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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팬의 숲 May 15. 2022

시계꽃이 말을 걸었다

시간을 잡을 수 있을까?

경기도 안산에 ‘유니스의 정원’이라는 카페가 있다.

      

야외정원에 둘러싸인 카페와 레스토랑이 매우 이색적인, 꽤 매력적인 장소다. 연인들이 자주 찾아오는 데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수려하고 단정한 정원이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듯하다.

     

휴일을 맞아 나도 아내와 이곳의 실내정원을 걸었다. 실내정원은 입장료가 무료인데, 온실 형태로 조성되어 있어서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이 부럽지 않다. 물론 거짓말 조금 보내서.

     

오늘은 이곳을 걷다가 진귀한 꽃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시계꽃’이라는 이름의 식물이었다.

      

잠깐만 걷다가 나갈 요량으로 들어온 실내정원이었다. 그런데,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 새로운 생물을 발견한 것이다. 오늘은 나도 운이 좋은 것 같다.     


시계꽃의 외양은 독특하다. 시곗바늘을 연상시키는 보랏빛 수술 또는 암술이 꽃잎을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다. 꽃에 대해 잘 몰라서 글로 표현하기도 버겁다. 글을 쓰는 사람은 박학다식해야 해야 하는 이유다. 뭐든 알아먹기 쉽게 요리해서 독자들에게 떠먹여 줘야 하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핸드폰으로 이 꽃의 서식지를 알아보니 ‘남아메리카(브라질, 아르헨티나)’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역시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꽃에 ‘삼바!’ 하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에 글씨가 있냐고 묻는 사람은 눈을 한 번 더 비비고 아래의 사진을 지그시 바라보기 바란다. 분명히 ‘삼바!’라는 두 글자가 보일 것이니 말이다.     


(C) 2022. 피터팬의숲 All rights reserved.


사실 이 꽃을 핸드폰 사진첩에 담으면서 느낀 심상은 ‘삼바!’ 따위가 아니었다. 사실 저 두 글자는 집에 와서 졸린 눈을 비비며 뒤늦게 확인한 것이다. 그 시각, 실내정원에서 사진을 찰칵거리며,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함께 찰카닥거리는 흑색 브라운관에는 ‘시간은 왜 항상 부족할까’라는 이야기였다.     


한 편의 이야기...

주말에는 시간이 초음속의 속도로 흐른다는 흔한 속삭임부터, 침대 위에 올려놓은 빨래를 신속히 개켜놓고, 남은 시간에 글을 쓰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이렇듯 시간은 말이 없지만, 항상 나를 압박해오는 존재다.      


그런데, 시계꽃을 발견한 것이다. 시간을 형상화해 마스코트처럼 만들어 놓은 꽃.

고마우면서도, 미운 그 시간이라는 무형의 존재가 유형이 된 것 같은 환상, 어그러짐.     


시계꽃을 팔을 뻗어 꺾어버리면 나를 지배하는 시간의 압박감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동자의 초점이 풀리고 시계꽃을 움켜쥐려는 순간, 아내가 나를 꼬집었다.     


눈에 비쳤던 시계꽃을 초록색 저편으로 흘려보내고, 다시 핸드폰에 담긴 그 꽃을 바라봤다.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흐르는 시간을 이겨낼 수 없겠구나, 애꿎은 식물에 화풀이하는 것은 애들이나 하는 짓이겠지.      


나는 알 수 없는 헛헛함을 뒤로하고 실내정원을 벗어났다.  

시계꽃이 내게 말을 걸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쏘아붙인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거실 한 편의 '문샤인' 하나가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 줬다.


"시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부족해. 힘내"


(C) 2022. 피터팬의숲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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