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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Mar 18. 2017

2014, 라오스에서 보내는 두번째 편지


잠시 삶의 현장을 벗어나고픈 마음 때문에 여행은 시작됩니다 . 하지만 가끔식 관광지는 있는 그대로의 삶보다 더 과장된 그악스런 삶을 보여 줍니다. 자본이 골목의 풍경을 지배하고 친절을 사고팝니다. 서양에서 전해온 팁 문화는 당연히 베풀어야할 친절에 고약하게 돈으로 되갚습니다. 돈이 매개가 되는 배려 입니다.  

 이십 년 전 대학교 답사 여행으로 갔었던 거제도 학동 몽돌해수욕장은 아름다웠습니다. 밤새 몽돌 사이를 비집고 흘러 내려가며 자그락거리는 바닷물 소리는 젊은 영혼을 뜬눈으로 지새게 했습니다. 작년에 다시 가본 거제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권은 팬션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자본이 풍경을 잡아먹고 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몽돌 해수욕장의 자그락거리는 소리는 해변을 먹고 들어간 팬션 때문에 바람의 길이 틀어져 종적을 감췄습니디.

 앙코르 와트의 시엠립과 루앙 프라방  두 도시를 머물며 자멸과 지속 가능성이 떠  올랐습니다. 한 도시는 자본을 축적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라면  한 도시는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호흡을 유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모자를 사러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후 다섯 시 정도였는데 쇼핑몰은 벌써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대도시의 큰 쇼핑몰이 문을 닫고 있다니! 관광객이 많은 호텔 근처의 식당도 1-2개만 남고 5시에 문을 닫습니다. 루앙프라방의 작은 마켓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노릴 심산이라면 다섯 시 폐점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지요.

 제가 사는 금산도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 식당이 많아서 식사를 해결하려면 여러 식당을 돌아다녀야 하는 수고를 겪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불편함이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대도시가 24 시간을 달리며 손님들을 기다리는 친절을 배풀지만 사실 이 친절의 배경엔 자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친절 덕분에 본인들의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갑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번다고 하는데 죽을 때까지 개처럼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승이 되고 싶어 하는 미련한 꿈은 여전히 버릴 수 없는 탐욕입니다.

 앙코르 와트의 도시는 골목마다 1달러를 외치는 노점상들이 가득했습니다. 심지어 사원의 귀퉁이 혹은 사원을 들어가는 입구와 출구에는 1달러를 달라는 어린 친구들이 달려 듭니다. 간혹 조금 더 친절한 친구들은 풀반지를 억지로 끼워 주려고 합니다.

 필리핀에 머무는 동안 필리핀 친구들의 친절이 느끼하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절을 하는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약속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400년의 역사가 복종의 문화를 만든 셈입니다.

 라오스 친구들은 바로 환한 미소로 응대하지  않지만 나름 꼿꼿함이 느껴집니다. 비록 가난해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는 자존심이 때론 필요합니다. 적당한 자존심은 무기력함을 막아주고 인간의 품위를 지켜줍니다. 자본 때문에 결코 무릎 끓을 수 없다는 라오스 친구들의 단호함이 전해져 옵니다. 하지만 필리핀 친구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단호함보다는 비굴함이 먼저 떠올랐고 건강한 얼굴의 이면에서 느껴지는 건 무기력과 체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필리핀에는 봉건제도식의 가문이 권력을  유지하고 적자생존의 초기 자본주의가 기세등등하게 유지 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 평화 도매시장을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달려 드는 장사꾼들의 저돌적인 공격이 무서웠습니다. 마음 약한 내게 호객행위는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옷을 사러 가게에 들어가면 거의 한방에 끝냅니다. 씨엠립의 마켓에서 평화 시장이 떠올랐습니다. 남들은 이게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라고 하지만 상생의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앙코르 와트의 매력이 다하면 자립을 배우지 못한 시엠립은 슬럼이 되고 말겠지요. 하지만 루앙프라방은 인간이 만든 유적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만들어 내는 잔잔한 향기 때문에 점점 더 사람의 발길을 향하게 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게 지속 가능성 아닐까요?

 그리고 시엠립 앙코르 와트를 보며 인간이 만든 유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월든’을 가지고 왔습니다.  

<피리미드 자체는 전혀 놀라운 유적이 아니다.  어떤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야심가의 무덤을 쌓아 올리기 위해 그렇게 많은 인간들의 일생을 허비하게 할 정도로 타락한 사회가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다> -소로우

 이번에 처음 가본 자금성에서 그리고 앙코르 와트에서 먼저 다가오는 감정은 슬픔이었습니다.

 허름한 식사. 검게 그을린 얼굴. 뜨거운 태양. 십장의 날카로운 눈초리. 저는 유적지를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그림은 몇 백년 전의 풍경이 먼저 떠오릅니다.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 타지마할 묘당 등 가난한 백성들의 피와 땀의 댓가들입니다. 사실 그들의 피와 땀을 추모하고 와야겠지요. 그래도 다행이라면 후손들이 그 현장에서 천막을 치고 음식을 팔고 호객행위를 하며 사는 게 지혜로운 지배자의 통찰 덕분으로 생각하면 제 까탈스러움을 달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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