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움 Aug 20. 2019

호흡이 긴 사람 (2)

매직카펫 매거진 3. 강효정 님 (2)

매직카펫 매거진 3. 강효정 님(1) 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15


#오래 한다는 것의 의미


효정님은 자신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어쩌다 한 번씩 치타가 될 수 있는 나무늘보라고 말했다. 평소엔 에너지 레벨이 낮고 게으른 상태지만 재미있는 것이 눈에 띄면 즉흥적으로 일단 시작하고 보는 사람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일단 뭔가 시작하면 오래하는 사람이 즉흥성, 재미라는 키워드로 자신을 설명한다는 것이 어쩐지 의외였다. 팔랑팔랑 언제나 관심사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오래 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긴 호흡으로 이어가는 활동에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경복궁에 가면서 굳이 한복을 빌려 입은 것도 아마 재미있어서 했을 것이다.


꽃꽂이는 언제부터 했어요?


2년 정도 됐죠. 내가 배우고 있는 것 중에 꽃꽂이가 최고예요. 제 후배가 회사에 꽃꽂이 동호회를 만들었는데 오라고 하는 거예요. 꽃꽂이에 대한 편견이 누구나 있잖아요. 예쁘고 귀족적이고 뭐 이런. 왜 하나 했어요. 그런데 후배가 계속 오라니까 그 친구랑 하는 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 번 가봤어요. 의외로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꽃이 되게 소중한, 아까운 것이에요. 꽃은 멀쩡히 살고 있었는데 나 좋자고 얘를 꺾어와서 이 짓을 하는 거니까 허투루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꽃이 나에게 예뻐야 해, 이런 게 아니라 공들여 키워져서는 얼마 안 있음 죽을 건데, 꽃인데 생식활동도 못하고 너네 집에 가서 꽂혀있어야 해. 그러니까 얼마나 정성 들여서 잘 꽂아야 하는지에 대해 똑바로 생각하면서 집중해서 예쁘게 꽂아! 전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예요.  


한송이 한송이를 엄청 소중하게 다루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도 엄청 못합니다만.  


사진은 예쁘던데요?


선생님이 도와주시니까요. 1번으로 와서 보는 학생이에요, 특별관리 대상.  


바둑에서 한 수 한 수가 엄청 중요하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꽃도 한 송이 한 송이 최적의  위치를 찾는다?


그렇죠. 엄청 집중해서 해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럼 그때의 고려요소는 뭐예요?


최종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요. 선생님이 표본을 제시하긴 하지만 그게 항상 내 취향인 건 아니죠. 표본을 참고해서 내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린 다음 실제로 꽂아야 하는데 꽃은 생물체니까 다 정형화된 모양으로 생긴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꽃을 그렇게 꽂자고 한들 그렇게 꽂히질 않아요. 이건 해봐야 알아요. 당장 예쁜 것 외에도 물을 먹으면서 꽃이 살아있도록 해야 하니까 배웠던 규칙들을 떠올리면서 해야 하고.  

선생님이 도와줬다고는 해도 잘 하는 것 같다. 갑자기 드는 의심, 못한다는 말들 다 겸손의 표현이 아닐까? 실은 노래도 엄청 잘 하는 것 아닐까?


꽃꽂이를 설명하면서 문제 해결 프로세스처럼 말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 꽃꽂이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도 없긴 하지만요.  그럼 지금은 안 하지만 그 정도로 오래 한 것들이 있어요?  


지금 하는 것들 중 가장 오래 한 건 보컬 레슨, 수영도 2~3년 했고, 요가도 2년 정도 했었고. 꽃꽂이도 2년 이상 하고. 그러고 보면 뭐든지 1년 이상 했네요.


오래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해요?


아뇨. 그냥 성향이 보수적이다 보니 시작하면 중단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보수적이라는 건 어떤 의미예요? 


그냥 변하는 게 싫은 거예요. 시작하는데 에너지를 일단 한 번 들였잖아요. 관성이 생기면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고 계속.


변화를 싫어해요?


변화를 좋아하죠. 극단적인 양면성이 심해요.


새로운 시도에서는 내가 그걸 해보는 게 중요한 거죠? 효정님의 새로운 시도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성보다는 어떤 대상을 알아가기 위한 활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취미라고 이름 붙여진 거의 모든 것들은 관계랑은 상관이 없어요.  


그건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그건 그 활동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죠. 혼자 할 수 있어야 취미가 되죠. 야구 같이 단체운동을 제외하면 뭐든지 혼자 할 수 있어야 취미가 되죠. 안 그럼 취미가 되긴 힘들어요.


그럼, 오래 함으로써 얻어지는 건 뭐예요? 그 시간이 분명 남기는 게 있을 거잖아요.


활동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스킬이 느는 걸 빼고 내가 그냥 이걸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자기 확신. 매번 그런 게 점점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만두고 싶은 때가 당연히 있죠. 보컬 레슨도 3개월이나 6개월마다 그만두고 싶은 위기가 꼭 와요. 이제 선생님도 알아요. 나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 안 돼요.  


예를 들면 처음 비음 내는 걸 배울 때, 저는 평소에 말할 때도 비음이나 두성을 하나도 쓰지 않으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6개월을 비음 내는 걸 연습하다가 어차피 필요 없지 않냐, 그냥 때려치우자, 안 된다고 그랬죠.


그건 왜 어려웠던 거예요?


익숙하지도 않은데 어디 근육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니까. 평소에 말하면서 비음을 많이 쓸 때 내가 어디 근육을 써야 비음이 나는지 신경 쓰면서 비음을 내진 않잖아요. 어디 있는지도 모를 근육이 움직여서 소리가 나는데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런 거죠.


그 근육이 어디 있는지부터 인식을 해야 하는 거군요.


6개월 해봤는데 모르겠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그러다 지금은 완전히 바뀌어서 음이 높으면 무조건 두성이나 비음을 쓰니까 이제 선생님이 그거 빼라고 해서 그걸로 또 거의 6개월 넘게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스스로 그 연습의 시간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하다 보면 못해서 짜증 나는 시기가 오겠지만 나는 그 시간을 당연히 지나갈 수 있고, 지나면 당연히 스킬업이 될 거라는 확신.


스킬업이 된다는 확신이 중요해요?


중요하진 않은데 어쨌든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면서 인생을 살 거잖아요. 지금 이 상태에서 정지될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새로운 걸 해봐도 괜찮아’, '내가 이걸 시도해봐도 문제없어’ 같은 자기 위안이죠. 계속 새로운 걸 배워야 하잖아요. 저는 신기술 관련 업무를 하니까 하나도 모르는 개발기술을 배워와서 임원들을 설득해야 하거든요. 1년, 2년씩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생겨요. 그럴 때 견디는 힘이 생기죠. '내가 맞아!' 하는.  


흥미롭네요.


뭔가를 배우는 건 내가 뭘 써야 해서 배우는 게 아니면 다 그런 의미가 있지 않나요?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지만 실제 쓰는 일은 잘 없잖아요. 하지만 내가 로지컬(logical, 논리적인)하게 이런 사고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런 집체교육이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보지만. 그거랑은 좀 다른 의미로 어떤 일정 수준 이상의 스킬을 갖게 사람을 트레이닝하는 것은 그 스킬 자체를 갖게 해주는 것 이외에도 삶에 대한 자세라던지 스스로에 대해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봐요.


한창 자연사 관련 책을 읽는 모임에 나가던 효정님은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에서도 사진을 한가득 찍어왔다.



오늘 인터뷰 어땠어요?


오늘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도움이 될까 모르겠네요. 대체 어떻게 정리하려고…. 저라는 사람이 그렇게 재미있는 것 같지 않아요.


재미있는데요?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제게 좀 더 질문을 다양하게, 많이 던지게 하는 기회인 걸요. 그래서 효정님이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얻고자 효정님의 핸드폰 사진첩을 쭉 둘러봤다. 자신을 드러내는 걸 스스러워하는 사람답게 수많은 사진들 중 자기 사진이 참 없었다. 이날 우리의 대화가 글자로 옮겨진 모양을 보고도 참 쑥스러워했다.


이런 사람이 4년째 놓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못하는 것을 좀더 잘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 또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탄탄하기 때문일 테고, 또 조금은 다른 자신이 되어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기 때문일 거다.


이렇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나 취미라는 단어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겐 탐구의 과정이기도 하고, 가치의 실천이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매직카펫 매거진’도 내게 그렇다. 그냥 재미라고만 말하기엔 사실 귀찮을 때도 있고, 네게 도움이 되는 일이냐고 물으면 명시적으로 보여줄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효정님을 인터뷰하면서 알았다. 하나의 글을 완성해서 꾸준히 사람들 앞에 내놓는 것, 그 과정의 반복 자체가 내게는 큰 의미다. 내가 그것을 계속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늘도 조금 쌓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흡이 긴 사람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