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움 Aug 04. 2019

소년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 (2)

매직카펫 매거진 2. 박래형 님

쉬운 사람


워라밸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런 구분은 보통 워크와 라이프를 개별로 보는 것일 테고 라이프에 휴식, 취미 등등이 들어가겠죠.

그런데 저는 요즘 우리의 활동을 꼭 일과 그 외의 것들로 나눠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인생에서 일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져서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아요.

그것 외에 또 다른 분류 기준은 없을까요? 래형 님은 어때요?


저는 그런 분류는 안 해봤는데 굳이 해보자면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것 같아요. 일에 있어서는 클라이언트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분류 자체를 이 사람과의 약속,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분류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굳이 분류한다면요. 좀 더 세분화하고 개별화해서 1:1의 관계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개별 인간을 보는 것이군요?


네. 직업적인 특성도 있는 거 같아요. 그 사람들 중에서 누가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지 본다면 지금은 아내죠. 근데 아내가 바쁜 사람이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내와 약속이 생기면 다른 것보다 아내에게 먼저 시간을 맞춰요.


그렇게 분류하는 편이죠. 한 사람, 한 사람.


그럼 래형 님의 활동들에 있어 밸런스를 맞춘다고 할 때, 그 밸런스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다른 것이겠네요?


저는 기본적으로 밸런스를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우선은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 아니면 그러려고 노력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건 여기까지야'라고 정해놓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어요.


시간을 중요시하긴 하지만 누군가와의 만남에 있어서 이건 여기까지야,라고 한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누군가와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고 싶어 해요.


예전에 본인을 '쉬운 사람'이라고 표현했던 것도 그런 맥락일 것 같아요.


맞아요. 사람들에게 그렇게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래형 님이 나이가 들다 보면 세상 다른 것들에 대한 흥미가 줄어들 수도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요. 경험이 쌓이면서 익숙해지고 감정의 표현 방식이 부드러워질 수는 있겠지만 가슴이 뛰거나 분노하는 제 자신의 감정 곡선이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소년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시군요.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아님 그냥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30대의 얼굴과 30대의 마음 중 평생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을 택할래'라는 물음에 대해 30대의 마음을 택하겠다고 쓰신 글도 있었어요. 30대의 마음은 어떤 것인가요?


저를 생각해보면 20대 때는 아예 방향이 안 보였고, 30대에는 방향이 약간 보여서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좌충우돌하면서 뛰어가는 단계가 아닐까요?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지인이 그려준 래형 님. 주변 사람들이 보는 래형님은 이런 모습. 이렇게 말하면 '원래 그런 사람인지 아니면 그러려고 노력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답할 것만 같다.


행복할 수 있는 방향


래형 님의 하루는 보통 어떻게 흘러가요?


특별한 일 없으면 보통 8시 반까지 사무실에 출근을 하고 9시까지 아침기도회를 하고 10시까지 집중해서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나서 10시 반쯤 아침을 먹어요. 돌아와서 집중해서 일하고. 점심 안 먹은 지 1년 정도 되었어요.


중간에 2시간에 한 번 정도 회의실 가서 스윙 연습을 하고. 한 곡 정도요. 그렇게 5~10분 정도 하면 운동도 되고 기분전환도 되고.    


회의실에서 혼자 춘다고요?(웃음) 역시 재미있는 분이에요.

그리고 보통 저녁엔 약속이 있죠? 약속 없는 날도 있어요?


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매년 목표를 세우나요?


오타니 쇼헤이 계획표(만다라트 계획표)로 매년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중간중간 그걸 보면서 방향도 확인하는 편이고요. 회사 운영과 관련해서 제가 세운 원칙이 있는데 그것도 꾸준히 확인하고요.


그럼 래형 님에게 일은 무엇인가요? 그것도 세상에서 실천하는 행위인가요?


그런 부분이 옛날에는 엄청 컸던 거 같은데 지금은 그 정도로 크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변호사가 되고 회사를 만들고 운영했을 때는 그 부분에 거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썼던 것 같아요. 기독교인으로서 일을 한다는 의미에 대한 고민을 기독교 로펌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실험해보았다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제가 생각했을 때 제가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 지금은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생각이었어요?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당시의 저로서는 정확히 알지는 못했던 것 같고 사람들의 욕심이나 이기심에 대해 과소평가했던 것도 있었고요.  


지금은 좀 더 현실에 아귀를 좀 더 맞췄다고 표현해도 될까요?


그런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 옛날만큼 고민하는 느낌은 아니에요. 제가 잘 못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삶의 방향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제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해봤을 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목표와 비전을 갖고 사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이 제가 생각하는 래형 님의 현실적인 면모 같아요. 행복을 중심으로 두되 자신이 할 수 있는 실천을 멈추지는 않는. 래형 님의 그 시각이 저에겐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감사해요.


저도 인터뷰하면서 생각을 정리했어요. 이런 기회 주셔서 감사해요.


지난해 래형 님은 추천 마라톤 10km 부문에도 나갔다. 비를 맞으면서도 뛰었던 래형 님.


인터뷰 동안에는 몰랐는데 글로 옮기고 보니 래형 님은 '~하는 편', ‘같아요'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단순한 습관인지도 모르지만. 마침 요즘 읽는 중인 소설(건축 설계사무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속에 이런 문장이 나왔다.


선생님의 설계에는 고객의 삶에 맞추어 익숙해져 가는 종이를 이어 붙일 때
풀칠하기 위해 남겨두는 부분 같은 것이 있다.
(마쓰에이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중)  


'종이를 이어 붙일 때 풀칠하기 위해 남겨두는 부분’이라는 표현은 래형 님의 ‘같아요’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그 습관적인 어미는 ‘쉬운 사람’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들을 담기 위해 남겨둔 여백 ‘같다’.


나 좋을 대로의 해석이려나?

인터뷰이에 대한 편향성이라고 보아도 좋을 이 마음을 그래도 숨기지는 않기로 했다. 매직카펫 매거진의 인터뷰는 상대의 삶과 즐거움과 그것을 관통하는 애정을 들여다보고자 시작했으니 그 인터뷰이를 좋아하지 않기란 참 어려운 일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소년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