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후 내내 누워있었다. 윗눈썹 아래가 쑥 꺼진 채 숨만 쉬었다. 몸은 불쏘시개처럼 말라 불이 잘 붙을 것 같았다. 소리 나게 부는 한강 바람에 뒤로 밀려날 듯, 연약한 몸을 힘겹게 일으키는 엄마를 나는 걱정했다.
한강은 매일 생각없이 흘렀다. 말없는 강물은 해질 무렵까지 반짝였다. 표면은 제 맘대로 흔들리며 빛을 반사했다. 내 마음도 일렁였다. 편치 않았다. 어둠이 두리번거리면 검은 물이 지나가겠지. 강물은 왜 떠내려가는 걸까. 우리 엄마가 죽어도 강물은 여전하겠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그렇게 엄마도 데려갈라나.
1976년 국민학교 4학년 토요일 5시 20분 해 질 녘. 17인치 흑백 tv는 열을 냈다.
실내 안테나는 쇠줄자를 브이자형으로 휘어 놓은 모양으로 tv위에서 버텼다. 안테나 받침대를 이리저리 돌릴 때마다 스테인리스 빛이 반짝였다. 브라운관에선 '뚱뚱이와 홀쭉이'가 나온다.
tv 앞에 아버지 다리를 하고 앉았다. tv에 눈길을 고정했다. 엉덩이를 누런 비닐장판에 달싹 붙이고 천천히 숨을 마시고 뱉었다. 행복한 시간을 위한 준비였다. 그리곤 어떻게 심장과 어깨가 움직였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tv 속에 스스륵 빠져들어, 훌쭉이 뚱뚱이와 함께 눈 속에서 뒹굴었다.
갑자기 엄마가 불렀다. 저녁거리로 중앙시장에서 두부와 콩나물을 사 오란다. tv 보고 가겠다는데 바로 갔다 오란다. 어휴~ 내가.
돈을 받았지만 서있는 몸은 tv를 향했다. 뚱뚱이와 홀쭉이는 북극에서 눈보라와 싸우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물고기를 잡다가 결국 둘 다 물에 풍덩. 짐 실은 썰매까지 모든 장비를 잃어버린 둘은, 물에 젖어 체온을 잃어갔다. 온몸의 수분이 꽁꽁 얼고 있었다. 몸의 온기로 얼음옷을 녹이지 못했다. 동작은 슬로 모션이 됐다. 몸에서 드드드득 얼음결정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생선가게 동태가 됐다. 굳어 뻗뻗했다.
얼어 죽어가는 장면인데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주인공들이니까 부활하겠지. 살아나면 또 무슨 사건이 벌어질까. 여기까지만 보고 몸을 돌렸다.
아픈 엄마가 반찬거리를 사 오라니 어쩔 수 없다. 살아있는 엄마가 밥을 하겠다는데.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나.
뚱뚱이와 홀쭉이 생각으로 연료를 꽉 채웠다. 부앙~ 시동을 걸었다. 두 팔을 좌우로 펴고 손바닥은 땅을 향하고 몸은 왔다리갔다리[1] 날았다. 시장으로 기수를 돌리고 머리칼을 휘날렸다. 두부와 콩나물을 양손에 들고선 북극을 향해 조금 빨리 걸었다. 뚱뚱이와 홀쭉이가 눈발 속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시장에 다녀오니 거의 끝났다. 에고고.
내 기억이 맞을까? 47년 전 보았던 '홀쭉이와 뚱뚱이 소동'에 정말 북극 눈보라 치는 장면이 있을까? 천천히 얼음으로 굳어가는 장면이 있을까?
자료를 찾아봤다. <The Abbott and Costello Show>라는 원작에 북극 north pole 이야기가 있을까. 'The Abbott and Costello North Pole' 등으로 검색했지만 실패했다. 막막했다.몇 달이 지났다. 고민하다 다시 도전~ 'Abbott and Costello tv show list'로 검색하니 Wikipedia 자료에 필름 리스트가 나온다. [2] 눈보라와 관련한 제목이 혹시나 있을까.
38개의 필름 중 30번째 'Lost in Alaska'를 보고 코를 벌름거렸다. 알래스카~ 이 것 북극 맞지? 가능성이 있네. 여기서 딱딱하게 굳은 애버트와 코스텔로를 발견할 수 있을까? 유튜브를 헤집어 듬성듬성 영상을 돌려보았다.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