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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기란 뭘까

by 민경민

한 달 전쯤, 배우를 꿈꾸고 있는 친구가 독립 영화에 출연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소극장에서 영화제를 관람하고 왔다. 보통의 저예산 영화들이 모두 겪듯 열악한 환경에서 최소한의 완결성을 마무리지으려는 노력이 돋보이긴 했다만, 대중에게 선보이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비판보다는 응원의 마음으로 단점을 최대한 배제하고 가능성에 포커스를 둔 채로 GV시간에 질문을 던졌다. 배우들끼리 합심해서 만든 작품이니만큼 처음부터 배우들의 연기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지켜보기도 했고 말이다.


영화에 관해서 몇 차례 질문이 오간 뒤에 생애 처음으로 배우 이름을 걸고 무대로 올라온 친구에게 내가 던진 질문은 그것이었다.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냐고. 당장은 극의 주제나 분위기에 휩쓸려 '따뜻한 인간을 표현하고 싶다'고는 했으나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것을 한참이나 생각했다고 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어떤 연기를 한다는 건 우리가 가볍게 보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니까.


배우가 감독이 시키는 대로 연기를 하면 그만이지, 무슨 연기를 하겠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배우도 스크린 안에서 행위예술을 하는 예술가라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배우들 역시 저 나름의 철학을 갖고 연기를 하고 있는 중이며,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면 일관된 성격이 도드라진다는 것 역시 금방 눈치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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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의 만섭역을 연기하는 송강호(위)와 <신세계>의 강 과장 역을 연기하는 최민식(아래)


송강호를 예로 들어보자. 송강호가 극중에서 맡는 역은 대체로 불의한 소시민에서 양심의 가치를 깨닫는 인간 캐릭터다.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에서 맡은 두만과 강두도 인생 대충 사는 별 볼일 없는 인간에서 중요한 사건 속으로 자신을 투신하는 인물이다. 배우 송강호의 연기를 집대성한 결정적인 작품은 <관상>(2013)과 <택시운전사>(2017)인데, 두 작품 모두 일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인공이 대의를 위해 투쟁하는 결말로 나아가며 배우는 자신의 순박한 얼굴에 정의와 같이 무거운 가치를 씌우는 데 완벽히 성공한다.


그렇다면 최민식은 어떨까. 최민식이 주로 연기하는 캐릭터는 내면에 비밀이 많은 남자다. 위장공작원으로 시작한 <쉬리>(1999)에서부터 최근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까지 본래의 신분을 속이고 목표나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들이 주로 그의 얼굴 위에 펼쳐진다. 최민식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 <신세계>(2013)의 강 과장도 조직에 침투한 잠입경찰을 위장시키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인물이며, <악마를 보았다>(2010)의 살인마 장경철 역시 추악한 성욕과 살인 욕구를 위해 평범을 가장하는 이중 페르소나의 인물로 그려진다.


배우들은 자신의 주특기라고 할 만한 연기 능력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대사 아래 숨은 의미, 서브텍스트와 뉘앙스라고도 하는 그 기술을 자기 색깔에 맞게 표현하며 타인이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갈고닦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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