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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Oct 01. 2023

미술치료,  투사적 동일시

치료자로서의 반영 Listen and Mirroing

미술치료에서의 투사적 동일시를 이야기하기 전에, 작가와 Viewer(보는 이)를 연결하는 미술작품의 ‘투사적 동일시’가 무엇인지? 를 먼저 말해볼까 합니다. 미술작품에 대한 작가와 Viewer(보는 이) 사이에는 “개별 경험의 특수성” (주리애, 2021)이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 Viewer(보는 이)는 작가의 경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생각으로 작가가 이런 작품을 완성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미술 치료자와 내담자 사이의  ‘공감’과도 다릅니다.


의식 영역 안에서 구조화된 언어로 전달하는 이야기(narrative)에 근거해서 찾아낸 보편성을 무의식의 상징인 미술작품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Viewer는 작품을 본 후에 얻게 되는 자신의 ‘정서적 반응’이 마치 미술작품으로 투사된 작가의 내면세계에 대한 알아차림 혹은 공감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치료자가 내담자의 ‘투사적 동일시’를 알아차린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Viewer(보는 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역전이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치료자 관점에서의 역전이는 아닙니다.


미술작품에서의 투사적 동일시는 Viewer(보는 이) 자신이 느끼는 ‘정서적 반응’을 자신의 내면의 소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작품을 통한 작가의 내면세계에 대한 공감으로 여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을 보면서 얻게 되는 ‘정서적 반응’에 대한 자각은 작품을 통한 치유 효과로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자각을 돕는 것이 미술치료사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마크 로스코가 말한 ‘영적 체험’은 곧 ‘정서적 반응’에 대한 자각이라 생각합니다.


미술치료에서의 투사적 동일시 개념은 Viewer(보는 이)의 관점이 아니라, 창작자(내담자)의 관점입니다. 작품을 완성하면서, 나타나는 상징들의 일부는 창작자(내담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발현일 수 있습니다. 치료사는 이러한 무의식적 상징 들을 창작자(내담자)의 내면과 연결 지어 창작자(내담자)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대상관계에서 나타나는 동일시(identification)에 대한 개념이 특정 상황에선 좀 더 명확하게 이해되지만, 어떤 상황에선 모호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기본 개념을 명확히 하면서 개념의 유연성 또한 길러보겠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집중해서 생각해 본 이슈는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는가에 집중했습니다. 내담자의 입장, 치료자의 입장, 작품을 창작한 창작자의 입장 등이 얽혀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통한 창작자와 Viewer(보는 이) 간의 ‘소통’이란 개념 또한 함께 고민했습니다. '소통'을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란 개념과 연결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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