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규승 Nov 17. 2020

바다는 연인들의 발자국을...

음악×문예 01 _프레베르, 「고엽」

음악×문예 01

쟈크 프레베르, 「고엽(Les feuilles mortes)」


가을이 풍경에서 밀려나는 시간, 겨울은 온 힘으로 가을을 밀어내고 가을은 부스러기로 남아 풍경에 스며 있다. 풍경을 가르며 몇 남지 않은 이파리에서 낙엽 하나가 떨어진다. 낯설다. 저것은 왜 이제야 떨어지는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짧은 시간 허공을 가르는 나뭇잎을 바라본다. 나무는 저녁 햇살로 몸을 감싼 채 묵묵히 서 있다. 저 햇살마저 사라지고 저녁 찬바람이 나뭇가지를 가르면, 나무는 온전히 겨울나무가 된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땅에 닿는 동안 허공에는 잠시 낙엽의 흔적이 남는다. 나무의 흔적이기도 하고 시간의 흔적이기도 한…. 이제는 더 이상 나뭇잎이 아닌, 흔적의 잎인 그것은 땅 위에서 이리저리 날린다. 흔적은, 나무에 속했을 때와는 달리 이제 바람이 만들어간다. 바람의 움직임을 표현하며 흔적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나무마저 바람의 흔적이 된다. 한때 자신의 일부분이었으나 이제는 바람인 흔적으로 나무와 바람은 연결된다.


흔적은 사라지는 것만이 남길 수 있다. 영원보다 소멸과 손잡고 어깨동무한다. 그리고 흔적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순식간에 바람이 불어 지우기도 하고 오랜 시간을 견디다 스스로 소멸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흔적, 기억은 망각이 지워간다. 기억은 기억으로만 있을 때보다 장소와 함께할 때 오래도록 망각을 견딘다.


흔적은 소멸로 소멸은 소생으로


인간은 망각을 견뎌내기 위해 무덤이라는 흔적을 발명했다. 이때 무덤은 사실이자 은유다. 또한 중의적이다. ‘묻는다’는 행위는 무덤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묻힌 자가 누구인지 질문함으로써 그를 기억해낸다. 문자는 몸 밖에 기억을 보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발견한 또 다른 무덤이다. 그러므로 ‘쓴다’와 ‘묻는다’는 결국, 무덤과 묘비명으로 만나 흔적을 새기고 소멸을 늦춘다.


   오 그대 기억해주었으면

   우리 다정했던 그 좋은 날들을

   그 시절 삶은 더 아름다웠고

   태양은 지금보다 뜨거웠지

   낙엽은 무수히 쌓이는데

   추억과 후회와 함께

   북풍이 그들을 실어가네

   차가운 망각의 밤 속으로

   그래 난 잊지 않았어

   그대가 불러주던 그 노래를

   그것은 우리를 닮은 노래

   그대 날 사랑했고 난 그대를 사랑했네

   우리는 둘이 함께 살았지

   날 사랑했던 그대 그대를 사랑했던 나

   하지만 삶은 살며시 소리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고

   바다는 모래 위

   헤어진 연인들의 발자국을 지워버리네

   낙엽은 끝없이 쌓여드네

   추억과 회한과 함께

   그러나 내 사랑은 말없이 변함없이

   언제나 웃으며 삶에 감사하지

   난 너무도 그대를 사랑했지 너무도 아름다운 그대를

   어떻게 그대를 잊을 수 있으리

   그 시절 삶은 더 아름다웠고

   태양은 지금보다 뜨거웠지

   그대는 나의 가장 따사롭던 여인

   하지만 후회해 무엇하리

   그대가 부르던 그 노래

   언제나 언제나 내 귀에 울리는데

   그것은 우리를 닮은 노래

   그대 날 사랑했고 난 그대를 사랑했네

   우리는 둘이 함께 살아 있었지

   날 사랑했던 그대 그대를 사랑했던 나

   하지만 삶은 살며시 소리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고

   바다는 모래 위

   헤어진 연인들의 발자국을 지워버리네.

   ―쟈크 프레베르, 「고엽」 전문

   『축제는 계속된다』, 김종호 옮김, 솔, 1996.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적은 사라진다. 묻고 또 물어도, 쓰고 또 새겨도, 바람이 불고 낙엽이 날려도 흔적은 사라진다. 결국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도록 하는 방법은 흔적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이때 ‘다시’는 역반향이 아니라 순반향이다. 재생이 아닌 반복되는 소생, 유전이다. 낙엽이 떨어진 자리에 다시 새 잎이 돋듯이 소멸은 흔적으로 다시 살아난다. 폴 발레리는 「해변의 묘지」에서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고 발설함으로써 흔적의 집인 무덤을 생명의 집으로 예비했다. 이로써, 영원한 것은 흔적이 없지만 흔적의 영원함은 반복으로 완성된다.


죽음은 죽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시 그 곡이 흐른다. 한 사람이 흑백의 브라운관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손은 피아노 건반 위에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자세히 보니 음악은 음악대로 흐르고 연주는 음을 쫓기에 바쁘다. 우스꽝스럽다. 아니, 우스꽝스러워야 한다. 조금씩 카메라의 앵글이 넓어지고 피아노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자, 양끝에서 피아노를 잡고 음악에 맞춰 밀었다 끌었다 하는, 근육질의 몸을 가진 두 사람이 보인다. 그들의 목에는 핏대가 불끈 솟아 있다. 여유로운 연주자는 가녀린 몸에 걸맞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그 연주자는 찰리 채플린을 흉내 낸 듯한 차림의 코미디언, 배삼룡이다. 만담이 주류였던 당시의 코미디 프로에서 그는 이렇게 자신을 ‘썼다’. 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그는 늦은 낙엽처럼 고독하게 떨어져 나에게 흔적을 남겼다. 기억의 먼 곳, 그 음악은 로저 윌리암스가 피아노 연주곡으로 편곡한 ‘Autumn Leaves’이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Autumn Leaves’에 목소리가 실린다. 하지만 새로운 버전의 노래. 노래에 실린 기억은 병원과 함께 떠오른다. 한때 수술실 문을 드나들며 나는 여러 번 죽었던(?) 적이 있다. 그 죽음과 같은 깊은 마취의 상태에서 깨어날 때마다 아무 날이나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때 내 귀를 타고 들어오던 또 다른 ‘가을 낙엽’은 에바 캐시디(Eva Cassidy)의 목소리에 실려 왔다. 그녀는 서른다섯에 죽음과 만났고, 세상에 노래를 흔적으로 남겼다. 그 흔적을 들으며 나는 ‘아무 날’을 연장해갔다.


그 이후 ‘가을 낙엽’은 소멸한 모든 것의 흔적이 되어 내게 새겨졌다. 수많은 버전의 ‘고엽’, ‘Autumn Leaves’, ‘Les Feuilles Mortes’는 음색과 템포에 관계없이 소멸의 노래, 그 흔적일 뿐이었다. 소멸은 흔적을 남김으로써 슬픔을 살린다. 하지만 아무 날이나 계속되는 것은 흔적일 수가 없다. 바람이 불고 살아야겠다는 발설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삶은 연장되었다. 수많은 소멸 앞에서 죽음은 차츰 권태로워졌다. 그리고 삶은 살아 내거나 살아봐야 할 무엇도 아닌, 발설할수록 거짓이 되는 날이었다.


이브 몽땅의 ‘Les Feuilles Mortes’는 관조적인 어조로 삶과 죽음과 사람을 바라본다. 비관과 긍정의 중간이 아닌, 그 바깥에서 감정을 지워간다. 시간은 매일매일 차곡차곡 쌓이는데 어디에도 흔적은 남기지 않으려는 건조한 어조. 흔적은 시간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느닷없이 알게 된 어느 날 그는 무감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삶은 살며시 소리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고/ 바다는 모래 위/ 헤어진 연인들의 발자국을 지워버”린다고.


다시, 나뭇잎이 떨어진다. 발걸음이 멎는다. 그 흔적을 따라 노래가 이어진다. 지금, 때늦은 낙엽의 흔적은 노래로써 낯섦을 넘어선다. 낙엽을 ‘사라짐’ ‘떠나감’ ‘지워짐’ ‘잊힘’ 들에 비유하는 것은 너무나 상투적이어서 이제 어떤 정서도 불러일으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노래가 ‘어떤’ 목소리에 실릴 때 지겨움은 울림으로 바뀐다. 시의 처음을 낭송하던 이브 몽땅의 목소리는 어느새 멜로디 위에 실려 노래가 된다. 그러나 그 경계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낙엽의 흔적을 보는 듯하다. 자유롭게 흐르는 노래, 그 흔적. 이럴 땐 소멸조차 아름답다. 이별은 흔적으로 남아 사라진 것과 지워진 것을 기억한다. 죽음은 죽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 여전히 아무 날이나 계속될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이브 몽땅, 〈고엽Les Feuilles Mortes〉

https://youtu.be/kLlBOmDpn1s

에바 캐시디, 〈Autumn Leaves〉

https://youtu.be/xXBNlApwh0c


#자크프레베르 #이브몽땅 #에바캐시디 #배삼룡 #최규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