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아내 정용득 사모님은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를 나온 여의사로 의료선교에 매진하신 분이셨다. 그런 사모님이 응애~ 소리치며 세상에 나오는 나를 받아 주셨다니, 나는 모태로부터 하느님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아버지는 28세였다. 아버지는 젊은 나이인데도, 이촌동교회 새벽예배에 꼬박꼬박 나갔다. 은행으로 출근하기 전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는 열정이 보이니, 이를 기특하게 여긴 이연호 목사님은 아버지에게 새벽예배 설교도 시켰다고 한다.
3. 오줌이 마려우면 어떻게
홍수가 나서, 이촌동 판잣집이 물에 잠겼을 땐, 목사님 댁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도 할 만큼 우리 부모님은 이연호 목사님 내외와 친분이 있었다.
이렇게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독교 분위기 속에서 부모님을 따라 교회 다니며 주로 어른 설교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이촌동장로교회를 떠나, 외할아버지가 다니는 교회로 옮겼고, 그 후에 조용기 목사의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자리 잡았다. 이렇게 해서 이촌동장로교회 이연호 목사님과 정용득 사모님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동네 서부성결교회와 각종 어른 부흥집회를 참석하고 다닌 나는 걸어 다니는 찬송가였다. 찬송가는 귀에 못이 박혔기 때문이었다. 찬송가책이 없어도 당황하지 않았다. 어릴 적 여의도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와 아버지를 통해 주입된 세계관은 내 자아를 형성했다. 뼛속까지 혈액 세포 하나까지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 피로 교체되었다. 불행이었다.
처음 국민학교 통학 시, 며칠간은 엄마가 따라왔지만 곧 혼자 다녔다. 다니면서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생리현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갑자기 오줌이 마려우면 골목으로 쏙 숨어 쉬야~ 하면 되니, 이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아랫배가 참을 수 없이 아플 경우였다.
"배가 아프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나를 받아 줄 거야~" 왼쪽 회색 벽을 보며 이런 말을 내게 했다. 회색 벽엔 나의 잡다한 생각이 걸려 있었다.
4. 교회 다니는 착한 사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거든. 나도 교회 다닌다고 하면, 그 사람들은 나를 잘 대해줄 거야.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이니, 나랑 친척쯤 되리라 생각했다. 그들은 천당에 들어갈 착한 예수님의 사람들이라 여겼다. 아닌 사람들은 미움, 시기, 질투, 분노, 싸나움 등 온갖 죄성이 가득 찬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같은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내 편이고, 반대편을 향한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었다. 내 무의식 속의 색깔은 흑과 백. 나는 흑백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가진 물감 색깔은 두 가지.
'흑과 백, 네 편 내편'만 존재하던 국민학교 시절. 가끔 셋째 고모댁에서, 다른 색깔을 마주할 때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수용하기 어려웠지만, 생각해 볼만한 것들.
5. 비극이겠지
6학년쯤, 고모 딸 고등학생 사촌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응, 공자 석가 마호메트와 함께 4대 성인."
"음? 그 건 좀 이상한데? 아무튼"
"그럼 누나, 이 세상에 예수 안 믿는 지옥 갈 사람들 말이야. 모두 쓸어 버리고 예수 믿는 착한 사람들만 살면 좋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그럼, 이 세상은 비극이겠지" 누나가 말했다.
"비극은 안 좋은 거잖아." 내가 말했다.
비극. 충격적인 말이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죽는 장면을 떠올려 봤다. 이웃들과 내 학교 친구들이 모조리 죽어갔다. 와~ 이게 비극이구나. 착한 예수 믿는 사람들만 사는 이 세상. 그 걸 강제로 만들려면, 비극을 겪어야 되는구나.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을 봐야 하는구나. 내 생각으로 그들의 피를 흘려야 하는 거구나.
내가 더 나쁜 놈일지도 몰라. 단순 무식한 흑백만 있는 내 머리통. 이런 쓰레기 머리를 달고 있다는 사실. 창피스러웠다.
셋째 고모댁은 우리 집과 몇 가지 달랐다.
먼저 콩나물국 맛이 달랐다.
6. 콩나물국과 책들
고모댁 콩나물국은 담백 시원. 우리 집은 약간 둔탁 묵직한 맛의 콩나물국이었다. 왜 다르지? 고모댁은 파와 소금 간으로만 끓였고, 우리 집은 멸치국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귀찮은 멸치를 건져낼 필요 없이 산뜻한 고모댁 콩나물국.
책의 종류도 달랐다.
우리 집엔 성경책, <이야기 성서 전집>, 많은 종류의 '조용기 목사 설교집', <불가능은 없다> 같은 로버트 슐러 목사 책과 노만 빈센트 필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 <대유성 지구의 종말> <휴거> 같은 신앙, 자기 계발 서적들이 주로 있었고, 고모댁엔 <셰익스피어 희곡집>, 나중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이 있었다.
누나가 사는 세계는 나와는 달랐다.
흑백 안경을 끼고 살았던 수십 년의 세월은 끔찍했다. 흑백의 틀 속에 세상을 마구 꾸겨 넣으면 어떻게 될까?
tv 속 영화를 봐도 어릴 적 내가 묻는 것은 단순했다.
7. 적개심은 내면화됐다
"형, 어디가 우리 편이야?"
"누나, 어디가 착한 사람이야?"
아군과 적군. 선인과 악인. 천국과 지옥. 하느님과 사탄.
아군에 대해선 안심. 적군에 대해선 적개심. 불안을 없애려면, 적개심을 불태워야 하고, 분노하고 소리 질러야 한다. 그렇게 적들을 향해 소리치고 몰아내야 한다. 나는 스스로 이렇게 사회화되었다.
살다 보면 적을 설정하고 싸워야 할 때가 있기도 하다. 예수님도 예수님의 뜻을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거룩한 적개심을 가졌으니까.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 개역개정, 마태복음 12:30 >
그렇지만, 나의 적개심은 단세포 흑백논리에 의한 것이어서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적들로 충만한 이 세계는 천국인가 지옥인가? 적들을 우리 편으로 전향시키는 사명만이 의미 있다는 세뇌 속에서, 나는 수십 년을 허우적거렸다.
8. 동성애자들은 지옥 가야 하나?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세상과 담쌓고 살던 삶. 이 걸 삶이라 해야 할까.
나는 흑과 백 외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다른 색깔을 인정하는 순간 절대화된 내 믿음은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그 순간 나는 없어지니까. 흑백의 세계에선 내가 모든 걸 통제하고, 내가 모든 걸 아는 왕이니까.
퀴어축제를 통해 살아있다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그 반대편에서 비를 맞으며 적개심을 불태우는 사람들.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겠지. 나중에 깨달으면 후회하겠지. 바울도 예수를 박해했었지.
예수 믿어도 동성애자들은 지옥 가는 걸까?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로 변신해야 천당 가는 줄에 겨우 설 자격을 얻을까? 우리는 바른 지식에 기초하고 있는 걸까? 선동에 떠밀려 세월을 흘려 떠내려 보내는 중은 아닐까?
한 부류의 성경해석만이 정당한가.
9. 올바른 지식으로 건너가기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 개역개정 로마서 10:2>
'Not based on knowledge.'
바울은 로마서에서, 지식에 기초하지 않는 신앙을 경계한다. 차별금지법 반대와 동성애 혐오는 올바른 지식에 근거한 것일까? 헌법재판관의 한 마디는 팩트일까?
이 세상은 정말 동성애자들이 망치고 있을까?
여러 질문을 해 본다.
각각 자기주장이 있을 것이다. 누구든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논리를 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양쪽의 입장을 들어본다. 다수의 의견은 무엇이고 소수의 주장은 무엇인지.
사실관계를 따져볼 것이다. Fact가 뭐야? 의학서적˙뇌과학서적˙종교서적 등에서 뭐라 하는지.
나는 판사가 되어 나름 판결을 내릴 것이다. 내 나름의 견해를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견해는 지금까지의 편협한 지식을 통한 편견일 뿐이다. 지식이 업데이트되면 내 견해를 바꿀 것이다. 나는 다른 편견을 향해 건너갈 것이다. 새로운 편견의 징검다리를 하나씩 밟을 것이다. 또 다른 편견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