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너희 부부는 점심까지 같이 먹어?”

점심시간을 대하는 사내부부의 자세

by 피터팬의 숲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알고 있다.


어떤 취업 준비생이 한 회사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그 회사 건물 밖으로 나오는 직원들의 표정을 봤더니, 하나같이 너무나 밝고 발걸음까지 경쾌한 것이다. 얼마나 일하는 게 즐겁고 좋은 회사면 직원들 얼굴이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는지 호기심이 동한 그 취업 준비생은 고심 끝에 그 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알게 된 불편한 진실은, 그 회사는 지옥이었다는 것. 그리고 점심시간에 회사 밖으로 탈출하는 그 순간이 너무나 좋은 회사 직원들의 표정과 발걸음은, 지옥의 용광로 같은 장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는 일이라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내용은 점심시간이 직장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점심시간은 직장인들의 노곤한 하루 일과를 지탱해 주는 완충지대이자 해방구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행복한 점심시간을 보내기 위한 직원들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하이~ 즐거운 금요일~ 오늘 점심 약속 있어요?”

“10분 전 약속 잡았어요. 씨유 넥스트 타임!”

“네. 아쉽네요. 다음 주 언제 밥 먹어요~”

“오늘 점심 약속 있어? 없으면 추어탕 콜?”

“콜! 커피는 내가 사지!”

“저런... 내가 사려고 했는데^^*”

저마다의 모니터 속, 노란 창에서 사사로운 대화가 시시각각 이뤄진다.

그런데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할 때, 대화의 주제는 몇 가지로 정해져 있다. 어제저녁 언론에 보도된 화제의 뉴스, 주식과 부동산, 연예인의 가십, 사내정치, 전보인사나 승진 문제, 상사 갑질, 직원 험담 정도가 대부분이다. 점심시간의 대화를 통해 회사 내부 이슈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알게 된 정보는 사실 몰라도 크게 상관없는 내용들이 많다.

나와 아내도 처음에는 다른 동료들처럼 따로 약속을 잡거나 소속된 팀의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부부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회사 사내 식당이 없어지고, 회사 내에서 몇 번의 크고 작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아내와 같이 점심을 먹는 일이 점점 좋아졌다.

아내와 함께하는 점심시간은 편하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다른 동료들과의 식사 때처럼 어색한 분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정형화된 주제의 대화를 이어갈 필요가 없고, 내키지 않는 누군가의 험담에 애써 참여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아내와 점심밥을 먹으면 이상하게 밥맛이 좋다.

“나 당신이랑 밥을 먹으면 더 살이 찌는 것 같아.”

“왜?”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또 맛있는 음식이라면 더 음미할 수 있게 되고, 천천히 먹게 되고. 결국 밥을 끝까지 다 먹게 되네.”

점심시간을 아내와 함께 보내고 마주치는 직원들은 부러움을 가장한 시샘 어린 말을 한다. 그들의 속이 부러움일지 아니면 안타까움일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인생은 짧고 시간은 유한하기에. 시간은 없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기에도 턱없이 아쉬운 날들이기에.

“아침도 저녁도, 심지어 점심도 둘이 같이 먹는 거야?”

“24시간이 모자란 거예요? 선미도 울고 가겠어요.” 동기와 후배들이 놀려댄다.


나는 그냥 싱긋 웃는다. 오늘 회사 앞 백반집에서 아내와 같이 먹은 된장찌개는 정말 맛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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