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카펫 매거진 2. 박래형 님
래형 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6년. 그동안 여러 모임을 함께 했다.
매월 보드게임 모임에, 1년에 한두 번씩 댄스파티, 방탈출, 맛집 번개, 마작 등등.
재미있는 점은 늘 래형님이 함께 하자며 제안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놀기 위해 래형님이 만든 단톡방은 벌써 4년째 유지되고 있고 148명의 사람이 들어와있다.
사람을 모아 자리를 만들긴 하지만 래형님은 발언하는 편이기 보다는 듣는 편에 가깝다.
하지만 일단 파티에서 무대가 주어지면 마이클 잭슨의 춤과 스윙댄스를 신나게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놀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성매매, 일본군 위안군 문제, 노동법 등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책을 읽고 토론도 한다.
그는 대체 언제 쉬는가?
래형 님과 친한 내 지인들과 종종 토론한 결과, 우리의 결론은 '체력이 좋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냥 노는 게 즐겁고 체력이 좋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긴 힘드니까.
안녕하세요, 래형 님.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박래형이고 41세, 그리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어요. 사람들과 만나면 제 자신을 하나님과 사람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요.
음악이 들어가네요?
잘 못하지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요즘 스윙에 빠져 계시잖아요. 언제부터 빠지신 거예요?
작년 10월 6일부터 시작했어요.
거의 1년 다되어 가네요. 정기적으로 보드게임도 하시고, 스윙 함께 하는 분들과 등산도 하고 계시죠.
그 전엔 어떤 거 빠져있었어요?
시간대별로 다르긴 해요.
판타지 소설 읽는 모임도 하고 있어요. 그동안 제가 (덕후가 아니라)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모임 멤버분들하고 이야기하는데 제가 다 알아듣는 거예요. 장르문학을 적게 읽은 건 아니구나 싶었어요. 만화책 하고 판타지, 무협 소설을 옛날에는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옛날이라고 하면 언제요?
중학교 때요. 고등학교 땐 많이 못 읽었던 것 같고 고시 공부하면서도 많이 읽었던 것 같고요.
춤도 오랫동안 추신 것 같아요.
춤은 짧은 시기였어요. 수능 끝나고 대학교 들어가기 전에 굉장히 많이 췄어요. 그리고 고시에 합격한 게 대학교 3학년 때라 연수원 들어가기 전까지 1년 반 동안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그 기간 동안 댄스 공연팀에서 열심히 췄죠.
쉬었던 기간이 길긴 했지만 아예 끊지는 않고 계속하셨네요. 어떤 춤추셨어요?
수능 끝나고는 마이클 잭슨을 좋아해서 마이클 잭슨 춤을 췄고요. 공연팀은 팝핀하던 팀이었고요.
팝핀도 하고 마이클 잭슨 춤도 추고.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었던 걸까요?
그 당시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어요. 제일 재미있었던 건 춤으로 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었고요. 또 제가 가진 여러 모습 중에서 의외성 있는 모습으로 가지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제 자신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의 하나였기도 했던 것 같고요.
스윙댄스를 추는 건 오래 이어질까요?
그럴 것 같아요. 스윙은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보드게임도 그렇고, 마작도 그렇고 사실 어느 정도는 사람들하고 친해지려는 목적인 더 큰데 스윙은 스윙 자체에 집중하는 느낌이라서요.
그럼 스윙이 좋은 이유는 뭐예요?
이건 결국에는 경험에서 오는 부분인 거 같은데 올해 홍콩 아트 바젤 행사를 갔을 때 스윙바도 갔었어요. 그때 굉장히 즐겁고 재밌는 느낌이 남았던 것 같아요. 외국인으로서 갔는데 환대받는 느낌?
해외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추고 있더라고요. 그게 재미있는 매력인 것 같아요. 평생 할 수 있고, 전 세계에서 써먹을 수 있다는 느낌도 있고. 나 자신의 확장성을 키워줄 수 있는 도구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스윙에 집중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스윙 실력을 얼른 올려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아직까지는 스윙을 춘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스윙 실력을 올리는 건 언제쯤이면 될까요?
모르겠어요. 답이 없어요. 빨리 잘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춤 말고는 어떤 걸 했나요?
중간에 하다가 제가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포기하긴 했는데 오카리나를 배웠었어요. 고시 공부할 때였는데 2차 시험 준비하면서 공부에 집중하느라 그만뒀고요.
공부 같이 주로 하는 것 외에 항상 다른 활동들을 곁에 두는 사람이었나 봐요.
그런 편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와 고시 2차 때는 공부에 완전히 집중하느라 그렇게 못 했지만 그 외의 시기에는 뭔가를 조금씩 조금씩 했던 것 같아요.
래형 님이 흥미를 느끼는 활동에 공통점이 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때그때의 느낌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제가 새로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했던 걸 반복하고 익숙해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지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는 편은 아닌 것 같은데도 가끔씩 새로운 자극이 왔을 때 재밌으면 사람들과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 전에 함께 식사를 하면서 래형 님은 본래 자기는 목적지향적인 사람이었고 했다. 예전엔 정치인이 되고 싶었고 인정 욕구도 많았다고도 말했다. 그런 래형 님의 생각을 바꾼 것은 '사람들'이었다.
교회는 어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로 처음 인도해준) 친구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런 부분에서 저한테 굉장히 재미있는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많은 고민 없이 잠시 휴식을 준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완전히 의사결정을 하지는 못했었지만 어느 정도 큰 범위 내에서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끔 좋은 선배들이 많았어요.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인정 욕구 같은 것도 어느 정도 해결되고 정치에 대한 생각도 그때 접으신 거예요?
정치에 대한 생각은 연수원 2년 차 때쯤 아내를 만나면서 그 생각은 없어진 거 같아요.
그리고 연수원에 들어가서도 기독교를 통해서 좋은 선배들을 만났어요. 세상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시고 살아가는 선배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좋은 본보기가 많았군요. 들어보면 사람들한테서 많은 영향을 받으신 것 같아요.
그런 편인 것 같아요. 굳이 말하자면 저는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 편이거든요. 자기 주관을 뚜렷하게 밖으로 표출하진 않지만 의사결정은 확실하게 하는 편인데 당시에 만난 선배들은 그런 의사결정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삶의 에너지를 갖고 계셨던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약간 주제를 바꿔서, 제가 잘 몰라서 여쭤보는 건데 기도 모임을 원래 다들 여러 개를 하는 건지 래형 님이 더 많이 하는 편인 건지 궁금해요.
(좋은 선배들을 통해 생각이 변화한 후에) 기독교 단체를 알게 됐고 그곳의 기본적인 입장이 삶 가운데서 실천하자는 것이라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곳에서 로스쿨 학생들, 사법연수원 학생들을 섬기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당시에는 제가 갖고 있는 삶의 비전이 젊은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그 사람들이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들 다니면서 예배도 많이 드리고 그 친구들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저희 집에서 엠티도 했었어요.
기억나요. 그래서 집에 칫솔을 많이 항상 갖추고 있었다고 했었죠?
결혼 전이었는데 당시 저희 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어왔을 땐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30명 정도 들어온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트레바리(독서모임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를 하게 된 거고요?
제가 그 기독교 단체에서 후배들한테 더는 도움이 못되겠다 싶어서 관련된 활동을 멈췄고, 그쯤에 트레바리를 시작했어요.
트레바리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셨지만 본격적으로 모임을 크게 하게 된 건 저랑 하던 보드게임 모임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본격적인 판을 벌렸달까.
그렇게 (모임이 크게) 될 줄은 사실 생각도 못했어요.
제가 늘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건 뭘 하시든 늘 주변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하시잖아요. 스윙댄스도 그렇고 마작, 보드게임 모두 사람들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하고, 가르쳐주기도 하고. 결국에는 그 모임들이 다 활성화되고요.
어떻게 주변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궁금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제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만나게 했을 때, 그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좋은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걸 보는 게 좋아요. 사람들이 모일 때가 그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기독교적 바탕이긴 한데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가능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고. 특히 제 주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결국엔 사람들과 만나고, 같이 재미있는 걸 하고, 같이 맛있는 걸 먹으면서 그 행복의 관계가 완성이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드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그 역할을 하면 그 사람들의 삶이 조금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해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삶에서 실천하시는 거네요?
사실 그런 활동들의 바탕이 대부분 신앙이긴 해요.
인간관계 내에서 행복을 느끼는 타입인가요? 관계지향적인 사람이랄까?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지금은 관계지향적인 사람이 된 것 같지만 예전엔 굉장히 목적지향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기독교가 그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고요.
제 주변엔 전부 다 목적지향적인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비난을 듣는 걸 알기도 하고, 제가 목적지향적인 사람이란 것도 알아서,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하면서 바뀐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기본적으로 혼자도 잘 있는 사람인가요?
그런 편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저의 욕심,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의 발로, 그리고 제가 모아놓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주변에서 들었던 비난에 대한 반작용. 이런 것들이 모여서 저의 행동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SNS에 쓰셨던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어요.
50대의 자신을 상상해보았을 때 지금대로 살고 있다면 그것도 만족스럽겠지만 좀 더 좋은 관계를 많이 만들고, 그 관계들이 더 깊어지면 좋겠다고. 그렇게 되기 위해 40대를 잘 살아야겠다고 쓰신 글이요.
인간에 대한 흥미는 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래형 님은 그렇지 않은가 봐요.
네. 원래 저 자체가 사람에 대해 애정이 많던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다가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 대해 좋은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지는 않은 것 같고요.
그럼 이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신생아 같다?
맞아요. 그리고 기독교와 트레바리를 통해 좋은 사람들, 재밌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하지?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지?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들이요.
좋은 사람들이 많이 만났다는 게 제 삶에 있어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저의 생각을 바꿀 정도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 만나서 제 삶의 방향이 바뀌었어요.
래형님의 인터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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