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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의 침묵 세리머니가 주는 울림

by 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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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7라운드 토트넘 대 풀럼 전에 선발 출전한 손흥민 선수가 골대를 빗맞히고 허탈한 웃음을 짓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직전 시즌 동양인 최초 ‘EPL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쥔 공격수가 7경기 연속 '노 골'을 기록하면서 하락세를 타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는 상황.


원래 이쪽 바닥이 선수가 조금만 못해도 비난 일색이 되곤 하지만 이번에 손흥민 선수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결은 확실히 달랐다. 아무래도 직전 시즌 성적이 너무 좋았고, 또한 손흥민 선수의 나이가 축구선수로서는 전성기를 지날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슬로우 스타터 체질인 손흥민 선수가 매 라운드마다 몸을 끌어올리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결정적으로 공격수에게 공격 스코어가 없었다. 더구나 선수 개인에게 더 가혹한 상황이었던 건, 어쨌거나 팀은 계속해서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체적인 업무가 잘 굴러가는데 나 혼자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주변의 시선이 모이는 법이다. 누군가 애써서 비난하지 않아도 손흥민 선수가 느꼈을 무게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팀의 멘토인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에도 손흥민 선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았지만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그 역시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팀을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고도 하루아침에 경질된 마우리시노 포체티노 감독의 경우처럼, 프로 세계에서는 너무할 정도로 구체적인 숫자가 중요하다.


비난이 들끓던 7라운드가 지나고 이내 8라운드, 토트넘은 위기에 빠진 강호 레스터 시티와 맞붙게 됐다. 많은 사람이 손흥민 선수 대신 폼이 좋은 자원인 히살리송이나 데얀 클루셉스키를 선발로 내세워야 한다며 열을 올렸고, 정반대로 팀의 간판이나 상징 같은 선수를 선발에서 빼면 안 된다는 견해도 나와 팽팽하게 맞섰다.


결과적으로 손흥민 선수는 백의종군하게 됐다. 그가 처음 분데스리가에서 토트넘으로 적을 옮겼을 때, 같은 포지션인 에릭 라멜라와 주전 경쟁을 하던 때처럼 벤치에 앉아 경기를 시작했다. 그가 벤치에 앉아 경기를 시작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마침내 위대한 선수의 내리막이 시작됐다며 조롱하는 이들과, 응원하는 이들, 그리고 복잡한 심정으로 이를 지켜보는 팬들까지 온갖 사람들이 뒤섞여 경기를 지켜봤다.


예상대로 후반전에 교체 출전한 손흥민 선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0분 남짓. 뭔가를 해내기에는 빠듯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촉박한 시간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로테이션도 아니었고, 앞으로 그의 거취를 정하게 될지도 모를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예상을 깨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상대로, 몇 번의 공수 끝에 손흥민 선수는 결국 자기 장기를 살린 기가 막힌 감아차기로 멋진 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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