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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Sep 26. 2022

경의선, 실명하면 코레일에서  책임지실 거죠?

경의선이 전철되던 날

-전철, 가방추락 사건.


  "아야~ 이거 뭐예요?"

  "어?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떤 사람이 전철 선반에 가방을 올렸는데, 선반이 없었다. 이 소동으로 앉아 있던 사람 안경이 조금 벗겨졌다. 얼굴이나 눈에 상처가 날 뻔한 위험한 순간이었다.


  비슷한 가방 추락사건이 퇴근 시에도 또 일어났다. 그날은 2009년 7월 1일 복선화 된 경의선이 기차에서 전철로 거듭난 첫날이었다.


  이 날 이전, 경의선은 전철이 아닌 디젤열차가 끄는 철도였다. 상행선 하행선이 기찻길 한 줄로 다녀야 하는 단선이었다.


  2009년 3월 나는 경의선(문산~서울)을 이용해 서울로 출근했다. 상행선과 하행선은 중간 역에서 서로 비켜 주면서 운행해야 해서, 배차 간격은 평소엔 1시간, 출퇴근 시간엔 20-30분이었다.


  전철이 아니었고, 객차를 디젤동차가 앞뒤에서 끄는 방식이었다. 이 열차는 도시통근형 디젤 액압 동차(都市通勤形 Diesel液壓動車) 또는 CDC( Commuter Diesel Car ) 통근열차라고도 불렸다.


-기차 시절, 엉성한 선반이 있었다

  열차엔 화장실이 달린 객실도 있었고, 실내엔 2인용 좌석 또는 긴 의자가 설치돼 있었다. 좌석 색깔은 자주색이었고 조금 꺼져 있었다. 등받이는 머리 뒷부분까지 기댈 수 있게 높아, 졸기에 알맞았다.


  2인용 좌석은 전환식이어서 4명이 마주 볼 수도 있었지만, 출퇴근 시간엔 모두 열차 진행방향을 향했다. 붐비는 시간엔 서 있는 승객들이 서로 등, 어깨를 맞댔다.


  객실엔 내 키보다 높은 위치에 선반이 달려 있었다. 봉 몇 개를 가로로 길게 박아 만든 엉성한 선반이었다. 나는 자리가 나지 않으면, 서서 책이나 신문을 보았다. 가방은 선반 위에 올려놓았고, 내릴 때 잊지 않도록 몇 번씩 다짐했다.


  십 수년 전 전철 선반에 자료를 놓고 내려 혼쭐 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다행히도 분실물 센터에서 찾기는 했지만,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기차 시절, 매연이 들어왔다

  종착지 서울역에 도착하면, 간단한 청소가 시작되고, 승무원이 객실 내 2인 의자 등받이 모두를 반대로 밀어 방향을 바꿔 주면서 지나갔다. 열차 맨 앞이 맨 뒤가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열차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고, 방금 도착한 열차는 1시간 후에 문산으로 뒤쫓아 갈 것이다.


  열차 밖에선 각 객차마다 표지판 교체 작업이 일어났다. 역무원이 지나가면서 열차 옆구리에 꽂혔던 '서울행' 표지판을 뽑았다. 그리곤 뒤로 돌려 '문산행'이란 글자가 보이도록 돌려 꼽았다.


  퇴근 시간에는 서울역(서부역)에 출발 20분 전에는 도착해야 앉아 갈 수 있었다.


  여름엔 선풍기와 에어컨이 작동되었지만 시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작은 윗 창문을 열어, 안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바깥공기 바람을 쐬었다. 열차 엔진이 거르렁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맨 앞뒤 칸에선 엔진 진동이 발과 등을 마구 진동시켰다.


  열차가 달리면, 골치 아픈 매연 냄새가 열린 창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전철 개통 첫날, 거짓 선반에 당하다

  가방 추락사건이 있던, 2009년  7월 1일(수)에 경의선은 단선에서 복선으로, 디젤열차에서 전동열차로 바뀌었다. 드디어 경의선이 전철이 된 것이다. 1시간 간격이던 운행이 10분 간격으로 줄었고, 출퇴근 시간엔 좀 더 촘촘했다.


  전철로 변한 첫날, 나는 버릇대로 가방을 선반에 올리려 했다. 그런데 선반 가운데 수평봉들이 안보였다. 선반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들고 서있다가 그냥 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


  다른 승객들도 습관대로 가방을 선반에 올려놓았다. 실제로 올려놓았으니, 앉은 승객 위로 가방이 곧바로 추락해 버린 것이었다.


  서울시내 다른 전철 노선에는 선반이 있고, 이전 경의선 통근열차에도 선반이 있었다. 새로 개통한 경의선 전철 객실에도 선반 맨 앞 굵은 수평봉은 그대로 있었다. 그 수평봉 뒤로 몇 개의 봉들이 열을 맞춰 늘어서 있어야 선반이 되는데, 그 뒷 봉들이 없었다.


  새로 생긴 경의선에 있는 것은, 선반 앞 봉만 있고 바닥이 뚫린 거짓 선반이었다.


-전철 초기, 환기도 필요했다

  문제는 선반에만 있지 않았다. 실내 공기의 질이 탁했다.


  복선화로 전철이 된 후, 승객들로 붐비자, 공기가 답답해 숨쉬기가 불편했다. 출근 시간엔 실내가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흔들려도 손잡이를 잡을 수가 없었다. 실내 공기는 혼탁하고 온도가 올라가 텁텁했다. 유리창은 고정식이라 열어 환기할 수도 없었다.


  출근 시간이지만 선풍기만 돌았다. 차체의 달궈진 온도, 체온, 신체를 돌아 나온 이산화탄소 등은 선풍기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짐이 없는 사람은 선반이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승객들은 한여름이 아니니 에어컨을 켜 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탁한 공기도 그냥 참고 견뎠다.


  반면 나는 필요성을 느꼈고, 코레일에 건의사항 메일을 썼다.

 

-전철 초기, 선반을 설치해 주세요

  "경의선 실내에 선반이 없습니다. 이는 예산 절약 때문일 수도 있고, 분실물 방지책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 실내에는 선반 앞 봉이 장착돼 있어, 승객들이 그 위로 물건을 올립니다. 선반이 있는 줄 알고  올립니다. 책가방을 올렸다가, 안경 쓴 사람 위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실명 사고라도 나면, 코레일에서 책임지실 건지요? 다른 전철이나 이전 경의선에는 모두 선반이 있었습니다. 사고를 방지하고 승객의 편의를 위해 선반을 설치해 주십시오."


  더불어 공기질 개선에 대해서도 추가했다.


 "계절과 상관없이 차량 내부 온도조절과 환기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많아지니 환기가 중요합니다.


  선풍기만 작동하면, 탁한 실내공기를 순환시킬 뿐 외부 공기 유입이 없어, 환기는 시킬 수 없습니다. 실내 온도를 자동으로 체크하고, 사람이 많을 때는 한여름이 아니더라도, 외기 순환으로 에어컨을 가동해 주십시오."


-전철 초기, 코레일에서 답이 왔다

  메일을 보내고 코레일 측의 답장을 받았다. 경의선 복선화 후 3일 째였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의 의견이 접수되어 현재 광역철도사업본부에서 처리 중에 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답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7.3 14:42)


  빨리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개선되었다. 먼저 선반 앞 봉에는 '선반이 설치되지 않았으니 주의하세요'라는 스티커가 일단 붙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선반이 설치됐다.


  출퇴근 때 에어컨도 잘 틀어준다. 이젠 너무 추워서 문제다. 사람들마다 덥다는 사람, 춥다는 사람이 팽팽해 온도조절은 아직도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개선된 전철, 생각없는 나

  선반은 설치되었지만, 사용자인 나도 주의해야 했다.


  눈이 펑펑 오던 날, 아침 전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정신없이 눈길을 뛰던 날.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객실에 들어섰다. 뛰는 심장을 안정화시키면서, 이젠 설치돼 있는 선반 위에 가방을 아무 생각 없이 올려놓았다.


  잠시 후 앉은 승객 위로 가방에 묻었던 눈이 녹아 떨어졌다. 나는 허리를 굽히며 죄송하다는 말을 몇 차례나 하며 손수건으로 닦아 드렸다.


  봉변을 당한 사람은 인상을 썼다. 나는 세탁비라도 전해 드리겠다고 머리를 조아렸지만, 그는 주위를 의식했는지  귀찮았는지, 그냥 보던 신문에 얼굴을 파묻었다. 마음 좋은 승객을 만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 이후 눈비 오는 날, 전철 선반에는 절대로 가방을 올리지 않는다.



<참고자료>


[1] CDC 디젤동차 : 都市通勤形 Diesel 液壓動車, 나무위키


[2] 경의선 통근열차 추억속으로, 네이버 블로그, 역쟁이, 2014.4.12


[3] 코레일 경의선 전동차 (2009.8.1), 네이버 블로그, 한우진의 교통평론

  위 [3]번 블로그에서도, 경의선에 선반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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