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말도 안 되는 줄 알지만 '내 모든 기억을 가지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같은 공상 말이다. 이건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종종 해봤던 생각일 텐데, 단순히 '다음 생에는 재벌집 도련님으로 태어나야지'같은 농담에서부터 어떤 실수를 만회하거나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 때에도 사람들은 '인생 2회차'를 꿈꾼다.
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의 윤현우처럼 뭔가를 준비할 새도 없이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버린다면 생각보다 난처한 상황에 놓일지도 모르겠다. 심리테스트에서 보는 '5초 안에 선택하시오'라는 문답을 본 것처럼 지금 모니터로 이 글을 읽는 순간 과거로 갔다고 생각해 보자.
당장 생각할 수 있는 로또 번호도 평소에 외우고 다니질 않으니 기억이 날 리가 없다. 그렇다고 번호 하나를 외워서 언제 당첨될지 모를 그날을 위해 한 번호를 매주 열 개, 스무 개씩 중복으로 찍으면서 기다리는 것도 애초에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수능 같은 시험을 다시 보려고 해도 준비 없이 갑자기 과거로 간 까닭에 답안지는커녕 문제가 뭐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다른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해도 우리가 살면서 보아왔던 꽤 유용한 정보들은 흐릿한 안갯속 실루엣처럼 잔상만을 남기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결정적인 해답을 알고 있다. 2008년 무렵이 되면 가용한 컴퓨터를 모두 동원해 사토시 나카모토의 전설적인 논문 한 편을 기다리면 된다. 정확한 시기를 특정할 수 없더라도 매년 비트코인을 검색만 해도 된다. 당시의 가정용 컴퓨터로도 비트코인 수천 개를 캐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대략적인 코인 시세를 알고 매도와 매수를 적절히 반복하며 격상기에 수천 개의 비트코인을 보유만 하고 있어도 우리나라에서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1980년대 후반의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 20년 뒤에 일어날 그 일을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문제고, 한 가지 사건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기엔 기껏 돌아가서 붙잡은 기회를 수십 년 동안 허송세월하며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 '상상'을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면 곧 '현실'이 되고, 이게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성공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임을 쉬이 알게 된다. 단지 기억을 갖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으로 엄청난 성공을 이룰 수 있을까? 사기적인 수준의 스타팅 포인트를 갖고 시작한다고 해도 큰 성공을 이루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진도준으로 환생한 윤현우는 시작부터 진양철 회장과 마주친다
순양그룹의 충직한 신하로 오너 일가의 궂은 일을 해결했던 윤현우 팀장이 단 한 번의 오판으로 배신을 당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 순양그룹의 기록되지 않은 막내 손자 진도준으로 다시 환생할 때까지, 그의 성공가도에 가장 필요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정보'다.
윤현우는 심지어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재벌집 손자'로 환생하기에 이르는데, 피도 눈물도 없는 순양그룹의 회장 진양철 앞에서 '대통령 맞추기'로 환심을 사고 보상으로 분당 땅 5만 평을 받기까지 마중물이 될 자산을 만드는 데는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만약 우리가 진양철 회장의 막내손자로 준비도 없이 환생했다가는 윤현우가 어린 진도준의 몸으로 벌였던 '과감한 딜'을 할 수 없을 게 뻔하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재벌집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동선 등도 잘 알지 못하니 환자 취급을 당하며 당시 감옥이나 다름없었던 정신병원에 감금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마치 영화 <암살>에서 죽은 언니의 저택에 대신 들어간 안옥윤처럼 말이다.
오너 일가의 온갖 잡일과 어두운 속사정까지 살피는 윤현우 팀장. 덕분에 그는 그 누구보다 순양가 사람들과 재벌 일가의 경쟁관계를 잘 알게 된다
하지만 윤현우는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순양가 VIP들의 최일선에서 수발을 드는 사람으로 변기까지 갈아치우는 총무 역할까지 충실히 해냈기 때문에 정심재 내부의 구조라던지, 만나는 사람들의 호칭이나 이름까지 타인의 몸에 깃들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소화해낼 수 있었다. 이처럼 사람의 행동거지를 결정하는 '생활 정보'는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유연한 대처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고된 일이었지만 윤현우 팀장이 VIP가족들의 알레르기 정보까지 외운 덕분에 그는 진도준으로써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무난히 재벌집 자제로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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