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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주목해야 할 그 사람의 모습

by 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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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진열대에서 나를 붙잡은 녀석. 요즘 가격은 어떤가 했더니 단돈 430,000원(할인가)


어릴 때 시장통 문구점에서 어머니에게 하얀색 '슈퍼 그랑죠'를 사달라고 울며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변신이 가능한 그 로봇은 문구점에 진열된 로봇들 사이에서도 가장 위에, 당장 바닥에 별 모양 마법진을 그리면 튀어나올 것 같은 생생한 모습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정확한 가격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그곳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었을 것이다. 장난감코너에서 부모라면 누구나 겪을만 한 그 상황에서, 어머니는 다른 변신합체 로봇을 사주는 걸로 갈음하려고 했으나 집에 가서도 나는 그 슈퍼 그랑죠를 얻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유행하는 만화를 보지 못한 어른들 생각엔 '로보트 모양에 변신만 되면 그만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그랑죠냐', '아니냐'의 차이는 하늘과 별 차이인 것과 같았다. 마치 어른이 되어서 슈퍼카와 슈퍼카를 어설프게 흉내 낸 튜닝카가 완전히 다른 걸 아는 것처럼, 명품 로고만 흉내 낸 가방과 명품샵에서 산 가방이 완전히 다른 걸 아는 것처럼, 그랑죠와 그랑죠가 아닌 변신로봇의 차이는 분명했다.


갖고 싶은 걸 갖겠다는 욕망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아동기에는 친구들끼리 자신이 어떤 장난감을 가졌는지가 중요했다. 누가 '변신 블랙옥스'를 갖고 있느냐, 누가 '1등 딱지'를 소유하고 있느냐, 그런 것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사는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실제로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왕딱지나 유행하는 만화의 주인공 로봇을 들고 다니는 아이는 꽤 많은 관심을 받곤 했다. 적어도 어떤 놀이나 그 만화의 유행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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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에는 이성 친구에게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교복을 입고 본격적인 단체 생활을 시작하는 중고교 무렵이 되면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지는 않는다. 학창 시절에 부러움을 사는 요소들은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대개 한 인간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은데, 흔히 '짱'이나 '통'으로 불리는 학년의 싸움왕들이 가진 위세나 무력이 부러움이 대상이 되기도 했고, 반대편에서는 전교 1등이나 공부 잘하는 무리의 학습 아우라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운동부의 운동 잘하는 친구도 부러움의 대상이 됐고, 게임 잘하는 친구도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대학생 때는 연애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외모를 뽐내거나 예쁘고 잘생긴 것에 혹하고, 졸업반은 토익 점수나 어학연수 같은 스펙과 경험에 눈독을 들이는데, 이제 친구들이 하나둘씩 취업을 해서 직장을 갖게 되면 너도나도 첫차를 끌고 오기 시작한다.


생애주기의 한 부분에 도달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것들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각양각색의 자랑거리들을 들고 온다. 당연하다. 응당 그 나잇대에 흔히들 자랑할 만한 것들이거나, 마땅히 칭찬해 줄 만한 것들이라면 부러워도 해주고, 정말 대단하다며 치켜세울 줄도 알아야 어른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격려와 인정이 사람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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