등부 2학년 3학년 선생님은 기억에도 없다. 여름수양회는 한 번도 가 보지도 않았지만, 중학교 마지막이니 꼭 같이 가자는 애들 때문에 마지못해 참석해 주었다.
경기도 가평 현리까지 관광버스로 갔다. 자리가 모자라 몇몇 애들과 나는 뒤 쪽에 서서 갔다.
버스 안, 3학년을 중심으로 <누가 꿀떡 먹었니> 놀이가 시작됐다. 양 무릎 꽝/ 손뼉 짝 / 오른 엄지 척 / 왼 엄지 척 / 4박자에 맞춰 놀이를 했다. 이 게임을 통해 중등부 애들과 나는 서로 이름을 익혔다.
-내 이름을 부르니 꽃이 된다
게임을 하면서, 애들이 내 이름을 연속으로 불렀다. 나도 다른 애들 이름을 빨리 되받아쳤다.
부회장 이지연은 자꾸 내가 먹었다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내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이지연은 신림여중 3학년 단발머리였다. 얼굴엔 젖살이 남아 통통하고 귀여웠다. 웃을 땐 초승달 두 개를 가지런히 널어놓은 듯 실눈이었다. 윗니 아랫니가 보이게 활짝 웃으면, 양쪽 볼이 볼록해졌다.
나도 중등부 임원이었다면, 지연이와 같이 있었겠지. 먼발치에서 아쉬워만 했는데, 버스 좁은 공간 때문에 우리는 가까웠다. 축복이었다. 게다가 지연이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있으니, 그녀에게 가서 꽃이라도 되어야 할까. 제발 이대로 멈춰라. 영원히.
그러나, 버스는 현리에 도착했고, 게임은 끝났다. 인생은 자주 이렇다. 뭐 좀 해 볼려하면, 막을 내린다.
-별이 우박처럼 쏟아지려나
다른 애들은 넓은 세미나실에 짐을 풀었고, 우리 삼총사는 그 앞 공간에 철우가 가져온 텐트를 쳤다. 여기서도 우리끼리 놀아보련다.
밤하늘엔 별들이 빼곡했다. 머리털 나고 그렇게 꽉~ 별들로 채워진 하늘은 본 적이 없었다.
천천히 좌측으로 움직이는 별도 보였다. 그 건 인공위성일 거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별들이, 다른 별까지 긁어서 우수수 쏟아져 내릴지도 모른다.
무서워서 계속 쳐다볼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면, 별을 피해 어디 숨을 수 있을까.
밝은 별을 보며, 신비한 우주에 감탄하거나, 천지를 만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나는 무서웠다. 성경에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 했지... 성경 볼 땐, 이렇게 많은 별들을 얘기하고 있는 건지 상상도 못 했다.
서울 하늘의 별이라야 충분히 세고도 남았으니까.
-텐트 속은 우리들 세상
현리 하늘은 서울 하늘과 달랐다. 다른 우주였다. 그 후로 현리처럼 빼곡한 별들을 볼 기회가 없었다.
세미나실 앞 텐트 속에 랜턴을 키니 나름 아늑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얘기했다. TV 영화 속 외국 배우 얘기를 했고, 여자애들 얘기도 했다.
"야~이지연, 귀엽지 않냐?" "응?"
교회 애들이니 잘 때 얼굴에 장난을 치지는 않겠지? 아니야. 얼굴에 그림 그려 놓을지도 몰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서로 팔다리를 부딪히며 잤다.
동틀 무렵 몸이 배겨 일어나 보니, 우리 얼굴에 싸인펜 낚서가 돼 있었다. 윗눈썹엔 치약도 칠해져 있었고. 이 놈들에게~ 당하다니. 3학년 임원 녀석들 짓이 분명했다. 내 흰색 러닝셔츠 속옷엔 빨간약도 묻었다.
나는 범인이 텐트 앞에 떨어뜨리고 간 슬리퍼 한쪽을 집어 들고, 잡아내겠다고 씩씩 거렸다.
-다윗과 골리앗
"이 슬리퍼 주인 누구야~"
허거덕~. 이지연이었다. 속옷을 빨아 주겠다고 옷을 벗으란다. 한참 후 내 흰색 러닝셔츠가 빨랫줄에 널렸다. 빨간 얼룩이 아직 묻은 채로.
오후엔 조별 성극 발표회를 했다. 우리 셋은 한 조였고, 연극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다윗과 골리앗'을 하자고 제안했다. 성경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니까.
소품으로 골리앗에게 던질 돌과, 목을 벨 칼이 필요했다. 칼은 긴 나무때기면 됐는데, 돌팔매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됐다. 던지는 시늉만은 재미가 없으니.
얇은 나무 끝에 돌을 끈으로 묶어 활용하기로 했다.
발표회 우리 차례다.
"나는 다윗이다. 너를 오늘 박살 내겠다"
"으하하하 하룻강아지. 가소롭다.
이 골리앗 장군을 뭘로 보고~"
"이거나 받아랏. 에잇"
-장 감독이었습니다
다윗 역할인 영기가 물맷돌을 던졌다. 돌은 슬로우 모션으로 날아갔고,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내가 쥔 나뭇가지 끝엔 다윗이 던진 돌이 묶여 있다. 나는 나뭇가지를 천천히 움직여, 철우 골리앗의 이마에 딱 박았다.
"으윽" 철우 골리앗은 쓰러지고, 영기 다윗은 나무칼을 들어 내리쳤다.
와~ 모두들 박수를 쳤다.
배우는 철우와 영기였다. 그럼 나는 뭐야? 관광버스 게임에서 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니, 여세를 몰아 나를 홍보하자. 지금이 기회다.
나는
온갖 타이틀을 붙여, 나를 포장했다.
"지금까지.
골리앗에 박철우, 다윗에 안영기...
그리고
연출, 장 감독
극본, 장 감독
소품, 장 감독
조명, 장 감독
연기지도에 장 감독.
모두, 장 감독♪이었습니다"
-바로 그, 캠프 퐈이어~
장 감독 애드립을 날리자 관객들은 웃겨 죽겠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이렇게 장 감독으로 데뷔했다. 홍보작전 덕분이었다. 이 연극으로 몇 등했을까? 1등 한 것 같은데, 치매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녁식사 후엔 캠프파이어를 했다. 모닥불이 타오르고 주변이 어두워지니, 낮의 흥분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3학년 회장이 기타 반주를 했다. 다른 임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 녀석이 제일 부러웠다. 그는 생김새도, 옷도 번듯했다. 부회장 이지연과도 매주 보고, 얘기도 하겠지. 그 자리에 내가 있을 수 있다면.
학생들은 둘러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로 데리고 가 밤새 물 먹이네 ♪"
연이어 '연가'를 불렀다. 몇몇 애들은 화음도 넣었다. 불붙은 나무에서 불꽃 덩어리가 몇 개씩 휘이익 흔들리며 위로 올라갔다.
-사랑스런 그대 눈은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
밤이
되니
서늘했다.
한기에
몸이
살짝
떨렸
다.
나는
두 팔을 교차해 보온을 했다.
움츠리고 있는데, 타월이 내 어깨를 덮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지연이가 실눈으로 웃고 있었다. 내가 몸을 떠는 것을 보고, 조금 큰 흰색 목욕타월을 가져온 것이다.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
지연이의 관심과 따뜻함이 나를 덮은 밤이었다. 그 순간 세상은 멈췄고, 대롱대롱 위태하게 달린 별들은 우리를 내려 보았다.
그런데, 뭔가 어색했다. 역할연기가 바뀌었다. 지연이가 추워하고, 내가 웃옷이나 담요를 덮어줘야
하는
데.
뒤집힌 상황이었다.
-사랑은 아프다
필름을 갑자기 뒤로 돌려 편집할 수도 없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남자답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지연이가 먼저 내게 손을 내민 것 맞지? 내게 물어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음~ 일단 본격적으로 그리워하고, 사랑해 볼까? 아니. 이미 사랑은 시작됐지.
다음날 돌아오는 버스 속. 또
'
누가 꿀떡 먹었니
'
를 기대하고 버스에 올랐지만, 아무도 놀이를 하지 않았다. 다들 졸거나 멍하니 있었다.
왼편으론 북한강이 섭섭하게 흘렀다. 나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다. 여기서 내리면, 또 각자의 집으로 가겠지. 우리는 나눠지겠지.
사랑은 밝은 하늘만이 아니다.
사랑은 설레임만도 아니다.
사랑은 섭섭하고, 그립다.
사랑은 애달프다.
아프다.
아프지만 달콤하고
애달퍼서 행복하다.
<
바블껌 - 연가, 석별의 정 >
https://youtu.be/T93hFCS3l8E
바블껌- <연가> <석별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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