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3학년. 서부성결교회 크리스마스 행사 때 연극을 했다. 전 세계 각국 쌍쌍이 아기 예수를 알현하고, 선물을 드리는 연극이었다. 선생님은 한복이 없는 나에게, 빌려온 한복을 입으라고 하셨다. 같은 학년 얌전한 여학생과 나는 한복을 입고 아기 예수께 선물을 전했다.
이 여자아이와 손잡고 입장하는 연습을 몇 번했지만, 여자 친구 손을 잡는 설렘은 없었다.
당시엔 수요 저녁예배도 참석해야 했기에, TV 만화 볼 시간을 그만큼 빼앗겼다. 주일날은 예배 후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고 크레파스 색연필로 색칠하며 2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림 배경에 해를 그리는 것은 금기시했지만, 해가 떠 있기는 하니 그냥 그렸다. 바탕색은 한쪽으로 칠하다가, 빨리 칠하려고 이쪽저쪽 방향으로 문댔다. 여자 선생님은 색칠이 그게 뭐냐고 나를 야단쳤다.
-수요예배 때 들은 동화
수요예배 때는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교훈적인 얘기를 들려줬고, 얘기가 끝나면 우리는 감사의 노래를 했다.
"아 재미있어라 선생님의 말씀 ♪.../ 우리도 좋은 사람 되겠어요 고맙습니다♬"
우리 외할머니댁 식구들은 강변 성결교회로 출석했고, 작은 외할아버지 댁 식구들은 내가 다니는 서부 성결교회를 다녔다. 서부성결교회 교회학교 선생님들 중엔 작은 외할아버지 댁 이모 두 명도 있었다.
강변성결교회 교사인 경미 이모가 서부성결교회 수요예배에 일일교사로 초청을 받은 날, 이모는 동화를 들려줬다. 경미 이모는 화상으로 흉한 얼굴을 한 엄마를 부끄럽게 여겼던 딸 얘기를 들려줬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애기였던 자기를 살리다 화상 입은 사실을 딸이 알게 된 후,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모의 동화가 끝나고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아 재미있어라♪ 선생님의 말씀 ♬"
-블록담
이모들이 선생님이라 어깨를 펴고 교회를 다녔다. 방학 때마다 읽었던 6권짜리 중학생용 <이야기성서전집> 때문에 성경 내용을 꿰고 있었으니, 교회생활은 자신감으로 더욱 충만했다.
서부성결교회는 3일에 한 번씩 갔지만, 학교는 토요일까지 6일을 갔다. 학교는, 내가 사랑했던 여신이 있는, 좀 더 넓은 세계였다.
1976년 4학년이다. 집에서 나와 학교로 향했다. 7분을 걸어가면 왼쪽 길가에 12m 길이의 블록담이 나타났다. 그 안쪽은 200여 평의 공터였다.[2] 거친 모래가 꺼끌 거리는 블록담은 약해 빠져 못으로 쓱 쓸면서 지나가면, 굵은 모래가 아지랑이 먼지와 함께 몇 알씩 떨어졌다.
왼쪽은 강변북로 넘어 한강이었고, 서쪽 강바람을 블록담이 막아내고 있었다. 담은 1.6m로 어른 키만 했고, 내 키보다 35cm가량 높았다.[2] 누군가 장난쳤는지 군데군데 뚫린 곳도 보였다.
-블록담은 거칠었다
블록 사이사이엔 시멘트가 접착제로 들어가 있었고, 색칠 같은 것이라곤 없었다. 시멘트로 마감하지 않은 블록담은 거칠 거칠했다.
그런 회색 담을 지나는 것은 즐겁지 않았다. 회색 빛 세계는 지루했고 침울했다. 그런 길은 거친 남자들만의 폭력적 세계로 느껴졌다. 빨강 파랑 노랑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새로운 색의 길이었다면 위로가 되었겠지만.
색깔이 부족한 곳은 군대처럼 끔찍하고, 상투적인 말들만 들리는 세상은 늘 지루하다. 표정 없이 지나가는 얼굴들, 단조로운 맛, 단순한 언어들.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그 때나 지금이나 끔찍하다.
이런 일상에 활력을 주는 것은 tv 만화영화와 외화들이었다. 항상 괴롭히는 악당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주인공들. 교회는 그런 시간을 빼앗는 듯했다.
-재미있는 놀이들
재미없는 세계에서는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가야 한다.
형누나를 따라다니며
옛날 얘기를 듣자.
땅에서 주운 철밴드로 칼을 만들고,
키 높이 풀을 베면서 탐험을 하자.
강변북로 건너
한강으로 달려가자.
흙이 있는 땅을 찾아 땅따먹기, 구슬치기, 달력으로 만든 딱지치기, 납작 돌로 망까기 등을 하며 재미를 찾아다녀야지~ 나는 비행기 그림, 승용차 그림, 선풍기 그림 등을 그리고, 싸구려 조립식 완구도 만들며 재미를 찾아갔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사귄 친구네서, 조금 비싼 조립식 완구를 보는 재미를 발견했다. 그 친구 집엔 F-5 프리덤 파이터 전투기, F-4E 팬텀 전폭기, 갈색 페인트 칠된 1/35 축척 스케일의 롬멜 탱크 등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조립식 완구와 그림
커다란 비행기 탱크 등을 작은 집안에 전시한 그 친구네는 자주 가보고 싶었다. 친구 집은 그 블록담 옆 시범아파트 5층이었다. 가끔 학교에 갔다가 그 친구 집에 들르면, 새로운 무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 녀석은 그림도 잘 그렸다. 사선으로 나는 비행기를 그려도, 두 날개가 거의 일직선이 되게 그렸다. 비행기 그림은 몸통을 30cm 자가 무심히 뚫고 지나 중간에 멈춘 듯했다. 내 그림은 그게 아니었다. 내 비행기 그림은 언제나 왼쪽을 향했고, 두 날개가 뒤쪽으로 꺾여 전체가 유선형이었다. 비교해 보니 친구 그림이 훨씬 멋있고 실감 났다.
4학년 4월로 접어들었다. 4월은 잔인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4월이 되면 언제나 힘들었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몸 상태가 안 좋았다. 봄엔 왜 이렇게 몸살이 잦을까?
-4월은 잔인한 달
몸이 안 좋은 건 대학교에 가서나 깨달았다. 내겐 연중 4월이 가장 춥다. 내복을 벗어던지고 옷을 가볍게 입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한 걸음 물러나 온도가 내려가면, 보온 모드로 옷을 다시 바꿔줘야 하는데, 얇은 봄 옷을 그대로 걸치고 있었으니. 그런 날엔 몸에 한기가 말없이 파고들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TS. 엘리엇은 말했지. 그는 친구 베르드날을 전쟁터에서 잃었고, 그것이 4월이었단다.[1] 상실의 슬픔이 어디 4월뿐인가. 인류에겐 365일이 상실의 날이 될 수 있다.
4월은 황사로 숨쉬기도 어려웠고, 강변북로에 접한 서부이촌동엔 강바람도 거셌다.
76년 4학년 4월 23일. 그날은 서울 아침 5.5도로 얇은 봄옷으로 견디기에 몹시 추웠다. 사물 식별 최대 거리인 시정이 평소 15km에서 5km로 줄어 있었다. 황사 때문이었다.[2] 이날 황사는 10시 방향에서 몰아치는 서북서풍이 몰고 왔다.
-며칠째 서북서풍이었다
서울의 풍향은, 겨울엔 북서풍이 주로 불고, 봄엔 서북서풍과 서풍이 주로 분다. 겨울 봄에 부는 대륙의 바람은 건조하고, 먼지가 많다.
4월 23일. 중국 산둥반도에서 갑자기 차가운 고기압이 몸집을 불려 떼 지어 몰아닥쳤다. 뚝 떨어진 아침 온도, 황사로 뿌연 앞길. 한강을 건너오는 서북서풍은 이른 아침부터 초속 11m로 불었다.[2] 나무 전체와 전깃줄이 흔들리고, 고속 차량이 강풍에 밀려가는 퐁속이라 조심해야 했다.
이런 날씨에 내복도 안 입은 나는 잔인한 4월에 몸을 움츠렸고, 눈에 들어간 이물질을 눈물로 씻기 위해 가끔 눈을 부릅떠 눈물을 흘려야 했다.
서북서풍은 며칠째 계속 불었고, 블록담은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그 앞길에선 잠시 바람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학교를 가야 하니 시범아파트 쪽으로 발걸음을 계속 이어가야 했다.
-여신이 있는 세상
원효대교 앞에서 우회전. 바람 부는 방향으로 쭈욱 내려갔다. 이 번엔 뒤에서 바람이 나를 밀었고, 귀와 얼굴 앞에서 휘이잉 와류를 만들었다.
학교에 당도하면 경림이가 있겠지. 견우와 직녀처럼 떨어져 있었지만 둘이 따로 만나는 시간은 없었다. 먼발치에서 그리워할 뿐. 그녀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경림이의 약간 날렵한 코, 맑고 반짝이는 눈, 찰랑이는 머릿결, 모나리자 미소. 내 귀는 그녀의 소리에 주파수를 맞췄고, 눈은 자주 빛나는 여신을 향했다. 역시 교회보다 학교가 좋다. 여신이 사는 곳. 여기가 어딘가. 가끔 그녀가 나를 보고 미소 짓는 것 같으면, 기분이 째졌다.
-블록담은 기어이
오후 수업이 끝나고, 친구네 시범아파트로 향했다. 바람의 힘자랑은 더욱 거셌고, 이젠 바람의 근원을 뚫어야 했다. 아침보다 올라간 온도에 견딜 만 해졌다. 나는 맞바람에 싸우듯 걸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돌진.
친구네 선 새롭게 전시된 M60 탱크를 보았다. 탱크에 머리를 내민 헬멧 쓴 병사의 살갗엔 살색이 칠해져 있었다. 그 친구 아버지도 있어 큰 소리로 떠들진 않았다. 한강을 향한 마루 창엔 바람이 더욱 성난 어깨를 부딪혔고, 창문을 뜯어 던질 듯 갑자기 마구 흔들어댔다.
어느덧 시간이 4시를 넘어, 작별하고 시범아파트 5층 계단을 내려왔다.
이제 한강과 강변북로는 오른쪽에 있고, 바람은 오른쪽에서 불고 있었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블록담 중간이 무너져 있었다. 이날 순간 최대풍속은 아침에 2배인 20.8m였으니,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너진 담을 지나려는데, 핏자국이 보였다.
-인생은 비극과 행복이다
"누가 다쳤구나. 아팠겠네."
다음날 블록담 사고 소식을 들었다.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같이 연극했던 그 여자애 오빠가 담 붕괴로 오후 3시 10분경 사고로 죽었고, 다른 세 아이는 살았다.[2] 그 애 오빠는 5학년, 우리 집과 같은 시영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후 교회에서 그 애를 보았지만, 언제나처럼 표정도 말도 없었다.
그 사건은 <이야기성서> 속 욥 이야기와 닮았다. 욥기 속에선 하나님의 허락하에 사탄이 큰 바람을 일으켜 욥의 7남 3녀를 집이 무너져 죽게 만들었지.
비극은 누구라해서 비껴가지 않는다. 어떤 인생이라도 비극과 행복 속에 던져진다.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자 대답은 없다. 그냥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서로 위로만 할 뿐. 비극은 더 나은 행복에 도달키 위한 발판이라 자위하면서 사는 게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