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하이
하야하이는 이곳 두마게티에서 쟁쟁한 실력을 자랑하는 밴드들이
저녁에 공연을 하는 곳이다.
수요일엔 레게 토요일엔 락 앤 롤
특히 토요일 여성이 메인보컬인 밴드의 공연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외국여자가수는 엘라니스 모리셋.
엘라니스 모리셋에 버금갈 만큼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졌다.
그리고 필리핀 친구들의 목소리가 가냘픔이 특징이라면 이 친구는 아주 거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때론 폭발적이기도 하고
가끔씩 블루스를 할 때는 요절한 제니스 조플린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엘라니스 모리셋의 노래를 자주 불러서 좋았고
가끔씩 크랜 베리즈의 노래도 한다.
하지만 레퍼토리는 똑같애서 자주 보면 지겹다.
그리고 갈 때마다 엘라니스 모리셋의 'One'을 신청했는데 번번이 나의 요청은 묵살됐다.
가수를 찾아가서 물어보면 늘 다음이다.
거절하지 못하는 필리핀 친구들의 성향이 보인다.
한 번은 선진이 일 때문에 힘들어서 학교를 나와 두마게티에 숙소를 정하고
혼자서 하야하이를 찾아갔다.
바에 혼자 앉아 홀짝홀짝 산 미구엘을 마시니까 옆에 앉은 필리핀 친구들이 말을 건넨다.
그래서 그곳에서 두 명의 친구를 사귀고 함께 밴드 공연을 즐겼다.
그날 처음 엘리니스 모리셋의 노래를 잘 부르는 여자 가수를 만났다.
눅눅했던 마음은 조금 보송보송해졌다.
필리핀은 단조롭다.
많은 모순이 널려 있어 혁명이 필요한 곳인데
오랜 식민지의 경험이 좌절과 순응을 가르쳤는지
이들에겐 혁명에 대한 의지나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싶은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단조로움은 순응과 체념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불온한 단조로움이다.
그래서 이들에겐 늘 사랑의 노래가 인기곡이고
사랑이 화두다.
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