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마음이 오묘하게 작동했다.
간혹 도시를 나가 지하철을 탈 때가 있다. 지하철은 서로 마주보는 구조이다. 맞은편에 사람이 앉아 있을 때면 우린 애써 외면하거나 스마트 폰을 들고 하릴없이 검색을 하던 지 아니면 조는 척을 한다. 그런데 나는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미소를 띄우며 보고 있었다. 그들의 풍경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아는 형님을 만나 술집에서 술을 마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맞은편에서 온갖 치장을 하고 온 아가씨가 너무 뻔한 치장으로 보였지만 그냥 귀여워 보였다. 얼마나 애인을 만들고 싶었으면 화려해지고 싶었을까? 화려함이 지나쳐 촌스러워졌지만 마음이 먼저 앞서가는 바람에 그녀는 자신의 옷 상태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으리라. 그리고 친구의 조언도 들리지 않았으리라. 나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으니 우연히 옛 사진을 보게 되면 흠칫 놀라게 되는 것처럼,
여행이 퍽이나 즐거웠던 건 아니다. 내 여행 스타일을 잘 알지 못하는 까닭에 동행 선생님을 데려간 건 실수였다. 내가 원하는 건 만남의 구조인데 여행 내내 트윈 베드룸에서 지내야했다. 그리고 가기 싫은 앙코르 와트도 가야했다.
하지만 잃는 게 있으면 얻은 것도 있었다. 여행 내내 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월든’을 읽으며 내 삶을 점검하게 됐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면 자립을 하나씩 시작하자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모여 작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음—시작은 좋았으나 아직도 고구마 밭의 무성한 풀을 뽑지 못하고 있다 ㅠ) 그리고 점점 고기를 줄여 나가기 시작했다. 물을 많이 마시고 라디오를 많이 듣고, 위에서 얘기하듯 낯선 이마저 사랑스럽기 시작했고 내가 알고 있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굳이 멀리 여행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사람의 향기를 느끼면서 살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선악의 양면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열심히 하면 굳이 여행가서 보지 않아도 순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덕분일까 시간의 여백이 뿌듯해졌다. 사실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았다.
여행 제목을 도발적으로 정했지만 여행에 대한 반감이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자기만의 여행 방식은 생각 안하고 자기 삶의 태도는 생각 안하고 여행이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는 게 의심스러웠다. 여행도 욕망의 산물이라는 게 싫었다. 적어도 제법 나이가 들어 여행하는 건 여행의 대상들과 수많은 화학작용이 생기는 까닭에 몇 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은 다 가봐야 한다는 일념에 여행이 아닌 패키지 관광을 활용해서 확인 도장을 찍으러 다니고 있다. 그리고 풍경보다는 쉴 새 없이 찍은 사진을 블로그나 SNS에 올리면 여행은 끝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여행이 아니라 남들에게 여행의 이력을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상호작용하는 여행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여행은 종교처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마음의 세탁소가 아니라 조금은 삶을 긴장하게 하는 강장제 구실을 하게 되지 않을까? 꼼꼼하게 여행의 밑그림을 그린다면 여행은 욕망을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성장하게 디딤판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여행이 성장판을 건드리지는 않지만 적어도 자기 여행의 경험 중에 한 두 번은 성장의 경험을 해야 하지 않을까? 만일 삶이 변화되지 않고 그저 반복 된다면 여행은 그대의 저열한 욕망을 충족하고 싶어 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