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시간보다 10분 일찍 뚝뚝 기사가 문을 두드린다.
비엔티엔의 새벽은 맑다. 뚝뚝에서 바라본 비엔티엔의 도로가에 라오스 시민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아침 탁발이다. 공양을 위해 겸손하게 앉아 기다리고 있는 자세가 아름답다. 터미널에 도착 하니 1시간이 남는다. 터미널 옆 식당에 앉아 쌀국수를 기다리는데 라오스의 연인 한 쌍이 내 옆자리에 앉는다. 보통 식탁은 경계가 뚜렷한데 여기 라오스의 식당의 식탁은 경계가 없다. 자리가 남는데도 손님이 앉아 있는 식탁을 같이 공유한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응한다. 타인에 대한 경계가 없다는 증거일까?
버스를 타고 루앙프라방으로 간다.
버스는 대략 8시 30분에 출발.
한국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리가 대략 4시간인데 이제 그 정도는 껌씹기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서 목적지까지는 10시간 이상. 우리는 4시간도 느리다고 비행기나 고속열차를 이용한다.
비엔티엔에서 방비앵까지는 그나마 평탄한 도로인데 방비앵을 지나니 지리산 노고단 수준의 높은 산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5시간을 산의 허리를 타고 달린다. 도로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과 학교 그리고 길가에서 휴식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잠시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 여러 번 찾아왔다. 캄보디아는 후끈한 더위와 건기의 먼지들이 겹쳐서 가난이 끈적한 느낌이었는데 여기 고산지대의 남루함은 상큼해 보인다. 라오스는 다른 동남아 국가처럼 GNP는 높지 않지만 사회주의 국가라서일까? 가난에 호들갑을 떠는 캄보디아에 비하면 오히려 점잖다. 나름 자존심이 있어 보인다. 자기를 지나치게 방어하는 자존심은 자기를 구제하기 어렵지만 적당한 자존심은 사람에게 품격을 입혀준다. 수많은 자본의 공격과 관광객들의 푸짐한 소비가 괴로웠을텐데 나름 기품 있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필리핀에 있었을 때 필리핀 사람들에 보였던 태도는 느끼함이었다. 400년 식민지 역사에 걸맞는 체념과 생존 본능이 섞여 있어 늘 ‘yes’를 외치는 그들이었지만 진정성은 없었다. 필리핀의 음식처럼 담백하지 않았다. 라오스에서 나는 담백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 안은 모르는 사람들인데 라오스 아저씨가 시종 유쾌한 말투로 주변 승객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식탁 위가 경계가 없듯이 버스 안도 경계가 없다. 산위를 달리던 버스는 대략 저녁 8시에 도착했다. 험준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는 도중에 트럭 3대가 넘어져서 버둥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2월 11일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