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온라인 소개 사이트로 아내를 만났습니다. 프로필에 이렇게 적었죠. '눈이 하나뿐인 의대생으로 사회성이 떨어지고 학자금 대출이 14만 5천 달러나 있다.' 아내는 제게 메시지를 보냈죠. '제가 찾던 남자네요'라고요. 내 솔직함이 맘에 들었던 겁니다."-영화 <빅 쇼트>, 결말부 마이클 버리의 독백
영화 <빅 쇼트>에서 투자자들에게 온갖 욕과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막대한 수익을 올린 마이클 버리는 펀드를 접으면서 자기 얘기를 담은 메일을 투자자들에게 보낸다. 공부하고, 분석하고, 셈하고, 예측하는 일 말곤 다른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그가 어떻게 아내를 만났는지 말이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큰 수익을 내는 안목을 가졌던 만큼 마이클 버리는 그 자신의 미래까지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을 만들고 싶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 하지만 그의 아내는 솔직하게 자기 사정을 털어놓은 마이클 버리에게 끌려 결혼까지 하게 된다.
삐딱한 마음을 먹고 바라보면 그래도 '의대생'이니까 결혼한 게 아니냐 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마이클 버리의 고백에 들어있는 핵심은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걸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좋은 관계는 서로 도울 수 있을 때 더 빛을 발한다. 마이클 버리의 아내는 다른 건 몰라도 이 남자가 자기 잘난 맛에 살면서 아내의 도움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며 무기력에 빠뜨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봤을 것이다.
아내의 예상대로 마이클 버리는 그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뭔지 정확히 인지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아내에게 기댄다. 극의 초반부에 면접을 보러 온 신입 직원 앞에서도 '아내가 이렇게 하라고 하더라'며 사교성이 부족한 자신의 성향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도움을 받는 것에 충분한 가치를 부여한다. 마이클 버리가 억만장자가 되었어도 그의 아내는 여전히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고, 아내는 처음부터 이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다.
여기서 마이클 버리와 그의 아내가 맺은 건 '관계'가 맞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기댄 모양을 나타내는 '사람 人'자처럼, 관계는 사람을 보고 맺는다. 하지만 때로 사람들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떤 면면만을 취해서 가지고 싶은 욕구, '소유'하고 싶어 한다.
"민 대위 지금 우리 딸이랑 같이 있다. 그럼 나랑 우리 딸만이라도 따로 부탁하자. 민 대위 내가 다음에 확실한 건 하나 추천해줄게." 이기적인 캐릭터인 석우는 결국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캐릭터지만 어쨌든 시종일관 '밥맛'으로 묘사된다.
영화 <부산행>에는 주인공 석우가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KTX 열차에 갇히자 대전역에 도착하기 직전에 휴대폰을 꺼내 '민 대위'라는 인물에게 그 자신과 딸만 방역에서 제외시켜줄 것을 따로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간절한 심정으로 부탁은 하고 있지만 실상 그의 휴대폰에 저장된 민대위의 위치는 '개미들' 칸이다.
업신여기면서도 막상 필요한 때가 되니 찾는 석우나, 안 된다고 하면서도 석우가 '좋은 건수' 추천한다고 하니 틈새를 만들어주는 민 대위나, 서로가 서로에 대해 관계를 맺는다기보다는 소유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석우는 군에서의 역할로 민 대위를 소유하고, 민 대위는 자산을 불릴 도구로서 석우를 소유한다. 과연 이 두 사람이 직장이나 어떤 혜택을 벗어던지고서도 그 '관계'가 유지될까. 그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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