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아시스 Aug 19. 2024

옥천의 빌리 엘리어트들을 위하여

-엘리티즘에 관해

옥천의 빌리 엘리어트들을 위하여

             -6개월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운영 후기

                      장경수(오아시스/옥천군청소년상담복지,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장)     

안 다니는 데가 없네?”

 저희 ‘꿈꾸는 배낭’에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수탁을 받은 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6개월 동안 ‘교육과 청소년’이 들어 가는데라면 어디든 찾아가고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부터 돌봄센터 등등... 

지역의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권리나 의견을 요구할 수 있는 방법은 청소년 수련관의 참여위나 운영위를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참여위가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옥천 지역은 정책 한마당이나 단체장과의 만남을 통해 소통의 과정을 거치고는 있으나 조금 미진한 부분들을 채우기 위해 그들 대신 제가 지역 곳곳을 찾아 다니면서 청소년들의 공간 확장과 청소년이 활동과 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하자고 강조하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유일하게 위탁 받은 청소년 센터라서 더 사명감을 가지고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이 머무는 지역 공간이 활성화 되어야 아픈 청소년들이 줄어 든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후결과 중심의 상담 방식으로 운영되었다면 이제는 상담과 아울러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의 청소년 환경 개선도 관심을 가지려 합니다. 

오늘 실무위원회 회의 자리에 참석한 청소년과 경찰 공무원한테 작년과 비교해서 사랑의 교실(범죄에 관련되어 법원 처분을 받은 청소년) 대상자들의 증감을 물었습니다. 아직 저희 센터의 영향력이 미치는 기간은 아니지만 조금 줄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대상자들이 더 줄어들게 끔 저희 센터도 상담에 공을 들이겠다고 했습니다. 만일 사랑의 교실 대상자들이 지역에서 늘어난다면 저희 센터가 그만큼 역량이 부족하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안다니는 데가 없네?”는 제가 아는 군청 과장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한명의 청소년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쏘다닐 예정입니다.     


지역의 소멸을 막을 수 있는 인재들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 한국 교육이 앨리트 중심의 교육이었던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처음 시작한 충북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 1학년 때 입학 전에 본 시험 성적으로 30명의 장학생들을 뽑아 따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차별화 된 교육 정책에도 우리는 침묵했습니다. 거리에, 학교 정문에 당당하게 걸려 있는, 서울대 합격 프랭카드를 보고도 우리는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한때 화제가 되었던 ‘2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는 선정적인 광고문구를 보면서도 끔찍하다는 항의보다는 성공주의 시대를 잘 표현한 기막힌 광고라는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2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선정한 회사는 노조를 허용하지 않았고 똑똑한 경영진의 일방적인 복지 혜택을 군말없이 따르라고만 했습니다. 엘리티즘은 오랜 왕조의 유물이면서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의 의미 있는 고단함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하는 우리 시대의 거울이었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가 시작하면서 근대의 문을 열었지만 아직 상명하복의 일사천리가 편한 전근대사회입니다. 

그래서 지역사회에서는 아직도 인재중심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구소멸 지역의 통계를 보면서 인구 2만 이하의 군지역에 소재한 지역인재육성재단의 장학 사업을 살펴봤습니다. 지역의 교육정책과 청소년에 대한 태도가 궁금했습니다.                    


우수학교 및 교사 포상금: 2,000,000원 -1명 (1개교)

-서울대 1명 이상 또는 우수대학 2명 이상 진학시킨 학교 또는 교사


여전히 서울대에 들어간 인재가 지역을 구원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지역 인재에게 지역을 구원하는 ‘히어로’가 되길 바라며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 인재들은 지도에서 지워지는 지역의 소멸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히어로가 아니었습니다. 최근 마을지원센터에서 진행한 ‘돌봄의 주체 작은 도서관’ 포럼에서 만난 지역의 작은 도서관 활동가들이 저는 옥천 지역을 지키는 히어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원 지역의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이원토리> 경우는 공간이 부족한 조건에도 청소년들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민간에서 만든 청산면의 <청산별곡>도 중고 청소년들의 활동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히어로’는 열정페이의 상징이라서 그렇다고 마냥 지속가능한 요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옥천의 빌리들을 위하여


난 춤을 추며 태어났어요

난 춤을 추며 뱃 속에서 나왔죠

그렇게 일찍 춤을 춘 것이 이상한가요?

난 죽는 날까지 춤을 출 거예요

      영화 <빌리 엘리엇>의 첫장면 삽입곡 ‘Cosmic dancer’ 가사 일부     

영화 <빌리 엘리엇>의 주인공 빌리는 어느 날 권투 도장에서 처음 보게 된 발레 수업을 보고 한눈에 반해 발레를 배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탄광 광부인 아버지는 강한 남자가 되라고 권투를 배우게 하고 ‘춤’을 추고 싶다는 빌리의 간절함을 차갑게 거절합니다. 미치도록 춤추고 싶은 빌리는 아버지 눈을 피해 몰래 춤을 배우고 결국엔 발레리노가 됩니다. 제가 몸담았던 금산의 간디중학교에서 가장 자발적으로 활성화 되었던 동아리는 ‘춤’ 동아리였습니다. 굳이 지도 교사가 없더라도 운영이 잘 되었고 축제 때는 서로 올라가서 춤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운동장에서 마음껏 몸을 움직이고 예술과 만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합니다. 이런 결과들이 모여 남을 이해하는 감수성이 생기고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빌리처럼 미치도록 무언가 하고 싶은 청소년들을 위해 지역의 청소년 공간은 많이 필요합니다. 마음 껏 몸을 움직이고 욕구들을 표현한다면 쌓였던 분노들은 말랑말랑해지겠지요. 

 요즘 청소년 관련 이야기 자리에 갈 때마다 제 어린 시절의 시골 교회 학생회가 자주 떠오릅니다. 괴산 청천의 시골 교회는 청소년센터가 전무했던 팍팍한 시골에서 제게 가장 훌륭한 청소년 문화의 집이었고, 고등학교를 다니던 청주에서 토요일에 시골 교회 학생회를 참석하기 위해 내려 갈 때마다 ‘천국’을 연상하게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노래를 하고 연극을 하고 방학 때는 캠핑을 다녔습니다. 흰눈이 푹푹 쌓이는 겨울밤에는 따뜻한 구들장 아래묵에 모여 솜이불을 덮고 자작시와 독후감과 수필이 담긴 교회 학생회 문집을 만들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지역의 공간이 청소년들에게 추억의 공간이 된다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돌아오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권유를 합니다. 지역을 사랑하는 건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느껴야 가능합니다. 귀촌하는 사람들로 지역의 몸집이 커지고 있는 충남 홍성의 홍동면과 남원 산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심점은 지역의 충전소가 되고 있는 풀무학교와 실상사 작은 학교 덕분입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마음껏 발산하고 기대고 부빌수 있으면서 배움의 주체가 되는 청소년 공간이 매우 많이 필요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만이 희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