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지는 사람

by 민경민

*2023.11.02 작성


19.PNG?type=w800


"살기 빡셌겠네 누나도."

"별루. 편하던데. 아버지라는 사람을 내가 맘대로 상상할 수 있으니까. 진짜 힘든 게 뭔 줄 알아?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이 아냐. 분명히 있었는데 없어지는 사람들이야. 그게 사람을 돌게 만들지."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를 보다가 문득, 이두나가 송곳같이 쏘는 말들 중에 한 가지가 와닿았다. '원래 없었던 사람보다 있었다가 사라지는 사람이 더 미치게 만든다'는 말. 원준의 앞에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랑 잘 지내는 방법 좀 알려주라'며 진심으로 부럽다고 하는 이두나에게 결별이란 아마 다음 류근 시인의 시와 같았을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거의 언제나
일방적으로 버림받는 존재였다
내가 미처 준비하기 전에
결별의 1초후를 예비하기 전에
다들 떠나버렸다

류근, <極地> 중


대저 어물쩍 흩어지는 관계는 꼭 말미를 남겨두지 않는다. 뭔가를 변명하려 하거나 내 잘못이 아닌 걸 한 번 더 따지고 들고 싶어도 그게 마지막이었다는 걸 항상 모든 것이 끝난 뒤에 느끼고 만다. 두나가 말하는 '잘 지내는 법'이란 것도 사실 마지막 순간에서 오해를 풀어볼 시간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과도 같다.


aVXvEK17YjcnBWlXtQejq3zMFnY.PNG


"(중략)그러니까 우리, 친구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은 하지 말아요. 외롭고 힘들어서, 누구한테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 나도 알아요. 그 마음이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잖아요. 상처 나요 그러다가."

"야. 너 되게 재미없다. 꼴랑 스물한 살짜리가 왜 이렇게 세상을 헤비 하게 살어? 누가 너랑 사랑하재?"

"나는 설렜거든요. 아무 의미 없는 행동에 설레기 싫어요."

"설레도 되는데. 다들 그러다 말거든. 너는 뭐 다른 줄 알아?"


오랜 상처로 이두나가 선택한 전략은 송곳 같은 '가식 뚫기'다. 그녀는 피를 토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은근슬쩍 사람을 폄훼하거나 가스라이팅 하는 환경을 오랫동안 지나왔다. 말속에 숨은 저의를 품고 있어도 좀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현대인식 화법에 질려 빠진 이두나는 결국 겸양이나 위선 떨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나 똑바로 하라는 식으로 독설을 내뱉게 된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민경민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영화로 글 빚는 사람입니다. 따뜻한 지성을 좋아합니다

1,80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6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9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이세계 삼촌'의 가장 강력한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